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23일 새벽 함경북도 김책시 일대에서 동해를 향해 전략순항미사일 ‘화살-2형’ 4발을 발사했다고 24일 주장했다.
북한이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고 주장한 23일엔 우리 군 당국에선 이와 관련한 별도 공지가 나오지 않았다. 이 때문에 군이 북한의 순항미사일의 탐지에 실패했거나, 북한이 허위 주장을 통한 의도적 교란 전략을 펼치는 게 아니냔 관측이 나온다.
‘모의 핵탄두’ 탑재한 순항미사일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동해에 설정된 2000㎞ 계선의 거리를 모의한 타원 및 8자형 비행 궤도를 1만 208초(2시간 50분 8초)∼1만 224초(2시간 50분 24초)간 비행해 표적을 명중 타격했다”고 밝혔다.
통신은 이어 “핵억제력의 중요 구성 부분의 하나인 전략순항미사일 부대들의 신속대응 태세를 검열 판정했다”며 “치명적인 핵반격 능력을 백방으로 강화해 나가고 있는 공화국 핵전투무력의 임전태세가 다시 한 번 뚜렷이 과시됐다”고 자평했다.
북한의 주장대로라면 탐지가 쉽지 않은 순항미사일에 모의 핵탄두를 탑재한 핵공격 훈련을 했다는 의미가 된다.
軍 “다양한 가능성 분석 중”
군 당국은 북한 순항미사일 탐지 여부에 대해 명확히 밝히진 않았다. 다만 합동참모본부는 “북이 주장하는 시간에도 다양한 한ㆍ미 정찰감시 자산들이 해당 지역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며 “북한 주장의 진위를 포함하여 다양한 가능성을 두고 분석 중”이라는 입장을 내놨을 뿐이다.
가능성은 여러가지다. 먼저 탐지가 어려운 순항미사일의 특성상 항적이 포착됐더라도 군이 순항미사일로 판단하지 않았을 수 있다. 또 북한이 군의 대비 태세를 교란시키기 위해 쏘지도 않은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허위 주장을 펼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북한은 지난해 11월 2일 “울산시 앞 80㎞ 부근 수역 공해상에 2발의 전략순항미사일로 보복타격을 가했다”고 밝혔는데, 당시 군은 “북한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북한이 허위 주장을 펼친다는 취지로 반박하기도 했다.
군 관계자는 이날도 북한의 순항미사일 도발 발표에 대해 “한ㆍ미 공조 하에 면밀히 분석 중”이라면서도 “북한의 발표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다르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북한의 (의도에) 말리거나, 우리의 (탐지)능력 등이 (북측에)전달될 수 있다”며 “북한 발표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가 다르다는 것 외에는 말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北 “美 도발, 선전포고로 간주할 것”
북한은 순항미사일 도발을 주장한 직후 담화를 내고, 이번 도발이 한ㆍ미 연합훈련과 유엔 차원의 대북 제재에 대한 반발임을 분명히 했다.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은 이날 담화에서 “미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적대적이며 도발적 관행을 계속 이어가다가는 우리 국가에 대한 선전포고로 간주될 수 있다”며 “미국이 남조선에 대한 전략자산 전개 공약을 포기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반대하는 각종 명목의 연합훈련들을 중지하는 것과 같은 명백한 행동적 입장을 보이라”고 요구했다.
권 국장은 특히 한ㆍ미 국방부가 22일(현지시간) 미 국방부 청사(펜타곤)에서 제8차 확장억제수단 운용연습(DSC TTX)을 개최한 것을 “핵전쟁 시연”이라고 주장했고, 한ㆍ미 대표단이 미국의 핵추진 전략잠수함 기지를 공동 방문한 것을 “핵잠수함 기지 방문놀음”이라며 과민한 반응을 보였다.
핵추진 전략잠수함은 미국의 ‘핵 3축’ 가운데 가장 생존성이 강한 자산으로 꼽힌다. 결국 한ㆍ미의 대북 핵 억지력 강화 기류에 대해 북한이 강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한ㆍ미 “北, 핵 사용하면 정권 종말”
이 때문에 한ㆍ미는 북한의 도발이 이어질수록 오히려 보다 강한 대응으로 맞서고 있다.
북한이 순항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고 주장한 23일 한ㆍ미 국방부는 펜타곤에서 북한의 핵공격을 가정한 대응을 논의하기 위한 TTX를 열었다. 그리고 이날 공동 발표를 통해 “북한이 미국이나 동맹 및 우방에 핵을 사용한다면, 그 위력과 상관없이 용납할 수 없으며 이는 북한 정권의 종말을 초래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저위력 전술핵으로 한국을 타격하더라도 제한적 보복을 넘는 강력한 대응을 가한다는 원칙을 천명한 의미다.
미국은 특히 전략폭격기뿐만 아니라 전술핵 폭탄을 달 수 있는 전투기 등 맞춤화된 유연한 핵전력을 지속 전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항공기를 한반도에 수시로 전개해 북한의 핵·미사일을 억제하겠다는 뜻이다. 한·미 대표단은 또 TTX 직후엔 조지아주 킹스베이 해군 기지의 핵추진 전략잠수함 훈련 시설을 함께 돌아봤다. 한ㆍ미가 핵잠수함 훈련기지를 공동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핵잠수함 역시 대북 확장억제 수단에 포함된다는 것을 사실상 공식화한 의미가 있다.
실제 토마스 뷰캐넌 잠수함전단장은 핵잠수함의 임무를 설명하며 “미국이 운용 중인 핵잠수함 전력은 동맹에게 제공하는 미 확장억제의 핵심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오하이오급 핵잠수함은 핵탄두를 장착한 트라이던트-2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24발이나 토마호크 150여 발로 무장할 수 있다.
“한ㆍ미 공조 강화에 대한 두려움”
전문가들은 북한의 최근 대응에 대해 “한ㆍ미의 군사 공조 강화에 대한 경계심을 강하게 표출하는 동시에 한ㆍ미 또는 한국 내 균열을 유도하려는 의도”란 의견을 내놨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날 북한이 주장한 사거리 2000㎞는 한ㆍ미 연합군 또는 한ㆍ미ㆍ일 함대를 겨냥했음을 밝힌 것”이라며 “특히 미국 전략자산의 빈번한 한반도 전개에 대해 ‘정면승부’ 의지와 능력을 과시한다는 점에서 한반도 안보위기의 차원과 강도가 심화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도 “이번 도발은 한ㆍ미의 TTX에 대한 맞대응 성격”이라며 “특히 그간 ‘핵무기’ 차원으로 거론하지 않았던 순항미사일을 ‘핵전투무력’으로 분명히 밝히면서 한ㆍ미의 확장억제력에 대한 다양한 핵무기 수단을 가졌음을 과시하려는 성격”이라고 분석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악화된 북한의 경제 상황을 감안하면 향후 20여차례 이어질 한ㆍ미 연합훈련에 막대한 자원을 소모해 대응하기는 쉽지 않다”며 “북한이 단기간 긴장감을 집중적으로 고조시킨 뒤 7차 핵실험을 통해 국면을 전환하는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