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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P 5% 100조원 투입…저출산 충격 요법 필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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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8호 01면

전문가 3인 ‘인구 소멸’ 대책 진단 

젊은이들이 결혼하지 않는다.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다. 아이를 가지더라도 되도록 늦게, 적게 낳는다. 그 결과가 합계출산율 0.78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평균(1.59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압도적인 꼴찌다. 우리나라 정부도 2004년 저출산·고령화를 국가적 의제로 설정했고, 2006년부터 16년간 약 280조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그 결과는 2012년 48만명이던 우리나라의 신생아 수가 지난해 24만9000명으로 줄었다는 현실이다.

정부는 뒤늦게 ‘국가 소멸의 위기’라며 대책 마련에 나섰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24일 “기존 백화점식 대책에서 벗어나 효과가 있는 것을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실에서 거론하는 ‘효과 있는 정책’은 자녀 등·하원 시간이나 육아 환경을 고려한 ‘오전 재택근무’ 등 다양한 재택근무 활성화다.

저출산 대책은 일자리·교육·의료·연금·주택 등 다양한 정책을 연계해야 하는 만큼 ‘컨트롤타워’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언급도 나왔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지난 22일에야 첫 운영위를 열었다. “비상근이라 국회의원하셨던 분들이 겸직하면서 1년에 몇번 회의하는 자리”(나경원 전 부위원장)라는 평을 들었다. 분위기 쇄신을 위해 위원장인 윤석열 대통령이 다음달 회의를 직접 주재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하지만 선언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2019년 일본의 신생아 수가 큰 폭으로 줄어들자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총리는 “국난(國難)이라고 불릴 만한 상황”이라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출산율 1.8’ 목표를 달성하라”고 지시했다. 그럼에도 일본의 출산율은 1.33명(2020년 기준)으로 4년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일본 역시 2053년이면 총인구가 1억명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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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삼식 인구보건복지협회장(한양대 교수),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최슬기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등 인구 전문가 3인에게 물었다. 공통으로 나온 답변은 소액 지원금 등 지금까지의 소극적·미온적 정책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재정 지원도 2~3년 간 두세배 정도인 국내총생산(GDP)의 5%까지 확 늘려서 시민들이 ‘뭔가 변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충격 요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무엇보다도 ‘컨트롤 타워’에 각 부처를 아우르는 정책을 수립·집행할 수 있는 실질적 권한을 줘야 한다.

왜 출산율이 계속 낮아지나.
최슬기 교수 연애-결혼-출산으로 이어지는 모든 과정 과정마다 어려움이 가중됐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문제가 차원이 다르게 심화하고 있다. 2005년부터 2015년까지 1.5명 안팎이던 유배우 출산율(배우자가 있는 여성의 합계출산율)이 2020년에는 1.13명까지 하락했다. 2015년 이후 진행 중인 합계출산율 급락은 혼인율뿐 아니라 유배우 출산율이 함께 떨어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이삼식 교수 비혼과 유배우자 출산 둘 중 무엇이 더 큰 문제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 사회가 그 두 집단 모두에게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느냐가 중요하다. 이들이 결혼이나 출산을 최대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

“10년, 20년 장기 계획 이어갈 저출산 컨트롤타워 있어야”

이삼식 인구보건복지 협회장

이삼식 인구보건복지 협회장

서울(0.59명), 부산(0.72명) 등 대도시의 출산율이 특히 낮다.
조영태 교수 대도시 지역이 농촌 지역보다 출산율이 낮은 것은 당연하다. 도시 지역이 직장은 많지만 그만큼 많은 청년이 모여 있어 인구 밀도가 높고, 경쟁도 심하다. 인구밀도가 높은 곳일수록 출산율이 낮은 현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나타난다.
수십년간 수백조원을 들였는데 왜 갈수록 악화하나.
이삼식 교수 방향이 어긋나 있다. 첫째는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해결이 안되고 있다. 안정된 일자리, 적절한 주거, 노후 보장 등이 탄탄해야 저출산, 비혼, 고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둘째, 사각지대가 많다. 공무원, 대기업 직원 등이 누릴 수 있는 육아 혜택은 꽤 많지만 중소기업이라든지 비정규직, 영세기업, 자영업자 등은 이런 정부의 혜택을 누리기 어렵다. 사회 문화적으로 육아 휴직이나 유연 근무제 사용을 회사에서 배려하고 장려하는 분위기도 아니다.
조 교수 정부의 저출산 고령화 대책은 보육과 양육 등 주로 복지 문제 쪽에 집중했다. 이후 젠더 이슈까지 더해진 것에 예산을 투입했다. 복지, 젠더 이슈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한국의 출산율을  떨어트린 결정적인 이유였는지 따져봐야 한다. 저출산 문제는 복지, 젠더뿐만 아니라 주택(부동산), 사교육, 사회 경쟁 심화 등 굉장히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종합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정책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최슬기 교수 엄청난 예산을 썼다지만 정말 체감할 정도로 출산과 육아 환경이 좋아졌느냐는 다른 문제다. 기존 정책은 효과의 체감도가 높지 않았다. 신혼부부 특공처럼 혜택이 큰 정책은 당첨된 소수에게만 주어졌다. 대다수가 대상인 경우에는 혜택의 크기가 크지 않다면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 전체적인 평균을 올려야 많은 사람이 변화를 느낀다. 단적인 예로, 남성의 출산휴가를  보면 기존 유급휴일 3일, 무급휴일 2일에서 지난 정부 때 10일로 늘어났다. 이게 충분하다고 생각하나?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당장 쓸만한 대책은 있나.
조 교수 사실 획기적인 정책이라는 건 없다. 단기간 정책은 불가능한 명제다. 안타깝지만 당분간 이대로 갈 수밖에 없다. 지금 해야 하는 건 오늘의 청년이 아니라 10년 뒤의 청년이 어떻게 아이를 낳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2000년대생이 30대에 진입할 때도 지금처럼 출산율이 낮으면 진짜 절망적인 것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이 교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지위를 높이고 자금을 풍부하게 투입하는 것이다. 3~4년 정도라도 특별회계로 일정한 금액을 위원회가 투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 사회적으로, 정부나 기업도 ‘한번 다 같이 바꿔보자’라는 식의 집약적인 행동을 통해 정책을 세워야 한다. 가령 2~3년의 기간을 잡아서 2~3배 정도 재정투입을 확 늘려야 한다. 개인적으로 국내총생산(GDP)의 2%에도 미치지 못하는 우리나라 저출산 예산을 5%인 100조원 정도까지 올릴 생각으로 정책을 세우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최 교수 집값, 임금구조, 불평등 등 경제적인 문제도 물론 원인이지만 근본적으로 성평등의 문제가 있다. 실제적인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여성 독박육아 인식을 바꾸는 남성의 육아 참여가 먼저 실현돼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현행 배우자 출산휴가 10일을 ‘아빠 출산휴가’라는 명칭으로 한 달간 유급으로 확대 개편해야 한다. 해외 여러 사례를 보면 남성의 육아 참여가 출산율 증가에 도움이 된다. 결혼 후 신혼여행 휴가를 다녀오고, 장례식 후 1주일간 휴가를 다녀오는 게 당연해지는 것처럼 배우자 출산 후 남자도 한 달간 직장을 쉬는 것이 당연해진다면 가정과 직장 내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최슬기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최슬기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출산율이 1.79로 유럽에서 가장 높은 프랑스는 3만유로(4000만원) 안팎의 출산 수당과 월 188~498유로(26만~69만원)의 보육 보조금을 지급한다.
이 교수 양육비의 획기적인 재정 지원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효과도 선별적이다. 저출산 이론 중 소득효과이론이 있는데 양육비 지원과 같이 특정 가정의 소득을 증가시키는 정책은 저소득층 가정의 출산율을 증가시킨다. 그런데 이런 소득 효과가 중산층 이상 맞벌이 부부에게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에게는 육아 시간을 벌어 준다든지, 사교육 경쟁을 줄어든다든지 하는 방안이 더 효과적이다. 무한정으로 양육비를 지원하기보다는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최 교수 헝가리는 2018년부터 결혼하면 1000만포린트(약 3000만원)를 대출해준다. 첫 자녀 출산시 무이자로 전환하고 둘째 출산시 원금 일부, 셋째 출산시 원금 전액을 탕감해준다. 나경원 전 부위원장은 헝가리의 결혼 건수가 20% 정도 늘었다고 주장했지만 아직은 현금 지원을 늘리는 방안이 검증된 정책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물론 한 10억원씩 지원해줄 수 있다면 한명은 낳지 않겠나. 돈을 줬는데 부정적인 사례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효과가 정말 크냐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더 효율적인 정책을 생각해봐야 한다.
장기적인 대책은 뭐가 있나.
조 교수 잘 키우고 싶은 열망이 너무 커서 오히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역설적 상황이다. 정책은 당장 ‘오늘’만 보고 10년 뒤를 내다보지 않았다. 현실은 복잡다단한데 정치권이나 언론에서는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나 대책을 주문한다. 바로 성과가 안 나오더라도 주거·육아·교육·일자리·지방균형발전에 걸친 전방위 대책을 마련해 지속 추진해야 한다. 무엇보다 출산에 대한 젊은 세대의 불안감을 줄여야 한다. 정부는 더이상 “임기 내에 출산율 높이겠습니다”라고 얘기하지 말아야 한다. 이미 그건 불가능하다. 욕먹더라도 “우리는 10년 뒤 출생아 수를 늘리겠다”로 가야 한다.
이 교수 사회 구조적 문화를 바꾸는 것이다. 저학력을 차별하다 보니 어느 부모도 사교육을 무시할 수 없고, 아이를 키우는데 있어서 큰 부담이 된다. 꾸준한 실천도 중요하다. 언론도 보고서가 나왔을 때나 확 다루다가 이내 또 시들어진다. 정부를 꾸준히 압박하면서 위기감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누가 정권을 잡든 15년, 20년짜리 장기 계획을 이어갈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대통령이 계속 바뀌어도 그 기관이 장기적인 플랜을 이어나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면 되는 일이다. 어차피 저출산은 100년 이상을 바라봐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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