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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금 동결한다는데…한전 적자, 가스공 미수금까지 ‘40조 펑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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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한국전력이 지난해 32조6000억원에 이르는 적자를 냈다. 역대 최악의 실적이다. 연료는 비싸게 사서 전기는 값싸게 공급한 탓에 손실이 눈덩이로 불었다. 한국가스공사가 연료비로 갚아야 할 돈(미수금)도 지난해 말 8조6000억원을 기록했다. 두 공기업을 합쳐 40조원 넘는 돈이 ‘펑크’가 났다.

24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전력공사 서울본부의 모습. 연합뉴스

24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전력공사 서울본부의 모습. 연합뉴스

24일 한전은 지난해 실적을 결산한 결과 32조6034억원 영업손실(연결 기준)이 났다고 발표했다. 손실액은 2021년 5조8465억원보다 26조7569억원 늘었다. 불과 1년 사이 5배 넘게 불었다. 지난해 매출액 71조2719억원을 한참 웃도는 103조8753억원을 영업비용으로 썼기 때문이다.

전력 판매가 늘고 요금도 올라가면서 매출액은 1년 전과 비교해 10조5983억원(17.5%) 증가했지만 치솟는 연료비, 전력 구입비를 따라가지 못했다. 전년 대비 연료비는 77.9%, 전력 구입비는 93.9% 각각 늘었다. 이를 포함한 영업비용은 1년 사이 37조3552억원(56.2%) 증가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공급망 교란 등 여파로 연료비가 급등했기 때문이다.

전력을 생산할 때 연료로 쓰는 액화천연가스(LNG)와 유연탄 가격은 1년 사이 2배로 올랐다. 한전에 따르면 LNG 값은 2021년 t당 73만4800원에서 지난해 156만4800원으로, 유연탄은 t당 139.1달러에서 359달러로 각각 113%, 158.1% 상승했다.

한전은 지난해 4월과 7월, 10월 3차례에 걸쳐 전기요금을 킬로와트시(㎾h)당 19.3원 인상했지만 손실을 메우기엔 한참 모자랐다. 올 1월 ㎾h당 13.1원 요금을 추가로 올렸지만 부족하긴 마찬가지다. 이날 한전은 실적을 발표하면서 “비핵심자산 매각, 사업 시기 조정, 비용 절감 등 향후 5년간 총 20조원의 재무 개선을 하겠다”고 했다. 근본적 해결책은 안 된다. 한전이 국회에 제출한 경영 정상화 방안을 보면 올해 ㎾h당 51.6원은 올려야 적자 해소가 가능하다.

지난달 26일 서울 시내 한 주택가에 설치된 가스 계량기의 모습. 2023.1.26/뉴스1

지난달 26일 서울 시내 한 주택가에 설치된 가스 계량기의 모습. 2023.1.26/뉴스1

가스공사도 비상이다. 이날 가스공사 공시를 보면 지난해 민수용(주택ㆍ영업용) 가스요금 미수금만 8조6000억원에 달한다. 가스공사는 연료비와 요금 차이로 인한 손실을 실적에 포함하지 않고 미수금으로 처리한다. 영업이익은 1년 전보다 99% 늘어난 2조4634억원(연결 기준)을 기록했지만 ‘무늬만 흑자’다. 8조원 넘는 미수금을 반영하면 가스공사는 사실상 자본잠식 상태다.

요금이 대폭 오르거나 국제유가가 가파르게 떨어지거나 해야 적자든, 미수금이든 해소가 가능하다. 하지만 모두 어렵다. 지난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공공요금은 최대한 상반기 동결 기조로 운영한다”고 못을 박은 데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전기ㆍ가스 등 에너지 요금은 국민 부담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겠다”고 공언했다. 고물가, 경기 침체를 이유로 정부가 요금 인상 속도 조절에 나서면서 에너지 공기업 부실이 장기화ㆍ고착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한전 적자만 32조원이 넘는데 약 600조원인 한국 정부 1년 예산의 5%와 맞먹는 막대한 규모”라며 “2025년까지는 국제 에너지 가격이 안정되긴 어려워 보인다. 지금처럼 요금을 묶어놓기만 하면 한전의 전력 구매, 가스공사의 천연가스 도입을 위한 자금 마련 자체가 어려워지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 교수는 “더 큰 문제를 막기 위해서라도 단계적으로 요금을 인상하되,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은 대폭 늘리고 에너지 소비는 과감하게 줄이는 등 정공법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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