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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절반이 ‘스키천국’…솜눈 위를 날아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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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1년 중 100일 가까이 눈이 쏟아지는 곳. 일본 홋카이도는 모든 스키어의 로망의 땅이다. 침엽수로 촘촘한 토마무 산의 슬로프를 미끄러져 나가는 스키어들의 모습. 험준해 보이지만 초급자용 슬로프에 불과하다.

1년 중 100일 가까이 눈이 쏟아지는 곳. 일본 홋카이도는 모든 스키어의 로망의 땅이다. 침엽수로 촘촘한 토마무 산의 슬로프를 미끄러져 나가는 스키어들의 모습. 험준해 보이지만 초급자용 슬로프에 불과하다.

12월부터 3월까지 대략 4개월 가까이 눈 속에 뒤덮이는 겨울 왕국. 억지로 만든 눈이 아닌 천연 설에서 길게는 5월 초까지도 스키를 즐길 수 있는 곳이 일본 최북단 섬 홋카이도다. 스키어의 성지로 통하는 이곳에서 생애 첫 스노보드에 도전했다. 한낮에는 솜털 같은 ‘파우더 스노’ 위에서 스노보드를 즐겼고, 밤에는 산 아래 리조트로 내려와 맘 놓고 휴식을 누렸다. 홋카이도의 겨울은 너무나 혹독하고도 눈이 부셔, 되레 현실감이 없었다. 홋카이도에서 일생의 버킷 리스트를 하나 지웠다.

국경의 긴 운해를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설국』의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이 땅의 겨울을 보았다면, 아마도 이런 문장을 남기지 않았을까. 인천을 떠난 지 2시간 50분,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며 구름 아래로 내려오자 그야말로 설국이었다. 항구와 도로, 숲과 들판, 집집이 두툼한 생크림 같은 눈을 얹고 있었다. 차창 밖 모든 것이 하얗고 투명했다.

자작나무 사이를 헤쳐가며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 홋카이도의 스키장에서는 흔한 풍경이다.

자작나무 사이를 헤쳐가며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 홋카이도의 스키장에서는 흔한 풍경이다.

홋카이도가 전 세계 스키어의 로망이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눈이 다르다. 홋카이도의 눈은 이른바 ‘파우더 스노’다. 수분이 거의 없는 파우더 스노는 손에 쥐면 뭉쳐지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흩어져 날아가 버린다. 소위 인공눈으로 다진 ‘얼음판’에서 스키를 타는 것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홋카이도에만 116개의 스키 리조트가 있을 만큼 인프라도 탄탄하다. 이들이 품은 슬로프를 하나로 이으면 장장 487㎞에 이른다고 한다. 적설량도 많다. 한 해 평균 100일 가까이 눈이 내리고, 10m 이상의 눈이 쌓인다(국내 최대 적설량은 1962년 1월 울릉도가 기록한 2.93m).

“50년째 초급코스, 그래도 충분해”

공항에서 차로 2시간을 달려 홋카이도 스키 성지 중 하나인 토마무(1239m) 산에 닿았다. 슬로프 29개(약 22㎞)를 갖춘 이 거대한 산에서 난생처음 스노보드에 도전했다. 2시간짜리 짧은 기초반 강습만 마치고, 냅다 곤돌라에 올랐다. 일어서기, 넘어지기, 일명 ‘낙엽’으로 통하는 ‘토 사이드 슬리핑(Toe Side Slipping)’ 밖에 할 줄 몰랐지만, 지난 일주일간 유튜브로 10시간 이상 학습한 터라,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뷔페 레스토랑에서는 참치회를 비롯해 다양한 해산물 요리와 디저트, 각종 주류를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다.

뷔페 레스토랑에서는 참치회를 비롯해 다양한 해산물 요리와 디저트, 각종 주류를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다.

29개 슬로프가 서로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 일단 코스부터 짰다. 1171m 높이 곤돌라 정류장에서 리조트 센터(540m)로 이어지는 초급자 코스를 따라 연결하니 자그마치 4.85㎞짜리 코스가 완성됐다.

뷔페 레스토랑에서는 참치회를 비롯해 다양한 해산물 요리와 디저트, 각종 주류를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다.

뷔페 레스토랑에서는 참치회를 비롯해 다양한 해산물 요리와 디저트, 각종 주류를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다.

일단 출발. 포근한 구름처럼 보이던 슬로프는 정상에서 보니 전혀 위압감이 달랐다. 동네에서 쌓은 미천한 스케이트보드 실력이나, ‘파우더 스노는 넘어져도 안 아프다’는 격려가 눈 위에서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처음에는 낙엽 자세로 1시간 이상 걸려 내려왔고, 이튿날에는 눈길을 헤매다 다른 리조트 센터로 내려왔다. 셋째 날 고대하던 ‘S자’ 슬라이드를 터득했다. 그러고도 수차례 미끄러지고 구르기를 반복했지만, 걸음마를 뗀 아이처럼 성취감이 대단했다. 리프트에서 만난 75세 일본인 할아버지도 아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번역기를 통한 짧고 건조한 대화였지만 울림이 꽤 컸다. “50년간 초급 코스만 타지만 충분하다.” “아침 운해를 헤치며 눈길을 내려올 때가 가장 행복하다.”

일본 스키 여행의 반은 잠자리다. 알고 계시나. 일본에는 우리네 같은 ‘야간 스키’나 ‘밤샘 스키’ 문화가 없다. 대부분의 슬로프와 리프트가 오후 6시면 문이 닫힌다. 하루만 놀다 내려갈 게 아니라면, 안락하고 근사한 리조트를 잡는 게 여행의 질을 높이는 방법이다.

클럽메드 토마무의 객실. 창 너머로 순백의 설경이 보인다.

클럽메드 토마무의 객실. 창 너머로 순백의 설경이 보인다.

이번에는 클럽메드 리조트에 숙소를 잡았다. 클럽메드는 전 세계 75개(26개국) 리조트를 갖춘 글로벌 기업. 클럽메드가 운영하는 24개 스키 리조트 중 세 곳(토마무·키로로피크·사호로)이 홋카이도에 몰려 있었다.

위스키 바인 ‘네스트바’는 아늑한 분위기 덕에 사진 명당으로 통한다.

위스키 바인 ‘네스트바’는 아늑한 분위기 덕에 사진 명당으로 통한다.

클럽메드는 요즘 호텔·리조트 서비스의 대세로 떠오른 ‘올 인클루시브’ 시스템을 전 세계에 유행시킨 주인공이다. 객실뿐 아니라 왕복 항공권과 공항~리조트 교통편, 식사와 주류, 편의·놀이시설 등을 하나로 묶어 서비스한다. 성수기인 이맘때는 하룻밤 머무는 데 100만원이 훌쩍 넘지만, 만족도가 높다. 클럽메드 관계자는 “하룻밤 묵고 가는 투숙객은 제로에 가깝다”면서 “기본 4박 이상 머문다”고 귀띔했다.

토마무에서 스키를 탄 뒤에는 실내 파도풀이나 노천탕에서 몸의 피로를 풀 수 있다.

토마무에서 스키를 탄 뒤에는 실내 파도풀이나 노천탕에서 몸의 피로를 풀 수 있다.

조식 후 요가 체험, 쿠킹 클래스, 야키니쿠 바비큐나 뷔페 요리로 배 채우기, 스키(강습, 리프트권 포함) 후 실내 파도풀에서 물놀이…. 이곳에서의 일과는 대개 이런 식으로 흘러갔다. 모두 추가 비용 없이 즐길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노천탕에 걸터앉아 펑펑 쏟아지는 눈을온몸으로 받을 때 가장 행복감이  컸다. 토마무에서 만난 앙리 지스카르데스탱(67) 클럽메드 회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품격 휴양을 제공하는 우리의 방식이 맞았다는 걸 팬데믹을 겪으며 새삼 확인했다.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토마무나 몰디브 리조트처럼 매출이 뛴 곳도 많았다. 향후 2년 안에 전 세계 17개 리조트를 새로 오픈할 예정이다.”

전 세계의 수많은 호텔·리조트를 다녀봤지만 이곳처럼 열정적인 리조트는 처음이었다. ‘G.O(Gentle Organizer)’라 불리는 리조트 상주 직원들이 매일 밤 자정 너머까지 나이트 파티를 주도했다. 총지배인을 비롯해 체크인을 돕는 리셉션 직원, 스키 강사, 리조트 의상 디자이너, 바텐더 등 다양한 직원이 무대에 올라 서커스와 군무를 펼쳤다.

오타루 시내 양조장서 생맥주 한 잔

옛 창고를 맥주 양조장으로 개조해 인기를 얻고 있는 오타루 운하 인근의 ‘오타루 비어’.

옛 창고를 맥주 양조장으로 개조해 인기를 얻고 있는 오타루 운하 인근의 ‘오타루 비어’.

홋카이도 서부 키로로피크 리조트에 머무는 동안 하루 짬을 내 오타루(小樽) 시내에 들렀다. 오타루는 과거 일본을 대표하는 항구도시였다. 1920년대 운하를 건설하며 물자와 사람이 모였단다. 1880년 홋카이도에서 처음 철도가 개통한 곳도 오타루였다.

오타루 중심가인 사카이마치 거리(小樽堺町通り)에는 옛 창고와 은행 등을 활용한 미술관·선물가게·카페 등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용도는 바뀌었지만, 과거 영광의 흔적이 여전하다. 개인적으로는 엇비슷한 분위기의 선물가게보다는 ‘오타루 비어’라는 이름의 양조장이 눈길을 끌었다. 1924년 건축해 긴 세월 창고로 쓰다가, 1995년 지금의 맥주 양조장으로 탈바꿈했단다. 창고 건물 특유의 눅눅하고 낡은 분위기가 푸근했다. 집채만 한 양조 설비, 세계 각국에 온 맥주병에 둘러싸여 생맥주를 들이켰다.

홋카이도 최대 관광지 중 하나인 오타루도 지난 연말 이후 한국인 여행자들의 방문이 크게 늘고 있다.

홋카이도 최대 관광지 중 하나인 오타루도 지난 연말 이후 한국인 여행자들의 방문이 크게 늘고 있다.

“일본관광청(JNTO)에 따르면 2023년 1월 방일 외래객 수는 잠정치로 약 156만 명에 달했다. 그중 한국인은 58만1071명으로 점유율이 가장 높았다.”

일본에서 이런 내용의 뉴스를 접했다. 산속에서는 크게 와 닿지 않았는데, 오타루 시내로 나오자 분위기를 체감할 수 있었다. 명물 오타루 운하를 내다보는 다리 위나, 이름난 오르골 선물 가게는 한국인이 대다수였고, 한국말이 월등히 더 크게 들렸다. 한국인이 돌아오면서 오타로 시내도 코로나 이전의 활기를 되찾은 듯 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오타루 한편의 ‘CHAFF’라는 드립 커피 전문점에서는 이런 환대도 받았다. 커피 맛이 좋아 한 잔 두 잔 홀짝였는데, 카페 사장으로부터 원두를 선물 받았다. 그것도 모자라 커피값은 뒷자리 현지인이 대신 내줬다. 그가 내민 스마트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나도 한국에 여행 갔을 때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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