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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기 14대 띄워 팬더믹 속 직원 1600명 수송 작전 펼친 K배터리 직원

중앙일보

입력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SK그룹 본사에서 K배터리 수출에 기여한 공로로 산업통상부 장관 표창장을 전달 받은 손기철 SK온 글로벌제조지원 PL. 사진 SK온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SK그룹 본사에서 K배터리 수출에 기여한 공로로 산업통상부 장관 표창장을 전달 받은 손기철 SK온 글로벌제조지원 PL. 사진 SK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에서도 수출을 위해 고군분투한 대기업 직원이 정부 표창을 받았다. 전세기를 동원해 군사 작전을 방불케 하듯 한국인 직원 수백 명을 데리고 다니며 코로나19 검사를 시키고 격리까지 빈틈없이 도맡아 수출에 차질이 없도록 처리한 능력을 인정받았다.

24일 SK온에 따르면 손기철(49) 글로벌제조지원 유닛(Unit) 피엘(PL)이 최근 K배터리 수출에 공헌한 공로로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그는 2020년 회사에서 글로벌 생산 기획(현 글로벌제조지원) 팀장을 맡을 당시 그해에만 헝가리‧중국‧미국 등 6개 장소에서 공장 증설과 신축을 책임지는 과제를 맡았다.

배터리 공장 신·증축 시점에 코로나19 터져 

그런데 그해 1월 코로나19가 발발하면서 2월에 중국에서 출입국을 전면 금지했고, 국내에서도 환자가 급증하면서 모든 항공기가 멈추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헝가리 공장 신축과 관련된 국내 설비‧건설 업체만 20~30곳으로 수백 명이 출국해야 하는 데 전부 발이 묶였다. 손 PL은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당시는 국내 방역 당국의 코로나19 관련 지침도 없었던 때”라고 회상했다.

헝가리에 세워진 SK온 배터리 공장. 사진 SK온

헝가리에 세워진 SK온 배터리 공장. 사진 SK온

2020년 3월 헝가리 출국을 앞두고 전세기를 띄우기로 결정한 뒤, 각 정부 부처와 조율 끝에 항공 승인을 받는 상황이 손 PL 앞으로 순식간에 지나갔다. 300명 탑승자 명단을 취합하고, 전세기 가격을 1대 당 왕복 약 5억원에 협상한 뒤 전원을 3일 동안 격리시켜야 했다. 그는 “007 영화 장면에서나 보던 군사 작전 같았다”고 회상했다.

출국자들은 경기 용인‧안성 등 SK그룹 교육 시설 세 군데에서 3일 동안 격리한 뒤 45인승 버스 15대에 타 국립의료원으로 이동했고,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받고 숙소에 돌아왔다. 다음날 출국 당일 오전 병원에서 음성확인서 원본을 받은 즉시 공항에 집결해 출국이 가능했다. 손 PL은 “사람 구경하기 힘든 인천공항이 우리 직원들로 오랜만에 북적였다”고 전했다.

300명 동시 격리→PCR→공항 집결 

이후 5월에도 300명을 추가로 수송해야 하는 ‘작전’이 펼쳐졌다. 다행히 검사 뒤 자택 격리하고 자율적으로 공항에 집결하는 제도가 도입돼 난이도는 한결 낮아졌다. 당시 헝가리는 외국인 입국 금지 조치에 한국 기업 직원들만 예외로 뒀다. 현지 야당이 “특혜 아니냐”는 시비를 걸었지만 헝가리 정부가 “한국 기업의 투자가 중요하다”고 설득해 입국이 성사됐다.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SK그룹 본사에서 K배터리 수출에 기여한 공로로 산업통상부 장관 표창장을 전달 받은 손기철 SK온 글로벌제조지원PL. 사진 SK온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SK그룹 본사에서 K배터리 수출에 기여한 공로로 산업통상부 장관 표창장을 전달 받은 손기철 SK온 글로벌제조지원PL. 사진 SK온

헝가리 정부는 나중에는 격리 면제까지 해주는 특별 대우로 한국 직원들을 환영했다. 손 PL은 그해 5~12월에도 중국에 전세기 12대를 띄우는 등 작전을 이어갔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그의 손을 거쳐 헝가리·중국에 간 직원은 약 1600명에 달한다.

손 PL은 K배터리 수출을 코 앞에서 이뤄낸 산증인이기도 하다. 2002년 연세대 물리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2003년 SKC에 입사했다. 2011년 SK이노베이션에 합류해 배터리 생산 공정을 구축하는 일을 주로 맡았다. 미국 배터리 공장 부지를 직접 보고 선택한 경험도 있다. 2018년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사업개발팀 소속 시절 미국 남동부 6개 주에 있는 30개 후보 부지를 7개월 동안 샅샅이 뒤져본 다음 조지아주 커머스시가 최종 부지로 선정되는 데 기여했다. 당시 제안서에 담았던 ‘2025년까지 2600명 고용’ 목표는 2년을 앞당긴 최근 모두 이뤄졌다.

“보이지 않게 묵묵히 일하는 사람 도와야” 

손 PL은 1만쪽 분량 교육용 문건을 직접 정리하고, 기술자 등 현지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작업 참고서를 한국어‧영어‧중국어‧헝가리어 등 4개 언어로 만든 뒤 동영상도 제작하는 꼼꼼함으로 사내에 정평이 나 있다. 그는 “최근 읽은 책 『인비저블』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기 일을 묵묵히 하는 사람들로 인해 일이 진행된다’는 문장이 와 닿았다”며 “배터리를 만드는 직원들이 그런 분들이고, 그들이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일할 환경을 조성하는 게 내 숙제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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