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출사표
북한 도발 대응 등 한·미 간 현안이 산적한 가운데 박진 외교부 장관이 이달 초 미국을 방문했다. 그런데 박 장관이 먼저 달려간 곳은 수도인 워싱턴이 아니었다. 유엔 본부가 자리 잡은 뉴욕이었다. 요즘 외교부의 핵심 현안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을 위한 행보였다.
6월 비상임이사국 선거에 도전장 #한국, 단독후보지만 방심은 금물 #작년 인권이사국 선거에선 떨어져 #안보리서 다양한 의제 다룰 방침
박 장관은 이곳에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을 면담하고 각국 유엔 주재 대사들을 상대로 한국의 안보리 진출 필요성을 설명하며 열띤 선거 운동을 벌였다. 임기 2년의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다섯 나라를 새로 선출하는 올 6월 선거까지는 앞으로 3개월 남짓. 본격적인 선거전을 앞두고 안보리 진출이 우리에게 왜 중요한지, 그리고 현 상황은 어떤지 등을 짚어본다.
안보리 진출하면 영향력 커져
안보리는 국제사회의 안보와 평화를 관장하는 유엔 기구로 회원국들은 여기에서 결정된 사안을 따라야 하는 의무가 있다. 사실상 유엔의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셈이다. 안보리는 거부권을 쥔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 등 5개 상임이사국과 그렇지 않은 비상임이사국 10개국, 총 15개국으로 구성된다.
비상임이사국의 임기는 2년으로 매년 전체 인원의 절반인 다섯 나라가 새로 선출된다. 올해 임기가 끝나는 국가는 알바니아·브라질·가봉·가나·UAE이고 일본·몰타·모잠비크·스위스·에콰도르는 내년까지다.
한국은 이미 1996~97년, 2013~14년 두 차례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을 지낸 바 있지만 2024~25년 임기를 위해 세 번째 도전에 나섰다. 도대체 왜 또 하려는 것일까. 시급성만 따져보면 더 급한 외교 현안은 적지 않다. 북한 비핵화를 비롯한 한·일관계 개선, 공급망 구축 등 안보와 경제적 번영에 직결된 문제가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현 외교 라인은 유엔 안보리 진출을 핵심 과제 중 하나로 삼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지향하는 '글로벌 중추국가'(Global Pivot State)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이 긴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안보리는 강제력이 있는 15개 이사국의 결의를 통해 국제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실상 유엔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다. 이런 기구의 멤버가 된다는 것 자체가 명예로운 일인 데다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게 되면 한국의 실질적 영향력도 커질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은 경제 규모로는 세계 10위권의 선진국이다. 군사력과 문화 수준 등을 고려한 종합적인 국력으로 따지면 세계 6위라는 US뉴스앤월드리포트의 최근 보도도 있었다. 유엔 기여금 규모에서도 세계 9위여서 보다 적극적으로 국제적 문제에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고도 필요하다.
게다가 국제사회의 모든 현안은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어 우리에게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에너지 및 식료품 가격 상승 등을 통해 우리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요즘 현실이 단적인 예다. 특히 안보리는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대북 제재 결의 채택은 물론 이행 조사까지 담당해 우리로서는 무척이나 중요하다.
"한국만 다 하냐"는 시각도
한국은 현재 유엔의 5개 분류 지역 중 하나인 아시아·태평양 그룹의 단독 후보인지라 당선에 큰 무리가 없을 거라는 관측이 많다. 그럼에도 외교부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지난해 말 예상을 깨고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선거에서 떨어졌던 뼈아픈 경험 탓이다. 지금까지 한국은 안보리, 경제사회이사회, 그리고 인권이사회 등 유엔 3대 기구 선거에서 진 적이 없었다.
인권이사국 선거 패배는 외교부는 물론 정치권에도 큰 충격으로 작용했다. 당시 여당은 북한인권결의안 참여 거부와 같은 문재인 전 정권의 잘못된 정책으로 떨어졌다고 비난한 반면 야권은 현 정부의 외교 실패라고 공격해 책임 공방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외교부 측은 국제기구 투표에서도 적용되는 냉혹한 '주고받기' 논리가 한국에 불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은 무려 14개의 국제기구 선거에 후보를 냈다. 자연히 "이번에 우리를 밀어주면 다음번엔 그쪽 후보에게 표를 주겠다"는 식의 작전에 쓸 실탄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국제기구의 이사국과 주요 직책을 한국 출신이 맡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다른 나라에도 기회를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커졌다고 한다. 한국의 위상이 높아져 국제사회의 각종 선거에 출마, 당선되는 경우도 많아졌다.
난민·여성·아동 보호에 주력
외교부는 이런 약점을 극복하고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에 성공하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오는 6월에 치러질 선거는 5개 지역별로 유효 투표의 3분의 2 이상을 얻은 국가 중 득표순으로 당선된다.
외교부는 당선을 위해 한국이 아·태 지역의 유일한 후보임을 강조하면서 회원국들의 확실한 지지를 확보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박용민 다자외교조정관은 "국제적 위상에 맞게 최대한 많은 표를 얻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박 장관 자신도 각국 지인들에게 직접 연락을 하거나 편지를 써 큰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게 외교부 측 설명이다.
한편 한국은 과거 두 번의 비상임이사국 임기 동안 무력분쟁에 고통받는 난민 및 민간인 보호 문제에 앞장선 경험이 있다. 이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공개 토론을 주관해 이에 대한 안보리 의장 성명까지 끌어냈다. 이번에 당선되면 지속가능한 평화 달성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보호 대상을 난민에서 여성과 아동으로까지 넓히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아울러 기후변화와 사이버 범죄 등이 새로운 안보 이슈로 떠오른 만큼 이 문제도 안보리에서 다뤄질 수 있도록 앞장설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