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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선박 주도권 경쟁, 한국 앞섰지만 중국 바짝 추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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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현대중공업이 독자 기술로 개발한 메탄올을 연료로 사용하는 중형 선박 엔진 ‘힘센엔진’의 모습. [사진 한국조선해양]

현대중공업이 독자 기술로 개발한 메탄올을 연료로 사용하는 중형 선박 엔진 ‘힘센엔진’의 모습. [사진 한국조선해양]

한국조선해양은 이달 중순 HMM과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 7척에 대한 건조 계약을 체결했다. 수주 금액은 1조1000억원 선이다. 지난달 유럽 소재 선사와 2조5200억원 규모의 메탄올 추진 초대형 컨테이너선 12척을 수주한 데 이어 2주일 만에 일궈낸 성과다.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알코올의 일종인 메탄올을 동력원으로 삼는 ‘메탄올 추진선’을 놓고 한·중 조선 업체 간 주도권 경쟁이 뜨겁다. 메탄올 추진선은 기존 선박 연료유보다 가격은 15%가량 비싸지만 황산화물(SOx)이나 질소산화물(NOx), 온실가스 같은 오염물질 배출이 적은 게 특징이다. 특히 세계 1위 해운사인 덴마크 머스크가 최근 2040년까지 ‘넷 제로’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하면서 관심이 더 커지고 있다.

머스크는 ‘그린 메탄올’을 선박 연료로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한 바 있다. 자동차 업계가 전기차로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면, 조선·해운 업계는 메탄올 추진선으로 전환을 서두르는 모양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국내 조선 업계는 일단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HD현대(옛 현대중공업) 계열의 한국조선해양은 지난 2021년 머스크와 세계 최초로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 8척을 수주하면서, 처음으로 대형 상선의 ‘메탄올 시대’를 열었다. 영국의 조선·해운시황 전문기관인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이달 초까지 전 세계에 발주된 메탄올 추진선은 총 70척이었다. 이 가운데 한국조선해양이 수주한 선박은 38척(54.2%)이다. 중형 조선사인 HJ중공업(옛 한진중공업)이 2척(2.9%)을 수주했다. 나머지는 중국 업체(42.9%)다.

메탄올 추진선을 둘러싼 수주 전쟁은 해운 업계의 패권 다툼과도 관련이 있다. 프랑스 CMA-CGM(업계 3위)과 중국 국영 COSCO(4위)는 중국 업체에 주로 발주했다. 두 회사는 해운 동맹인 ‘오션 얼라이언스’에 가입해 서로 긴밀하게 협력 중이다.

국내 업체들이 메탄올 추진선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한 건 발 빠른 준비 덕분이다. 한국조선해양은 2013년부터 메탄올 운반선을 건조(16척)해오며 관련 분야의 노하우를 쌓아왔다. 또 2020년부터 중형 독자 모델인 ‘힘센엔진’에 메탄올을 적용하기 위한 연구개발에 착수했다. 지난해 9월에는 기종 인증시험을 거쳐 전 세계 7대 선급으로부터 인증서를 받았다. 대형 엔진 분야에서는 일찌감치 독일 만에너지솔루션(MAN-ES)이 개발한 2행정(대형) 메탄올 엔진을 실제 선박에 적용하기 위한 생산·시험설비 개발에 나섰다. 반면 중국은 지난해 메탄올 추진 석유화학제품운반(PC)선 4척을 인도한 것이 전부다.

본격적인 경쟁은 이제부터다. 메탄올 추진선 발주가 시작된 건 2021년이다. 머스크를 비롯한 주요 해운사들이 메탄올 추진선을 차세대 표준으로 선택한 만큼 조만간 관련 시장이 급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전체 컨테이너선(TEU 기준) 발주량의 21%가 메탄올 추진선이었다. 여기에 중국 업체들은 해운선사·정부 등과 손잡고 뛰고 있다.

이 대목에서 국내 업체들의 고민이 읽혀진다. 익명을 원한 조선 업계 관계자는 “중국 업체들은 선사와 정부, 사실상 국영기업인 조선 업체가 협력해 물량 공세를 펼치는 형국”이라며 “기술력은 일단 국내 업체가 앞선다고는 하지만, 이들의 공세 앞에 얼마나 우위를 지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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