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 15% “반려자보다 반려동물 더 사랑” 혼전 합의서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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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8호 24면

짐 불리의 런던 아이

지난 3일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된 개 그림 앞에서 개 한 마리가 그림을 보고 있다. ‘영국인은 반려동물을 사람보다 더 사랑한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반려동물 사랑이 극진하다. [AP=연합뉴스]

지난 3일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된 개 그림 앞에서 개 한 마리가 그림을 보고 있다. ‘영국인은 반려동물을 사람보다 더 사랑한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반려동물 사랑이 극진하다. [AP=연합뉴스]

영국은 반려동물 애호가들의 나라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영국 내 반려동물 수는 약 3240만 마리였다. 같은 해 영국 전체 가구 수는 약 2800만이었다. 가구당 평균 1마리의 이상의 반려동물을 키우는 셈이다.

영국의 반려동물은 개 1300만 마리, 고양이 1200만 마리, 실내 조류 160만 마리, 가금류 140만 마리, 토끼 100만 마리 정도로 추정된다. 이외에 기니피그, 햄스터, 비둘기, 말, 거북이 등도 이 통계에 포함된다.

필자도 어린 시절 집에서 개, 고양이, 햄스터, 새, 닭 등을 집 마당에서 키웠던 기억이 나는데, 이처럼 영국의 많은 가정에서는 1마리 이상의 반려동물을 기르기도 한다. 스태티스타(Statista) 통계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수는 영국 전체 6733만 명의 62%를 차지한다. 이는 세계 1위인 미국의 67%보다는 조금 낮지만 한국의 33%(추정치)보다는 훨씬 많다.

영국의 반려동물에 대한 사랑은 꽤 오래됐다. 심지어 ‘영국인은 사람보다 반려동물을 더 사랑한다’는 오래된 속담이 있을 정도다. 영국 반려동물의 역사는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1700년대 중반부터 반려견 사랑이 본격화했다고 하는데 조지아시대와 빅토리아시대의 그림에는 반려견이 자주 등장한다.

1824년 세계 첫 ‘동물학대방지협’ 설립

런던 지하철역의 반려견. [AP=연합뉴스]

런던 지하철역의 반려견. [AP=연합뉴스]

이렇게 영국에서 오래전부터 반려동물을 기를 수 있었던 것은 수백 년 동안 상대적으로 경제적 안정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경비견처럼 사람을 위해 일하는 동물로서가 아니라, 동물이 그냥 좋아서 집에 들여 함께 생활하는 건 비교적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사람들이 가졌던 특권일지도 모른다.

반대로 경제적 안정을 누리지 못한 나라에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오랫동안 반려동물을 키워온 영국의 반려견 문화는 한국을 포함한 많은 다른 나라와 다를 수밖에 없다.

영국의 동물에 대한 격렬한 사랑은 산업혁명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8세기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영국 노동자들은 세계 최초로 농장에서 공장으로, 시골에서 도시로 이주했다. 이와 함께 농업 경제가 산업 경제로 바뀌고 많은 토지와 소규모 경작지가 상업적 목적으로 폐쇄되면서, 가축으로 동물을 소유하는 경우가 줄어들었다.

사람들은 도시로 이사하면서도 동물을 데려갔는데, 더는 양 떼를 몰기 위해 개를 키우거나 쥐를 잡기 위해 고양이를 기르지 않았다. 대신 동물에 대한 순수한 애정과 즐거움을 위해 동물을 키우기 시작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동물복지자선단체인 영국 왕립동물학대방지협회(RSPCA)는 1824년에 설립됐다. 오늘날 소, 양, 돼지, 닭처럼 소비를 위해 기르는 동물과 순수한 즐거움을 위해 키우는 개와 고양이와 같은 반려동물 사이에 극명한 차이를 볼 수 있다. 심지어 시골에서 볼 수 있는 양치기 개나 사냥개들도 이젠 주인에게 둘도 없는 친구이자 가족이다.

영국의 많은 법은 개 소유권과 보호에 대해 다룬다. 어떤 방식으로든 개를 학대하거나, 제대로 먹이를 주지 않거나, 운동을 시키지 않으면 불법이며, 개가 개처럼 행동할 자유를 주지 않는 것도 불법이다. 또한 개에게 계속 짖지 말라고 가르치지 않는 것, 공공장소에서 개의 배변을 줍지 않는 것도 불법이며, 안전벨트 없이 개를 차에 태우는 것도 영국 고속도로 법규를 위반하는 행위다.

반면, 절대 불법이 아닌 것들도 있다. 안전한 장소에서 개의 목줄을 풀거나, 개를 데리고 가게, 식당, 카페, 펍 등에 가는 것이다. 사실 영국의 많은 장소에서 개의 목줄이 풀려있거나 펍(pub)에서 다른 사람 테이블 옆에 누워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가 적절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충분히 훈련시키는 책임은 주인에게 있다.

이건 핸드백에 들어갈 만큼 작은 소형견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영국인은 덩치 큰 개를 선호하는 편인데, 가장 인기 있는 품종 두 가지는 래브라도와 리트리버다. 코커 스패니얼도 꽤 흔한데, 영국에서는 작은 편에 속한다. 영국의 토종견인 보더콜리, 웰시코기, 불독도 흔히 볼 수 있다.

큰 개를 키우려면 더 큰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한국의 작은 아파트에서 키우는 것은 상대적으로 더 어렵다.  큰 개를 키우는 것에는 많은 장점이 있기도 하다. 연구에 따르면 큰 개들은 훨씬 더 차분하고 훈련하기 쉽다. 몸집이 큰 개들은 스스로에 대해 훨씬 더 자신감이 있어 비교적 덜 불안해하거나 덜 긴장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성향 때문에 주변 환경에 대해 더 자신감을 갖고, 혼자 남겨졌을 때 덜 긴장하며, 지나가는 다른 개들이나 사람들을 공격하거나 맹렬하게 짖는 경우가 비교적 더 적다.

물론, 영국은 개 애호가들이 많은 나라인 덕분에 훈련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더 잘 갖춰져 있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 해도 개를 무서워하는 경우는 적다. 따라서 어린 개를 훈련시키기에는 더 좋은 환경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지나가는 사람이 개를 무서워한다거나 자신의 개가 다른 사람을 보고 갑자기 짖는다고 해서 산책 중에 개를 들어 안을 필요는 없다. 대신 개들이 적절하게 사교성을 키우며 자신의 행동 결과를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시킨다.

반려견 운동 안 시키고 묶어두면 불법

필자 짐 불리 부부의 반려견. [사진 조은남]

필자 짐 불리 부부의 반려견. [사진 조은남]

덕분에 대부분의 장소에서 애견 동반을 환영하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펍이나 가게뿐 아니라 모든 대중교통 이용 시 애견 동반이 가능하며, 많은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어디든지 개를 데리고 다닐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다.

상황에 따라 대부분의 카페나 식당은 개가 물을 마실 수 있도록 내부나 외부에 물이 담긴 그릇을 배치한다. 또 대부분의 공원에는 애견 배변용 쓰레기통이 곳곳에 배치돼 있어서 산책 중 배변을 봉투에 수거해서 편리하게 버릴 수 있다. 비록 많은 경우 배변 쓰레기를 퇴비화하지 않고 일반 쓰레기와 같은 매립지로 보내기 때문에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애견 친화적인 환경만 갖춰지면 자신 소유의 자동차가 없어도 개와 함께 아침에 나와 기차를 타고 멀리 이동할 수 있다. 시골 어딘가에 내려서 들판을 가로질러 함께 하이킹할 수 있고, 혹시 주변에 가축이 있다면 개의 목줄을 단단히 하면 된다.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목줄을 하지 않아도 개가 자유롭게 뛰어다닐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점심때 주변 펍에 들러 식사할 때라면 반려견은 주인의 발밑에서 잠시 쉴 수 있다. 식사 후 주변 산책을 하다가 괜찮은 카페에 함께 들러 커피를 마시고, 버스를 타고 다시 집으로 오는 완벽한 하루를 보낼 수 있다.

도중에 가끔 친절한 등산객이나 호기심 많은 아이, 혹은 장난기 많은 다른 개를 만날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문제가 될 만한 상황에 놓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개를 좋아할 가능성이 높고, 만약 그렇지 않더라 해도 개가 주변에 있는 것에 익숙해서 겁을 먹기보다 멀리서 기분 좋게 바라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앞선 예들은 반려견과 함께하는 영국 시골에서의 이상적인 하루를 보여 준 것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영국이 얼마나 반려동물에 친화적인 나라인지를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했던 ‘영국인이 사람보다 반려동물을 더 좋아한다’는 속담은 어느 정도 진실일지도 모른다. 2019년 한 조사에 따르면, 영국 사람의 15%가 그들의 반려자보다 반려동물을 더 사랑한다고 말했다. 실제 일부 변호사 사무소에서는 ‘반려동물 관련 혼전 합의서’까지 제시한다. 곧 결혼하는 부부들이 나중에 혹시라도 이혼하게 되면 둘 중 누가 반려동물을 데려갈 수 있는지에 대한 법적 합의를 위한 것이다.

번역 유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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