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경찰의 수사 종결권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수사준칙)’ 개정안 초안을 마련하면서다.
지난해 9월 한 장관은 검찰의 직접수사 개시 범위를 2대 범죄(부패·경제)로 축소하는 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에 대해 시행령 개정으로 맞받았다. 문재인 정부의 검·경 수사권 조정을 되돌리려는 조치가 이번에 추가로 나온 것이다. 졸속으로 수사권 조정이 진행된 탓에 부실수사 등의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다는 문제 의식에서다.
법무부 “경찰 불송치 사건, 검찰이 송치 요구할 길 넓힌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법무부 주관으로 검찰·경찰·해경·외부전문가가 참여하는 ‘책임수사시스템정비협의회’가 구성된 뒤, 법무부는 11월 수사준칙 개정안 초안을 마련해 경찰 등 관계기관에 의견을 요청했다. 경찰은 12월 의견을 회신했고, 현재 법무부와 행정안전부의 협의 절차가 진행 중이다.
수사준칙 개정안 초안의 핵심은 세 가지다. 무엇보다 경찰이 무혐의로 판단해 사건을 검찰에 불송치할 경우 예외적으로 검찰이 송치를 요구할 수 있는 길을 넓힌 게 돋보인다.
현행 수사준칙에 따르면 경찰은 불송치 기록만 검찰에 송부하고, 검찰은 불송치 처분이 위법·부당한 때에 한해 경찰에 재수사를 요청할 수 있다. 재수사 요청에도 위법·부당한 내용이 시정되지 않으면 검찰은 사건을 송치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반면 개정안 초안은 ‘재수사 요청에 대한 수사가 전부 또는 일부 이뤄지지 않은 경우’에도 송치를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개정안 초안의 두 번째 요점은 경찰 송치 사건을 두고 검찰이 보완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원칙적으로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하게 돼 있는 걸 ‘검사가 직접 보완수사 하거나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다’라고 바꾸는 것이다.
이 밖에 공소시효가 6개월로 짧은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의 경우 ‘공소시효 만료일 3개월 전까지 검사와 경찰은 상호 의견을 제시·교환해야 한다’라는 조항을 넣었다.
한 장관은 지난 1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부정부패 엄정 대응 및 법질서 확립’과 관련한 업무보고를 하며 “개정 수사준칙을 통해 수사 지연과 부실수사 등의 부작용을 해소하겠다”라고 예고했다.
경찰 “수사권 조정 핵심 무너뜨리려는 것” 반발
경찰은 특히 불송치 사건과 관련한 검찰의 ‘재수사 요청 후 송치 요구’ 확대안에 대해 반발한다. 경찰청에선 “재수사 후 송치 요구는 법률상 근거가 없어 원칙적으로 삭제가 바람직하며 예외적으로 규정하는 경우에도 요건을 엄격히 규정해야 한다”라며 관련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한 경찰 간부는 “수사권 조정의 핵심을 무너뜨리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경찰은 원칙적인 보완 수사 주체를 경찰에서 검사로 바꾸는 안에 대해선 동의하는 입장이다. 다만 “경찰에 대한 보완 수사 요구는 필요 최소한도에서 예외적으로(직접 보완 수사가 현저히 불합리·불가능 등 때) 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라고 제안했다.
한편 개정안 초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검찰과 경찰이 서로 “상대 기관이 원칙적으로 보완 수사를 하도록 하자”라고 떠미는 분위기였다고 알려졌다. 논의에 참여한 정웅석 한국형사소송법학회장(서경대 교수)은 “국민의 인권과 재산을 위해 양 기관이 서로 수사를 하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서로 책임을 떠넘기려고 해 검찰과 경찰을 모두 질타했다”라며 “애초에 졸속으로 수사권 조정을 밀어붙인 게 근본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