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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후 ‘인공태양’ 뜬다…“천덕꾸러기 삼중수소는 귀하신몸”

중앙일보

입력

한국형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 'KSTAR'의 주장치 진공 용기 내부 모습. 1억도의 초고온 플라즈마를 안정적으로 버틸 수 있다. 현재는 성능 향상을 위한 유지 보수 단계에 있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한국형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 'KSTAR'의 주장치 진공 용기 내부 모습. 1억도의 초고온 플라즈마를 안정적으로 버틸 수 있다. 현재는 성능 향상을 위한 유지 보수 단계에 있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22일 대전 유성구에 있는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본관. 올 하반기 재개될 ‘플라즈마(고체·액체·기체를 넘어선 제4의 상태) 실험’을 위한 유지보수 작업이 한창이었다. 연구소 관계자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커다란 기계장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름 9m, 높이 6m에 무게만 1000t에 이르는, 도넛 모양의 원통형 토카막 주장치였다. 오는 10월이면 섭씨 1억 도 이상의 초고온 플라즈마를 50초 이상 유지하는 또 다른 세계 기록 도전에 나선다.

이 묵직한 기계장치가 세계 톱 수준의 ‘K-핵융합 기술’을 상징한다. 원자핵이 쪼개지는 핵분열과 반대로 원자핵이 결합하는 융합 순간에도 에너지가 방출된다. 태양이 에너지를 만드는 방식이다. 이때 나오는 에너지양은 핵분열 때보다 최대 7배 많다. 이론적으로는 환경오염이나 폐기물이 없고, 일단 발전을 시작하면 자원 고갈 우려도 없는 ‘꿈의 에너지’다.

대전 유성구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내부에 위치한 한국형 초전도 핵융합연구장치 'KSTAR'. 이희권 기자

대전 유성구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내부에 위치한 한국형 초전도 핵융합연구장치 'KSTAR'. 이희권 기자

현재 KSTAR는 토카막 내벽을 탄소 타일에서 텅스텐 디버터로 교체하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현재 KSTAR는 토카막 내벽을 탄소 타일에서 텅스텐 디버터로 교체하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한국은 독자 기술로 초전도 핵융합 연구장치인 ‘인공태양(KSTAR)’를 1995년 개발, 시험 가동하고 있다. 지난 2021년엔 1억 도 이상의 플라즈마를 30초 이상 유지하며 세계 기록을 세웠다. 핵융합 발전의 핵심 조건인 초고온 플라즈마의 장시간 운전기술을 입증한 것이다.

KSTAR의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선재 내부의 초전도 자석을 휘감은 얇은 필라멘트의 길이는 3765만㎞에 달한다. 지구와 달을 48회 왕복할 수 있는 길이다. 실험동 건물을 짓는 데 사용된 콘크리트는 5만1263m³로, 아파트 1000채를 지을 수 있다.

2026년까지 KSTAR를 이용해 1억 도 이상으로 300초 운전을 달성하는 게 연구원의 목표다. 윤시우 핵융합에너지연구원 부원장은 “일단 300초를 달성하면 이론적으로 24시간 내내 정상 상태 유지에 문제가 없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꺼지지 않는 인공태양’이 실제로 탄생한다는 의미다.

경북 경주시 양남면에 위치한 월성원전 1호기 전경. 한국수력원자력

경북 경주시 양남면에 위치한 월성원전 1호기 전경. 한국수력원자력

불을 꺼지지 않게 하는 데 땔감 중 하나가 삼중수소다. 삼중수소는 일반 수소와 달리 자연계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상 원자력발전소에서만 만들어진다. 모든 원전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삼중수소를 산업용으로 분리 생성할 수 있는 곳은 캐나다의 달링턴원전과 경북 월성원전 단 2곳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방사능 쓰레기’로 취급받던 삼중수소는 핵융합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귀하신 몸’이 됐다. 지금은 판매 단가가 g당 3500만원이 넘는다. 앞서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가 월성원전에서 누출되면서 사회적으로 크게 논란이 됐다. 익명을 원한 한 과학계 인사는 “(논란 당시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지만 이제는 삼중수소를 손에 쥐고 있어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프로젝트에서 고지를 선점하게 됐다”고 말했다.

KSTAR를 활용해 최신 실험에 집중하면서 한국의 응용 기술력은 세계 선두권으로 평가받는다. 원전 건설 등으로 노하우를 쌓은 국내 기업들이 ITER 프로젝트에 대거 참여해 지금까지 7000억원이 넘는 공사를 수주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이 2021년 1월 13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월성원전 비계획적 방사성 물질 누출 사건'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더불어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이 2021년 1월 13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월성원전 비계획적 방사성 물질 누출 사건'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핵융합 발전소가 실제 상업용 전력을 생산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골든타임은 얼마 남지 않았다. ITER는 이르면 2035년부터 본격적인 핵융합 에너지 대량 실증에 나선다. 투입 대비 출력 에너지를 10배 이상 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상용화에 성공하면 집채 만한 핵융합 발전소 한 기를 통해 국내 최대 규모 원전 중 하나인 새울원전 3·4호기보다 많은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정부는 2035년 건설 여부를 결정할 ‘한국형 핵융합 실증로’ 기본 개념안을 23일 통과시키며 본격적인 레이스에 뛰어들었다. 실증로는 핵융합 반응을 일으켜 전기 생산이 가능한지 검증한다. 유석재 핵융합에너지연구원장은 “이제 핵융합은 더는 ‘꿈의 에너지’가 아니라 현실 문턱 앞에 와 있다”며 “2050년에는 핵융합 발전이 실제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프랑스 카다라쉬에서 미국과 유럽연합(EU), 러시아, 중국, 일본, 인도, 한국 등 7개국이 함께 건설 중인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 이르면 오는 2035년부터 핵융합 에너지 실증에 나선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프랑스 카다라쉬에서 미국과 유럽연합(EU), 러시아, 중국, 일본, 인도, 한국 등 7개국이 함께 건설 중인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 이르면 오는 2035년부터 핵융합 에너지 실증에 나선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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