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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남부 가뭄과 단수 공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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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최경호 기자 중앙일보 광주총국장
최경호 광주총국장

최경호 광주총국장

지난해 11월 28일 광주광역시 북구의 한 행정복지센터. 트럭에 실려 온 벽돌 1만장이 주차장에 벽처럼 쌓였다. 남부지역의 가뭄이 심해지자 양변기 수조에 넣을 벽돌을 주민자치회가 마련한 것이었다. 벽돌은 곧장 아파트 11곳, 주민 4882세대에 전달됐다.

소식을 접한 주민들은 벽돌을 가져가 각 가정의 양변기에 넣었다. 이웃에는 “벽돌을 변기에 넣으면 20~30% 절수 효과가 있다”며 독려하기도 했다. 며칠 후 강기정 광주시장은 “내년 3월 1일부터 격일제 단수가 시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물 절약을 호소했다. 시민들이 역대급 가뭄의 심각성을 체감한 순간이었다.

광주시민이 단수에 대한 시름이 큰 것은 30여 년 전 기억 때문이다. 광주에서는 1992년 12월부터 1993년 6월까지 156일간 격일제 제한급수가 실시됐다. 당시 시민들은 5개월 이상 욕조나 통에 물을 받아 쓰며 불편을 겪어야 했다. “수돗물 단수가 우려된다”는 말에 자발적으로 벽돌을 집으로 가져간 이유다. 이후로도 시민들은 겨우내 샤워나 설거지 횟수까지 줄여가며 물을 아껴왔다.

오랜 가뭄으로 인해 바닥을 드러내는 동복호. [뉴스1]

오랜 가뭄으로 인해 바닥을 드러내는 동복호. [뉴스1]

시민들이 절수에 나선 사이 단수에 대한 공포를 키우는 사고가 발생했다. 광주 덕남정수장에서 지난 12일 낡은 유출 밸브가 고장 나 수돗물 5만7000톤이 하수구로 버려졌다. 이 과정에서 광주지역 2만8576가구가 단수 피해를 봤다. “3월부터 단수를 한다더니 결국 수돗물이 끊겼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광주시는 즉각 대응에 나섰지만 우려를 씻어내기는 역부족이었다. 광주에 깔린 수도관 4046㎞ 중 절반인 2013㎞가 20년 이상된 노후관이어서다. 오래된 수도관 탓에 누수율 또한 5.2%로 광역시 평균(4.8%)을 웃돈다. 대전시의 누수율(1.7%)보다 세 배가량 높다.

수돗물 누수율이 높은 것은 그만큼 버려지는 물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광주에서는 노후된 상수도관 탓에 2021년에만 수돗물 934만톤이 새나갔다. 광주 하루 수돗물 사용량 50만톤을 감안하면 한 해 평균 18일치 이상의 물이 새고 있는 셈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상수도관 파손이 잇따른 것도 광주시로선 악재다. 정수장 밸브 고장에 따른 단수 사태 이틀 만에 지하철 공사 현장에서 상수도관이 파열된 것을 비롯해 열흘 새 세 건의 파손 사고가 발생했다. “광주시가 도심 겉모습을 가꾸는 데 치중하는 동안 지하 상수관 정비는 소홀히 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최근 광주의 단수 사태를 대대적인 상수도 정비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단순히 낡은 상수도관 교체를 넘어 장기적인 가뭄 대책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어서다. 22일 현재 광주의 주요 식수원인 동복댐 저수율은 22.1%까지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