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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세계 속 중국]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일대일로를 강타하다

중앙일보

입력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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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중남부와 시리아 서북부를 지난 2월 6일 오전 4시 17분(현지시간)과 9시간 뒤에 각각 규모 7.8과 7.7의 쌍둥이 지진이 뒤흔들었다.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은 막심한 인명 희생과 물질 피해를 낳은 것은 물론 세계를 연결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BRI)와 유라시아 대륙을 동서로 잇는 중앙회랑(中央回廊‧Middle Corridor)의 구상에도 일부 타격을 안겼다.

우선 현재까지 일대일로 구상에 따라 중국이 튀르키예에 직접 투자한 사업 중 최대 규모인 동남부 해안의 엠바 후누툴루 석탄화력발전소가 바로 지진 피해지역인 아다나주에 위치한다. 총 21억 달러를 투자해 발전설비용량 1320MW의 초대형 화력발전소를 2019~2022년 건설하는 프로젝트다. 예정 시한을 넘겼지만, 아직 완공하지 못하고 시범 가동 중이다.

화석연료인 석탄을 비교적 가격이 싼 러시아에서 수입해 발전에 투입하는 것으로 중국-튀르키예-러시아의 경제협력 프로젝트의 의미가 있다. 하지만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FT)와 미국의 블룸버그 통신으로부터 탄소 감축에 역행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 발전소의 소유권은 중국 국유기업인 국가전력투자공사(SPIC)의 자회사인 상하이전기가 지분의 78%를, 중국항공공업집단공사(AVIC)가 3%를, 튀르키예의 두 투자자가 나란히 9.4%씩을 각각 소유한다. 자금은 중국의 국가개발은행(CDB)‧중국은행(BOC)‧중국공상은행(ICBC)에서 대출해 조달했다. 건설에 4000명이 투입되고, 완공 뒤에는 500명의 인력이 운영한다.

중국이 일대일로 구상의 일환으로 튀르키예에 야심차게 투자하고 건설한 이 화력발전소가 이번 지진으로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는지는 아직 보도되지 않고 있다. 워낙 피해 규모가 커서 실종자 수색‧구출과 피난민 구호에 집중하느라 초기에는 미처 산업 시설 피해까지는 신경을 쓰지 못한 때문으로 볼 수밖에 없다.

중국으로선 그동안 일대일로를 열성적으로 지지해온 튀르키예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번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으로 정치적 타격을 입은 것이 무엇보다 큰 타격일 수 있다. 사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2014년 11월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일대일로를 제창한 이래 줄곧 이를 지지하고 성원해왔다.

2019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사진 셔터스톡

2019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사진 셔터스톡

신화망에 따르면 에르도안은 2017년 5월 14~15일 중국 베이징에서 130개국 사절이 함께한 가운데 열렸던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에 직접 참석한 28명의 국가정상 중 한 명이었다. 에르도안은 당시 각국 정상과 대표단의 기념 촬영에서 시 주석의 바로 왼쪽에 섰으며, 시 주석의 오른쪽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자리했다.

2022년 9월 15~16일 코로나19 팬더믹 이후 처음으로 외국을 방문한 시 주석의 행선지는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의 고도 사마르칸트였는데, 이곳에서도 에르도안 대통령과 만났다고 중국망이 전했다. 에르도안은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 특별 초대손님으로 초대 받아 시 주석과 양자 회담까지 했다. 이 자리에서 에르도안은 SCO 가입을 요청했을 정도였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인 튀르키예가 중국‧러시아 중심의 SCO에 가입을 희망한 것 자체가 서방에 충격을 줄 수 있는 사건이다. 에르도안의 일대일로 구상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시 주석과의 관계 증진 및 중국과의 경제협력 추구 열정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정학적‧지경학적으로 중앙아시아와 유럽, 중동과 아프리카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교차로 국가’ 튀르키예는 교역로 이야기만 나오면 단골로 거론될 수밖에 없다. 일대일로 구상에서도 당연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중국 서북부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우루무치나 카슈가르(카스)에서 출발해 중앙아시아와 이란을 거쳐 튀르키예에 이르는 고속철도 구상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고속철도나 고속도로로 튀르키예의 최대도시이자 경제 중심지인 이스탄불까지 연결된 다음엔 그곳에서 다시 발칸 반도를 지나 서유럽으로 통하게 된다. 실제로 중국은 발칸반도 국가를 설득해 고속도로 등 인프라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튀르키예에선 우선 흑해에 접한 트라브존 항구를 통해 러시아와 조지아‧불가리아‧루마니아 등과, 동지중해의 항구인 메르신을 거쳐선 중동‧북아프리카(MENA)와 각각 해운으로 연결된다. 튀르크 서부 이스탄불과 이즈미르 등 항구는 지중해 항로를 통해 유럽으로 가는 관문이다. 부족한 컨테이너 터미널 확충 등 다양한 인프라 프로젝트에는 한국의 참여도 유망하다.

문제는 중요한 항구인 메르신이 이번 지진 피해지에서 멀지 않다는 사실이다. 피해는 크지 않지만 도시 전체가 상당히 흔들린 데다 최근 들어선 머물 곳이 없어진 피난민들이 몰리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도 메르신의 숙박시설을 피난민을 위해 개방하도록 권고했다. 인도적 재앙인 지진 수습과 복구를 위해 이와 무관한 인프라 건설은 상당 기간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러시아가 서방의 경제 제재를 받으면서 중국-시베리아-유럽 러시아-서유럽을 잇는 트랜스시베리아철도(TSR)의 이용이 감소하자 그 대안으로 거론되는 ‘중앙 회랑’ 구상에서도 튀르키예가 중심에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다. TSR을 이용하는 노선은 ‘북부 회랑(Northern Corridor)’ 또는 ‘유라시아 랜드 브리지’로 불린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를 합병하면서 서구의 경제제재를 받은 데 이어 지난해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더 강력한 제재를 추가로 받고 있다. 제재는 계속 추가되고 있다. 이에 따라 북부 회랑은 교역로로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를 대체할 대안이 필요하게 된 이유다.

트랜스시베리아철도(TSR). 사진 셔터스톡

트랜스시베리아철도(TSR). 사진 셔터스톡

베를린에 위치한 싱크탱크인 독일 국제안보문제연구소(SWP)에 따르면 중앙 회랑은 중국 서북부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이리 카자흐 자치주에 있는 호르가스(중국어로 훠얼궈쓰(霍爾果斯))에서 출발해 중앙아시아를 거쳐 튀르키예를 지나 유럽으로 향하는 교역로다. 중앙회랑은 ‘뉴유라시아 랜드 브리지’로도 불린다.

인구 8만 5000명의 호르가스는 서쪽으로 카자흐스탄과 연결된다. 역에는 중국에서 쓰는 1435㎜의 표준궤 차륜(열차 바퀴)을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을 포함한 옛 소련에서 사용하는 1520㎜의 광궤 차륜으로 바꿔 다는 궤간 변경 시설을 갖춰 철도 컨테이너를 환적할 수 있다.

이미 2009년 중국 신장위구르 북부 징허(精河)에서 출발해 이리 카자흐 자치주 이닝(寧遠)을 거쳐 호르가스에 이르는 길이 286㎞의 징허-이닝-호르가스 철도(精伊霍铁路)가 개통됐다. 2012년 12월에는 카자흐스탄 대도시 알마티 근처에서 국경까지 연결된 길이 293㎞의 철도와 서로 연결돼 운행에 들어갔다. 기차에 실려 중국 대륙을 관통한 컨테이너 화물이 중앙아시아로 연결되는 인프라가 구비된 셈이다.

SWP는 중앙 회랑이 크게 3가지 통로를 통해 중앙아시아를 횡단해 튀르키예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첫째는 호르가스에서 카자흐스탄을 관통하고 카스피해와 카프카스 산맥을 넘어 튀르키예로 이어지는 ‘트랜스 카스피해 국제교역로(TITR)’다. 카자흐스탄 서부의 아크타우나 쿠리크 항구에서 카스피해 를 건너 아제르바이잔의 바쿠로 이어진 뒤 카프카스 산맥을 넘어 조지아를 거쳐 튀르키예로 연결되는 통로다.

둘째는 카자흐스탄에서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이자 인구 200만 명의 대도시인 타슈켄트를 지나 투르크메니스탄을 관통해 카스피해와 카프카스 산맥을 넘는 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 통로(UTR)다. 셋째는 중국 서북부 파미르 고원의 카슈가르에서 국경을 넘어 키르기스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철도로 타슈켄트까지 간 뒤 UTR로 연결되는 중국-키르기스스탄-우즈베키스탄 통로(CKU)다.

이런 통로를 거쳐 중앙아시아를 통과한 뒤엔 튀르키예의 이스탄불‧메르신‧트라브존 항구나 조지아의 바투미 항구를 통해 해로로 유럽으로 연결되는 것이 중앙 회랑이다. 어느 경우나 튀르키예에겐 꽃놀이패다. 튀르키예의 지정학적인 힘이다. 지정학을 최대한 활용하는 일대일로의 특성이기도 하다.

미국 워싱턴DC에 본부를 둔 비영리‧초당파 싱크탱크인 중동연구소(MEI)는 “일대일로와 중앙회랑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협력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도 뭄바이에 있는 인도의 글로벌 전략 싱크탱크인 게이트웨이 하우스는 “일대일로가 튀르키예 경제에 이점이 많지만 자금 확보에서 도전을 겪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번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으로 일대일로든, 이 모든 프로젝트가 상당 기간 냉각될 수밖에 없다.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자연 재해 앞에선 잠시 숨을 돌릴 필요가 있다. 문제는 이번 지진을 계기로 에르도안의 국내외 리더십이 힘을 잃을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그래도 튀르키예의 지정학‧지경학적 가치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채인택 국제 저널리스트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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