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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하버드대생도 한국선 영어강사 금지?…스타트업은 웁니다

중앙일보

입력

지난 2019년 3월 22일 광주광역시 광천초등학교에서 영어수업이 이뤄지는 모습(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중앙포토]

지난 2019년 3월 22일 광주광역시 광천초등학교에서 영어수업이 이뤄지는 모습(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중앙포토]

지난해 1월 충북 충주의 초등학교 교사 A씨는 국내의 한 원어민 화상영어 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영어회화를 가르칠 원어민 교사를 구하기 어려워지자 미국 명문대 학생과 원격 수업을 연결해주는 업체를 찾은 것이다. 하지만 이 업체는 교사의 요청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외국인 대학생은 성인 대상으로 수업을 할 수 있지만, 학생에게 할 경우 학원법상 불법이기 때문이다.

외국인 강사 자격 제한 두고 부처 갈등 1년째

국내에서 원어민 화상영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 '링글'은 학생들에게도 수업이 가능하도록 원어민 강사의 학력규제를 완화해달라고 정부에 요청 중이다. 사진은 링글의 홈페이지 화면. 홈페이지 캡처

국내에서 원어민 화상영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 '링글'은 학생들에게도 수업이 가능하도록 원어민 강사의 학력규제를 완화해달라고 정부에 요청 중이다. 사진은 링글의 홈페이지 화면. 홈페이지 캡처

학원법 시행령 ‘별표’에 적힌 내용 하나를 두고 정부 부처 간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학생에게 외국어를 가르치는 원어민 강사의 자격 제한을 푸는 문제를 두고 수개월째 결론을 내리지 못해서다.

지난해 4월, 국내 한 스타트업 업체가 교육부에 학원법 시행령을 개정해 달라면서 갈등은 시작됐다. 시행령은 학원 강사의 자격 기준을 내국인과 외국인으로 구분했는데, 내국인의 경우 3학년 이상의 대학생도 강사를 할 수 있지만 외국인은 반드시 대학을 졸업해야 한다.

미국 명문대 재학생과의 화상 영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링글’은 외국인 강사의 학력 제한을 완화해달라 요구하고 있다. 이미 여러 외국 업체는 대학생 강사를 활용해 국내에서 학생을 상대로 원격 수업을 하고 있는데, 국내 업체만 학원법이 적용돼 불리하다는 것이다. 이승훈 링글 공동대표는 “한국 특유의 갈라파고스 규제로 신사업은 물론 기존 사업도 규제에 발목이 잡혀있다”며 “한국 스타트업의 정체성을 가지고 K-유니콘으로 도약하려는 꿈을 접고 미국으로 본사를 이전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업체는 학원 접근성이 떨어지거나 원어민 교사를 구하기 어려운 지방 학생에게도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코로나19 여파로 전국 초·중·고교의 원어민 영어 보조교사 수는 2019년에 1만169명에서 지난해 7150명으로 줄었다. 지역별로는 편차가 더 벌어져 같은 기간 서울에서 원어민 교사가 8%(1108명→1014명) 줄어들 때 울산은 91%(302명→26명), 전북은 53%(833명→391명), 충남은 42%(598명→348명) 감소하는 등 지방에 타격이 더 컸다.

규제심판 나선 정부, 교육부는 "반대"

정부는 관련 규제가 타당한지 따져보기 위해 지난해 8월 ‘외국인 학원 강사 학력제한 완화’를 국무조정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의 7개 심판대상 중 하나로 선정했다.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규제심판부를 통해 규제의 필요성과 타당성을 검증해 규제 폐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육부는 규제 완화에 반대하고 있다. 자격 미달 강사로 인한 부실 교육 폐단을 방지하고, 학습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규제라는 주장이다. 교육부 반대에 부딪혀 규제심판부는 반년이 넘도록 열리지 못하고 있다.

업체는 강사 자격을 세계 대학 순위권에 드는 명문대 재학생으로 제한하면 되고, 원격 수업은 모두 녹화와 녹음이 가능하기 때문에 부적절한 수업을 차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교육부는 규제 완화 조치가 자칫 사교육을 키워주는 모습으로 해석될까 우려하고 있다. 교육부의 한 관계자는 “정부 규제완화 기조가 강하지만, 공교육의 역할과 기능을 강화해야 할 교육부가 사교육의 사업 영역을 확대해주는 방향에 선뜻 손을 들어주기가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해 11월 9일 인천 선광 신컨테이너터미널에서 관계부처 장관과 경제단체장, 규제개혁위원회 위원, 민간 전문가 등이 참석해 열린 제2차 규제혁신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해 11월 9일 인천 선광 신컨테이너터미널에서 관계부처 장관과 경제단체장, 규제개혁위원회 위원, 민간 전문가 등이 참석해 열린 제2차 규제혁신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적격 강사 늘어날 것” vs “선택권 늘려야”

오프라인 중심의 학원 업계에서는 오히려 규제 완화를 반대하고 있다. 이상협 학원총연합회 외국어교육협의회장은 “강사의 소양과 자격 검증을 담보할 수 있는 검증 기준과 절차가 더 보완돼야 한다”며 “무분별하게 외국인 강사 학력 기준을 완화할 경우 부적격 교사가 교육 현장을 혼탁하게 만드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학부모 단체에서는 선택권 확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미숙 학교를사랑하는학부모모임 회장은 “이미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원격 수업에 대한 거부감은 많이 없어졌다”며 “강사의 자격만 제대로 검증된다면 우수한 원어민 강사로부터 영어회화를 배울 수 있는 선택권이 늘어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고 했다.

국무조정실과 교육부는 학원·교육·학부모 단체 관계자를 만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절충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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