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신동찬의 고발한다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1주년…대러 제재에 미온적인 한국

중앙일보

입력

신동찬 변호사

나는 고발한다. J’Accuse…!’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했다.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포함한 많은 이들은 독재자 푸틴이 동원한 압도적 무력 앞에, 국정 경험 없는 코미디언 출신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허약한 정부가 금세 무너질 것이라고 봤다.

대러 재제 기여도, 한국과 서방의 평가 달라 #지난해 FDPR 예외국서 빠진 것 재현될 수도

그러나, 개전(開戰) 1주년이 된 현재 젤렌스키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용감하게 러시아 침공에 맞서고 있다. 얼마 전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과 함께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밝은 햇살 아래서 미국 등 자유 진영이 우크라이나를 계속 지원할 것임을 밝히는 모습과, 자신이 시작한 침략 전쟁임에도 우크라이나 땅에 발도 못 들이고 모스크바에서 개전 책임을 미국과 서방에 떠넘기는 푸틴의 대조적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깜짝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났다. 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깜짝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났다. AFP=연합뉴스

지난 1년은 또한, 이 전쟁이 머나먼 동유럽에서 일어난, 우리와 무관한 사태가 아님을 실감하게 만든 한 해이기도 했다. 세계적 곡창인 우크라이나 흑토 지대가 주요 전장이 된 탓에, 국제 밀가루 가격이 폭등해 국내 빵 값도 비싸지는 사태가 벌어졌는가 하면, 최근 난방비 폭탄으로 빚어진 소란 역시 우-러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앙등에 상당 부분 그 원인이 있다 하겠다. 심지어 우리 밥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태마저 러시아에 대한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 탓에 귀한 금(金)태가 되는 품귀 현상마저 빚어졌다.

더구나 미국을 포함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등 서방 진영은 바이든의 전임자 트럼프 때와는 달리, 전례 없는 공동 전선을 형성해 우크라이나군에 무기와 군수품을 지원하며, 러시아의 전쟁 수행 능력에 타격을 입히기 위해 광범위하고 강력한 국제 경제 제재를 시행 중이다. 다만 핵무기 보유국인 러시아와의 전면전을 피하려고 직접 군사 개입은 하지 않고 있다.

한국도 이런 국제 사회의 대(對)러 제재에 동참해 57개 품목의 대러 수출을 통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로 말미암아 한국도 다른 서방국들처럼 러시아에 의해 이른바 비(非) 우호국으로 지정돼 러시아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도 큰 피해를 보고 있다. 반면 우크라이나를 돕느라 무기 및 방산물자가 소진된 우크라이나의 접경국 폴란드에 이른바 K-방산을 대대적으로 수출하는 파급효과까지 누렸다. 나아가 한국 기업들도 전후 우크라이나 복구에 대대적으로 참여할 수 있으리라는 장밋빛 희망에 부풀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방한 중인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을 접견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방한 중인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을 접견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그러나 1월 말 방한한 옌스 스톨텐베르그 NATO 사무총장은 한국이 무기를 판매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적극적으로 우크라니아를 군사적으로 원조할 것을 촉구했다. 우리 스스로 평가하는 우크라이나 전쟁 기여도와 서방에서 보는 한국의 이 전쟁의 기여도 사이에 온도차가 있음을 실감하게 했다. 특히 미국 및 일본을 포함한 G7과 EU, 그리고 호주는 금년 초부터 러시아산 원유 수입에 대하여 소위 가격 상한제(price cap)를 부과하는 경제 제재를 시행 중인데, 글로벌 중추 국가를 지향하겠다는 윤석열 정부는 여기에 빠져 있어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이른바 가격 상한제는 ‘사우디 아라비아가 핵무기를 가진 격’이라고 비유되는 산유국 러시아의 주 수입원인 원유 판매에 타격을 주어 침략 전쟁 전비(戰費)를 제대로 조달하지 못하게 하게 하려는 제재이다. 현재 러시아산 원유의 가격 상한은 배럴당 60달러로 정해졌는데, 이를 초과해 러시아산 원유를 해상으로 수입하면, 여기에 수반되는 운송, (재)보험, 금융 서비스 등을 금지시키겠다는 것이 그 주요 내용이다. 사실 유럽 국가들도 이번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해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실정임에도 인위적으로 국경선을 다시 긋겠다는 푸틴의 침략 전쟁에 결연히 반대하겠다는 의지를 원유가 상한제에 참여해 표방하고 있는 셈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과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 [연합뉴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과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 [연합뉴스]

그런데 대한민국은 이러한 국제적 대러 원유 가격 상한제 실시 국가들의 명단에서 빠져 있다.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는 지난해 7월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 간의 회담에서도 거론됐다. 한국 정부가 긍정적으로 검토한다는 취지의 보도자료까지 나왔던 점에 비추어 보면, 호주까지 들어간 명단에 한국이 보이지 않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우리 정부로서는 6자 회담 당사국이었고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핵보유국인 러시아와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고 싶겠고, 가뜩이나 서민들의 삶을 팍팍하게 하는 가스, 전기, 난방비가 크게 오르는 상황에서 국내 원유 수입량의 5.6% 정도를 차지하는 러시아산 원유 수입이 막히는 일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았을 수 있겠다. 러시아는 원유 상한제 동참 국가들에게는 자국산 원유를 팔지 않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우리 정유업계의 부담도 정부로서는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주년(2월 24일)을 앞둔 21일(현지시간) 국정연설을 위해 걸어가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주년(2월 24일)을 앞둔 21일(현지시간) 국정연설을 위해 걸어가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연합뉴스

하지만, 지난해 푸틴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직후 러시아에 대하여 미국이 해외직접생산규칙(Foreign Direct Product Rule) 제재를 시행할 때 무려 전세계 30여개국이 미국과 유사한 수출통제 조치를 러시아에 대하여 취해 미국으로부터 예외국 지위를 인정 받았으나, 하필이면 한국만 조치를 취하지 않아 예외국에 들지 못 했다. 그 결과 당시 우리 기업들에게 오히려 큰 부담을 주었는데 그 악몽이 이번에도 재현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당시 문재인 정권은 러시아 눈치를 보며 우왕좌왕하다가 예외국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비유하자면, 미국 교장 선생님이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반 담임 선생님의 지도 방침에는 공감해 그 반 학생들(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기업들)은 담임 선생님(각국 정부)의 숙제 검사만 받아도 충분하다고 인정해 준 반면, 한국반 담임 선생님의 숙제 검사는 믿을 수 없다며 한국 반 학생들(우리 기업들)은 교장실까지 와서 직접 숙제 검사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당시 이런 상황이 무려 한 달여간 이어지다가 부랴부랴 뒷수습에 나선 끝에 겨우 FDPR 예외국 지위를 인정받았다.

과연 이번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에 주요 서방 국가들 중 사실상 한국만이 참여하지 않은 게, 국익을 치밀하게 고려한 결단의 산물이었던 것인지, 아니면 앞서 본 FDPR 사건이나 최근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파장에 우왕좌왕했던 사례들의 연장 선상인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만약 불행히도 후자의 경우라면 세계 경제의 험난한 파고 속에 북한 핵문제까지 다시 불거진 요즘 우리가 감당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미국발 파고까지 더해지는 것이 아닌가 싶어 걱정이 된다. 즉 원유가 상한제에 동참하지 않은 한국에 북핵 대응에 미적지근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은 유무형의 불이익을 줄 방법은 얼마든지 있지 않겠는가?

전쟁 1주년을 맞은 오늘, 대러 제재에 보다 적극 동참하여 우리의 실리를 찾아가는, 아니 예기치 못한 피해라도 한국 경제에 미치지 않게 미리 대비하는 한국 정부의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