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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이창용 일단 긴축스톱…이젠 파월 입에 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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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18개월 만에 금리 인상 페달에서 발을 뗐다. 지난해 4분기부터 수출 부진과 소비 위축이 심해지면서 금리를 계속 올릴 만한 상황이 되지 않아서다. 한 번 더 시장에 충격을 주기보단 그간 금리 인상에 따른 물가 안정 효과를 지켜보겠다는 의미다.

한은은 23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3.5%로 유지하기로 했다. 금통위원 6명 중 인상 의견을 낸 사람은 1명에 불과했다. 금통위는 앞선 일곱 차례 회의에서 연달아 인상을 결정했는데, 이번 동결로 인상 행진은 ‘일단 멈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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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정책 여건의 불확실성이 높은 만큼 기준금리를 유지하면서 불확실성 요인을 점검하는 것이 적절한 시기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3월부터는 물가 상승률이 4%대로 낮아지고, 올해 말 3%대 초반을 예상한다”며 “그렇다면 굳이 금리를 더 올리기보다 이 경로대로 가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향후 인플레이션 둔화 속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최종 금리 수준, 중국 경기 회복 동향 등 여러 불확실성에 대해 점검할 필요성이 커졌다는 뜻이다. 이 총재는 이날 ‘불확실(성)’을 31번이나 언급했다. 그러면서 “자동차를 운전하는데 안개가 가득해 어느 방향인지 모를 땐 차를 세우고 안개가 사라질 때까지 갈지, 말지 봐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여기에 국내 경기 상황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는 것도 고려했다. 지난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수출 부진에 민간 소비까지 얼어붙으며 -0.4%로 돌아섰고, 올해 1분기 전망도 밝지 않다. 수출도 이달까지 전년 동기 대비 5개월 연속 감소가 우려된다. 고금리와 경기 악화 여파로 부동산 시장도 침체 국면이다. 한은은 이날 수정 경제 전망을 내놓으며 올해 경제성장률을 기존보다 0.1%포인트 낮춘 1.6%로 예측했다. 올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기존 3.6%에서 3.5%로 하향 조정했다.

지난해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주범이었던 국제유가가 떨어지면서 물가 인상 압박을 덜어준 점도 고려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90달러(서부텍사스유 기준)를 웃돌던 국제유가는 이날 74달러대로 떨어진 상태다. 한은도 이에 따라 올해 연평균 국제유가 전망치(84달러)를 지난해 11월 전망 대비 9달러 낮췄다. 이 총재는 “경기나 금융 안정도 고려하지만 그간 생각해 온 디스인플레이션(물가상승 완화)의 경로로 가고 있기 때문에 그 효과를 지켜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창용 “안개 자욱, 차 세우고 지켜봐야” 불확실성 31번 언급

파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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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은은 이번 결정이 ‘숨 고르기’ 성격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 총재도 비둘기파(긴축 완화 기조)적으로 해석하는 것에는 선을 그었다. 그는 “이번 동결을 금리 인상 기조가 끝났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물가 목표 2% 수준으로 가는 것이 확인되면 그때 인하 가능성을 논의할 텐데, 몇 개월 새 그런 변화가 나타날 여건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향후 3개월 내 최종금리 수준과 관련해 금통위원 6명 중 5명이 “3.75%까지 올릴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 1월에는 동결론과 인상론이 3대 3으로 팽팽히 맞섰지만 향후 인상 요인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보는 위원이 늘어난 것이다. 이 총재는 이런 사실을 언급하며 “금리 동결을 ‘금리 인상이 끝났다’로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창용

이창용

통화정책 결정문에도 ‘긴축 기조를 상당 기간 이어가면서 추가 인상 필요성을 판단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문구가 새로 추가됐다. 한은의 물가 안정 목표(2%대 상승률)가 가시권에 들어오지 않는 한 금리 인하를 논의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의미다. 이는 한은이 통화정책 방향의 큰 줄기를 여전히 물가에 두면서, 대내외 경제 움직임에 따라 언제든지 추가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둔 것으로 풀이된다.

앞으로의 금리 인상 변수로는 Fed의 긴축 장기화가 첫손에 꼽힌다. 미국에선 Fed가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할 것이란 전망이 벌써 나오고 있다. 한·미 금리 격차 확대로 외국인 자금 이탈이 가속화하고 달러 대비 원화값이 급락할 경우 4월 금통위에서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남아 있다. 한·미 금리 역전 폭이 현재 1.25%포인트에서 향후 2%포인트 이상 벌어지고 그로 인해 원-달러 환율이 급등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선 “Fed의 영향으로부터 독립한 것은 아니지만 국내 요인을 보면서 금리를 결정할 수 있는 쪽으로 좀 더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다만 이 총재는 이와 관련해 “변동환율제하에서 한·미 금리차에 특정한 적정 수준은 없다”면서 “격차가 너무 벌어지면 변동 요인이 될 수 있으니 고려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장에선 지난 1년6개월간의 금리 인상 사이클이 마무리 수순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

이날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전 거래일 대비 0.046%포인트 내린 3.599%로, 10년물은 0.044%포인트 내린 3.595%로 거래를 마쳤다. 연내 금리 인하 가능성에 베팅한 것이다.

Fed가 22일(현지시간) 공개한 2월 FOMC 정례회의 의사록에 따르면 회의 참석자 대부분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밝혔다. “인플레이션이 낮아지고 있는 징후가 있지만 더 많은 기준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일부 참석자는 금리 인상을 중단하는 등 긴축정책을 성급하게 종료할 경우, 최근 개선되고 있는 경제 상황이 다시 악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Fed가 다음 달 21일 열릴 FOMC에서도 0.25%포인트 인상을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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