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넘게 우크라이나 전쟁에 몰두하는 러시아와 핵·미사일 고도화에 속도를 내는 북한, 그리고 이를 후방에서 지원하는 중국의 블록화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국제 평화를 깨뜨리는 수준의 안보 불안을 조성하고 이를 틈타 3국이 상호 협력하는 방식으로 밀착 구도를 강화하고 있다.
우크라전·북핵 계기 북·중·러 밀착 강화
최근 북·중·러 3국 간 밀착은 주로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러시아를 지원하고, 아사(餓死)자가 속출하는 북한과의 ‘뒷문 교역’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같은 밀착 공조의 구심점엔 중국이 자리하고 있지만, 북·러 간에도 은밀하고 불법적 주고받기가 이뤄지는 모양새다.
북·러 간 무기 거래가 대표적 사례다. 북한은 지난해 11월부터 줄곧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지원하기 위해 포탄과 군복 등을 지원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존 커비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지난 17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란에서 드론을 구입하는 한편, 북한으로부터 포탄을 사려고 하고 있다”며 국제사회의 단합된 대응 필요성을 강조했다.
관광비자 발급 간소화…北 외화벌이용 비판
이에 발맞춰 러시아는 최근 북한 주민에 대한 관광비자 발급 절차를 간소화했다. 23일 자유아시아방송(RFA) 보도에 따르면 미하일 미슈스틴 러시아 총리는 지난 16일 북한 등 19개국에 대해 숙박시설 예약증만으로도 최대 6개월 간 러시아에 체류할 수 있는 관광비자를 발급하는 규정을 승인했다. 해당 규정은 다음달 1일부터 적용된다.
북한의 경제 상황 등을 감안했을 때 주민들이 러시아로 관광 여행을 떠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이러한 규정의 적용 대상에 북한을 포함한 것은 북한 주민들의 해외 노동과 외화 벌이의 길을 터주기 위한 조치일 거란 분석이 나온다. 이는 북한 주민의 해외 노동을 금지하고 있는 대북 제재에 대한 위반·회피에 해당한다.
중국 역시 최근 북한과의 육상 교역을 재개하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일본 닛케이아시아의 지난 16일 보도에 따르면 최근 북·중 간 주요 육상 교역로인 나선-훈춘(琿春) 간 트럭 통행이 재개됐다. 2020년 10월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북·중 간 트럭·배·철도 등 화물 운송이 전면 중단된 이후 약 2년 5개월 만이다. 앞서 북·중은 지난해 9월부터 신의주에서 단둥(丹東)으로 이어지는 화물열차 왕래를 재개한 상태다.
푸틴 만난 왕이… "성숙하고 강인한 관계"
중국은 러시아에 대한 무기 지원 카드까지 검토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2월 우크라 전쟁이 시작된 이후 대러 제재에 반대하며 러시아로부터 석유·천연가스를 사들이고 각종 공산품과 첨단 전자제품을 러시아에 수출하는 등의 간접 지원에 주력했다. 만약 중국이 군수 장비나 탄약 등 직접적인 대러 무기 지원에 나설 경우, 이번 전쟁은 미·중 간의 전면적 대리전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실제 왕이(王毅)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은 지난 22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현재 국제 정세는 복잡하고 심각하지만 양국 관계는 이 같은 시련을 견뎌내고 성숙하고 강인해졌으며 태산처럼 안정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과 러시아의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는 제3자의 간섭을 수용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중·러가 힘을 모아 미국에 맞서겠다는 의지를 강조하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韓 국제법·가치 기반 대응…"역할 확대해야"
윤석열 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선 국제법의 측면에서 러시아의 침공 자체를 규탄하고, 자유·민주주의 등 보편적 가치에 입각한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1억 달러 규모의 인도적 지원에 나섰고, 추가적인 지원도 검토하고 있다. 다만 무기 지원에는 선을 그으며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북핵 문제에 대해선 당사국으로서 한·미 동맹과 한·미·일 공조를 활용해 국제사회 논의를 이끄는 등 주도적이면서도 원칙론에 입각한 대북 접근을 이어가고 있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국을 중심에 둔 자유주의 진영과 북·중·러 등 권위주의 국가들의 갈등과 블록화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그 경향이 훨씬 강화됐다 ”며 “한국은 주요 이슈에 대해 중국과 대비되는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과거 사드 보복 때와 비교하면 뜻을 같이하는 국가들의 공동 대응 전선이 강화된 만큼 한국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포함한 보다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