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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경록의 은퇴와 투자

노후 준비? 노동 ‘2부 리그’ 키우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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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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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안타이오스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아들이다. 힘이 땅에서 나오기에 넘어지면 더 세진다. 어느 날 헤라클레스와 맞붙게 되었다. 땅에 내동댕이칠수록 안타이오스의 힘이 강해지자 헤라클레스는 그를 공중에 번쩍 들어서 목 졸라 죽여버린다. 안타이오스의 죽음은 자신의 기반을 놓쳤기 때문이다. 노후 준비의 기반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연금이라고 하겠지만 연금이 발을 딛고 있는 곳이 노동시장이다.

국민연금은 소득대체율 40%를 목표로 하고 있다. 가입자 생애평균소득의 40%를 지급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전제는 40년 동안 국민연금에 가입할 경우다. 일을 40년은 한다는 뜻이니 현실과 격차가 큰 가정이다.

2020년에 국민연금을 처음 수령한 사람들을 보면 평균가입기간이 18.6년이었고 실질적인 소득대체율은 24%에 불과했다. 받는 금액도 52만원이다. 가입기간이 짧으니 연금수령액도 적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가입기간 10년을 못 채워 연금도 받지 못하고 일시금으로 수령한 사람이 18만 명이었다.

퇴직 후 삶도 노동시장에서 결정
취업 늦고 은퇴 빠른 한국 상황
연금 소득대체율이 낮을 수밖에
재취업 교육·기회 늘려나가야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목표로 하는 소득대체율이 실질 소득대체율과 차이가 나고 연금수령액이 적은 이유는 노동시장에 있다. 우리나라는 노동시장에 늦게 들어가고 일찍 나온다. 대학 진학률이 높고, 대학 진학에서 취업까지 기간에도 재수·휴학·군 복무·취업 준비 등이 있다. 늦게 취업하는 반면 주된 직장에서 퇴직하는 연령은 빨라 50대 중반을 넘어서지 못한다. 여성의 경우 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되거나 육아 후 재취업을 하더라도 근무 조건이 떨어진다. 근로기간이 짧으면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퇴직연금에도 동일한 영향을 준다.

한편, 가구의 연금소득을 높이는 데는 맞벌이가 중요하다. 부부가 각각 국민연금 100만원 수령하면 가구의 국민연금 소득은 200만원이 된다. 퇴직연금까지 더해지면 큰 폭으로 올라간다. 개인의 연금소득에 2를 곱하는 효과는 크다. 연금자산 10억원을 만들 수 있는지를 운용수익률, 근로기간, 맞벌이 등을 가정하여 계산해보면, 부부가 연금 맞벌이를 하는 경우 목표 달성이 가장 쉬웠다.

은퇴자산관리를 연구하다 보면 가장 부러운 사람들이 연금 맞벌이 부부다. 만일 여성이 출산 후에도 직장을 계속 다닐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지면 연금 맞벌이 부부가 많이 생겨날 것이다. 노후도 자연스레 준비된다. 이는 국가적으로 저출산으로 줄어드는 노동력에 대한 대응도 되는 일석이조 효과를 가져온다.

노후 준비의 2부 리그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주된 직장에서 퇴직은 빠르지만 최종 은퇴는 70대 초반으로 어느 나라보다도 늦다. 은퇴하되 완전히 은퇴하지 못하고 10~15년을 더 일하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전체 취업자 5명 중 1명이 60세 이상이다.

필자는 이를 ‘은퇴연옥’이라 부른다. 연옥은 천국에 가기에 미흡한 사람들이 영혼을 정화하는 시간을 갖는 곳이다. 은퇴연옥은 노후 준비를 위한 연장전으로 일종의 2부 리그 노동시장이다. 늦게 직장에 진입하고, 일찍 퇴직하고, 자녀 관련 지출이 많은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현상이다.

2부 리그라고 내버려둘 게 아니라 체계화하는 게 필요하다. 여기에서 임금은 어떻게 결정되는지, 어떤 일자리가 적합한지, 어떤 재교육을 받는 게 좋은지 등의 정보가 있어야 한다. 이 시장이 활성화되면 실질적인 노인부양비율(비생산노인인구/생산인구)을 낮춰 고령화의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노후 준비는 근로 기간을 늘려 실질 소득대체율과 연금수령액을 높여야 하며, 맞벌이가 용이한 노동시장을 만들어 ‘가구’의 연금소득을 높여야 한다. 그리고, 2부 리그에 해당하는 퇴직 후의 노동시장을 체계화하여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년의 단계적 연장, 임금체계의 유연화,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 해소, 육아와 일을 병존할 수 있는 근로 여건 조성, 재취업 교육, 재취업 시장 체계화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노후 준비가 발을 딛고 있는 대지(大地)는 노동시장이다. 노후 준비의 해법도 여기에 있다. 연금제도를 갖춰 놓더라도 노동시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노후 준비는 공중에 붕 떤 안타이오스가 된다. 노동시장 개혁으로 세대 간 상생과 함께 노후 준비를 잘할 수 있는 기반이 갖추어지기를 바란다.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