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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응교의 가장자리

시인 윤동주와 착한 연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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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응교 시인·숙명여대 교수

김응교 시인·숙명여대 교수

2월 16일은 윤동주 시인의 기일이다. 매년 이날 연탄 200장을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에 사는 독거노인 댁 열 집에 놓아드린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라는 이름으로 60여 명이 함께 연탄을 나른다. 대개 연탄 나누기 봉사는 12월 성탄절 무렵에 몰려서, 꽃샘추위가 매서운 2월엔 봉사할 사람이 적어 독거노인의 방에는 얼음이 언다.

연탄 한 개를 품에 안고 나르는 꼬마, 지게에 서너 개 지고 나르는 청소년, 여덟 개 이상 나르는 장정들이 골목을 오간다. 멀리 춘천, 창녕, 제주도, 도쿄에서 오셔서 연탄을 함께 배달했다.

거미줄 닮은 골목길에 이르는 가파른 언덕을 지게에 연탄을 지고 오르려면 적어도 한 달 전부터 운동하며 준비해야 한다. 근육 운동도 하니 몸에도 좋다. 나만의 성취를 위해 피로하면 스스로 착취하고 소진하지만. 더불어 살려는 ‘우리-피로’는 활력을 주고 회춘시킨다. 지게를 지고 언덕길 골목을 오가며 서로 인사 나누니, 좋은 벗과 사귈 수도 있다. 7년째 계속 참여하는 분들은 이젠 친지마냥 정답다.

다만 연탄을 돌리면 늘 행복할까. 연탄을 돌리고 오면 조용히 둘러보곤 한다. 이 일이 세상을 얼마나 밝게 할까. 그저 자기만족이 아닐까, 말가웃 정도 시혜의식이 아닐까.

2월 16일은 윤동주 기일
연탄 나르기 행렬 7년째
모든 것을 사랑했던 시인
불평등 사회서 평등 찾기

윤동주 시인의 기일인 지난 16일 서울 백사마을에서 연탄 나르기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 ‘별을 노래하는 마음’ 시구가 보인다. [사진 김민수 목사]

윤동주 시인의 기일인 지난 16일 서울 백사마을에서 연탄 나르기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 ‘별을 노래하는 마음’ 시구가 보인다. [사진 김민수 목사]

연탄 200장을 10가구에 60여 명이 나른다. 가진 자의 눈으로 보면 ‘800원×2000장=160만원’이면 껌값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기이한 풍경을 이집트 파라오 같은 자리에서 내려보면 스핑크스 아래 서로 아등바등하는 노예들 같지 않을까.

박권일은 여러 사례를 들며 『한국의 능력주의』에서 “한국인은 불평등을 선호한다”는 판정을 내린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의 세계가치관 조사에 따르면, “자녀에게 나보다 못한 사람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관용성을 가르치겠는가”라는 물음에, 가르치겠다는 한국인 부모는 45.3%다. 조사 대상 52개국 중에 52등으로 꼴찌다. 못사는 사람들과 살겠다는 관용성은 르완다(56.4%)보다 낮다.

7차 세계 가치관 조사(2020)에 따르면, 한국인은 평등을 12.4%만 선호하고, 불평등은 64.8%가 선호한다. 한국인의 60~70%는 입으로는 평등을 말하면서 실은 평등에 반대한다는 괴이쩍은 결과다. 도대체 희망의 기척은 어디에 있는가.

이 결과는 정부가 여성·화물노동자·장애인 문제를 엄하게 다룰 때 오히려 지지율이 오르는 배경일 것이다. 이제는 인권이나 평등을 말하지 않고, 차별과 불평등을 말해야 선거에서 표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일까. 불평등을 선호하는 이들이 보면, 독거노인들에게 연탄을 놓아주는 일은 밉상들끼리 벌이는 친목회 정도로 보일 수도 있겠다.

통계수치 그대로 나타나는 것은 투표다. 반면 통계수치와 달리 한 명이 그 이상의 몫을 할 때도 있다. 한 명의 운동성이 한 명 이상일 수가 있다. 수치로 말하면 분명 평등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적은 이 사회는 분명 불평등을 선호하지만, 평등을 지지하는 이들의 폭발적 운동력은 불평등을 넘어선다.

시인 윤동주

시인 윤동주

7년 전 매달 한 번씩 1년 동안 공릉청소년화랑도서관에서 윤동주의 시를 강연했다. 마지막 시간에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서시’)라는 귀띔을 흉내라도 내자며, 그때부터 연탄 나르기를 시작했다. 처음엔 사람 모으고 연탄 살 돈을 마련하는 것도 많이 신경 써야 했다. 7년이 지난 이제는 사람도 기금도 넘친다. 3·1운동 때처럼 종교의 벽을 넘어, 불교·천주교·개신교 신자들이 경계 없이 생기롭다.

물론 연탄 몇장 나른다고 이 사회는 변하지 않지만, 변화의 출발은 될 수 있다. 평등을 지지하는 이들의 운동력은 불평등을 넘어선다는 사실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회구조에 관심 없이 연탄만 나르면 그  선행은 자기만족으로 끝날 수 있다. 연탄 나르는 마음의 채비 그 이상으로 이 사회의 구조변화를 위해 다짐하고 실천해야 한다. 학벌과 재산과 상관없이, 개인의 변화와 사회구조의 변화에 동시에 참여해야 다시 개벽에 다가갈 수 있겠다.

극단적인 능력이기주의 사회에서 이웃과 더불어 살겠다는 이들은 평등을 찬성하는 12.4%에 든 ‘남은 자(Remnant)’이다. 대부분 연탄을 놓아드리는 동시에 사회구조 변화를 위해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코와 볼에 까만 탄가루가 묻은 볼품없는 연탄 일꾼들, 그 사랑의 총량이 사회구조를 변화시키는 보이지 않는 실천에 이어지리라 신뢰하며, 연탄 지게를 진 연약한 행렬을 응시한다.

김응교 시인·숙명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