인정받고 싶은 건 본능, 몰입 과하면 ‘관심 중독’ 빠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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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8호 28면

러브에이징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

일제 강점기 때 기생들이 만든 음반을 타고 국민 유행가로 등극한 밀양아리랑의 노랫말이다. 인간의 본능적 인정(認定) 욕구를 ‘한겨울에 핀 꽃처럼 귀한 존재로 나를 봐달라’는 직설화법으로 응축한 가사다. 그로부터 100여년이 지난 지금, 후손들은 첨단 정보통신기술(IT)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민요에 담긴 뜻을 실천하고 산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공동체에 소속돼 다수의 타인과 교류하며 살아간다. 당당한 일원이 되려면 다른 구성원(타인)에게 나의 능력과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특히 사피엔스는 무기력한 생명체로 태어나 오랜 기간 보호자 도움이 필요한 종(種)이라 인정 욕구를 ‘본능’으로 뇌에 각인한 채 태어난다. 정신의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모든 아이는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참을 수 없는 욕구를 가지며, 어떤 아이도 이런 욕망 없이 성장할 수 없다’는 말로 설명한다.

아이들, 부모에 인정 받으려 억지로 공부

인정을 받고 성장하면 자신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는다. 반면 인정을 못 받은 사람은 좌절감과 굴욕감을 느끼면서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사회 갈등을 유발한다. 인정 결핍이 병적인 행동을 초래하는 셈이다.

인정 투쟁의 출발점은 부모-자식 관계에서 시작된다. 부모가 생존가치가 없다고 판단하면 아이의 생명은 위험해진다. 이기적 유전자를 가진 인류의 역사에서 양육하기 힘든 상황에 처한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는 일은 드물지 않다. 일례로 극한의 기후에서 이민족과 수시로 생존 전쟁을 해야 했던 중세 바이킹족들은 강한 아이만 양육할 목적으로 기형아나 여자아이를 살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단 양육 대상이 된 아이는 본능적으로 부모의 눈치를 보고 관심 끄는 행동을 하면서 인정 투쟁의 여정을 시작한다.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하는 가장 큰 이유도 부모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다.

친구 관계가 중요해지면 또래의 인정을 얻기 위해 위험과 불이익도 감수한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이성의 관심을 끌거나 직장 상사의 인정을 받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한다.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지위와 신분에 따라 인정 욕구를 매우 제한적으로 해소할 수밖에 없던 전통사회와 달리 평등을 추구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통상 대화의 30~40%가 말하는 사람 자신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SNS에 올리는 글·사진·영상 등은 80%가 본인의 의견이거나 경험한 내용이다. 21세기 버전으로 지구촌에 거주하는 모든 타인을 향해 ‘날 좀 보소~’를 외치는 모양새다.

21세기 첨단의·과학은 인간의 인정 욕구를 견인하는 동력이 쾌감을 통한 보상작용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하버드대 뇌과학 연구팀(다이애너 타밀 등)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다양한 분야에서 본인에 관한 질문(‘당신은 스키 같은 겨울 스포츠를 얼마나 즐기나?’)과 타인에 관한 질문(‘대통령은 스키 같은 겨울 스포츠를 얼마나 즐기나?’)을 선택해 답변하게 한 뒤 기능성 뇌 자기공명영상(fMRI) 촬영을 했다.

결과는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는 본인 이야기를 할 때 도파민을 분비하는 뇌 부위가 활성화됐다(미국국립과학원회보(PNSA) Vol. 109). 도파민은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섹스를 할 때 뇌에서 분비돼 쾌감을 주는데 중독성이 있다.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활동을 하면서 ‘좋아요’를 통해 타인의 관심과 인정을 확인한 사람은 뇌에서 도파민이 나와 쾌락을 경험한다. 이후 같은 수준의 쾌감을 얻으려면 보다 많은 타인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SNS 활동을 하다 보면 점점 더 깊이 몰입하게 되는 이유다.  특히 지금은 인정 욕구를 표출할 대상이 세계인으로 확산돼 자칫 병적인 ‘관심 중독’으로 진행할 가능성도 커졌다.

더 큰 문제는 타인의 인정 기준이 상대적이고 가변적이라는 점이다. 오늘 나를 인정해준 사람이 내일은 인정을 철회하는 상황은 언제든지 일어난다. 타인의 평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삶은 불행해지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을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희곡 『닫힌 방』에서 ‘타인은 지옥이다.(L’enfer, c’est les autres.)’라는 말로 경고했다. 따라서 식욕이나 성욕을 조절하듯 인정 욕구도 이성의 힘으로 통제하면서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자아실현 욕구 단계로 성장해야 한다〈표 참조〉. 물론 인정욕구 조절은 본능을 다스리는 일이라 쉽지는 않다. 게다가 현대사회는 인정 욕구를 자극하는 환경이다.

인정 욕구 과도해지면 공동체 병들어

타인의 시선에 일희일비하는 지옥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면 자신의 인정 욕구를 객관화한 뒤 거리를 두고 조율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인정을 얻기 위한 노력과 인정을 통한 결과 간의 이해득실을 이성적으로 저울질해 볼 필요도 있다. 과도한 인정 욕구는 과시욕처럼 허상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인정 욕구가 과도한 사람은 열등감이 심하거나 반대로 자기애성 인격장애자(나르시시스트)일 가능성이 크다. 트위터에 집착하고 습관성 거짓말로 타인의 이목을 병적으로 갈구하는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은 나르시시스트의 전형이다. 히틀러는 최고 권력자가 되기 전까지 수많은 좌절을 경험한 열등감 때문에 병적인 인정 욕구를 보이다 자신과 공동체를 파멸시킨 사람이다. 사회적으로 인정 욕구가 과도해지면 공동체는 병들기 쉽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SNS를 통해 병적인 인정 욕구를 내뿜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다. 이미 관심 중독증에 빠진 환자들은 적절한 상담과 치료를 받게 하고 더 많은 환자가 양성되지 않도록 전 국민 정신건강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할 것 같다.

황세희 연세암병원 암지식정보센터 진료교수. 서울대 의대 졸업 후 서울대병원에서 인턴·레지던트·전임의 과정을 수료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미국 MIT에서 연수했다. 1994년부터 16년간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로 활동하면서 ‘황세희 박사에게 물어보세요’ ‘황세희의 남자 읽기’ 등 다수의 칼럼을 연재했다. 2010년부터 12년간 국립중앙의료원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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