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 초등학교가 문을 닫고, 대학생과 군인이 줄고, 퇴직자의 연금을 대느라 정년 연장을 추진하고 있다. 이게 다 저출산 때문이다. 출산율 ‘세계 꼴찌’ 한국의 저출산 시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22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출생·사망 통계(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8명을 기록하며 0.8명대가 무너졌다. 1년 전보다 0.03명 줄었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평균 출생아 수다. 인구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합계출산율은 2.1명이다. 2020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합계출산율(1.59명)의 절반 이하로 처음 떨어졌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출산율이 1명대 아래다. 2007년, 2012년 꼴찌에서 두 번째를 차지한 것을 빼고는 2004년부터 16년째 출산율 꼴찌다. 임영일 통계청 인구동향과장은 “2015년까지 출산율이 등락을 거듭하다 2016년부터 7년째 하락세”라며 “2018년(0.98명) 처음 1명대가 무너진 뒤 저출산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어려운 환경, 높은 집값과 사교육비 부담 등이 아이 낳기를 꺼리게 하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혼인 자체가 줄고, 혼인을 늦게 하는 추세도 저출산을 심화하고 있다. 특히 서울은 0.59명을 기록해 전국에서 가장 아이를 적게 낳는 도시가 됐다. 이어 부산(0.72명)과 인천(0.75명)도 전국 평균보다 많이 낮았다. 합계출산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세종(1.12명)이었다. 세종은 그나마 직업이 안정적인 공무원이 많은 데다 보육 환경도 좋은 것으로 평가되는 곳이다.
통계에선 브레이크 없는 ‘저출산·고령화’ 추세가 그대로 드러났다. 지난해 출생아 수는 24만9000명을 기록했다. 1970년 관련 통계 작성을 시작한 이래 역대 최저다. 출생아 수는 1970년 100만 명에서 절반 수준인 49만 명(2002년)으로 떨어지기까지 30여 년 걸렸다. 이후 10년간 정체하다 2012년(48만4550명)부터 다시 10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50여 년 만에 출생아 수가 4분의 1로 줄어든 셈이다.
특히 출산율은 2016년 1.17명에서 지난해 0.78명으로 6년 새 0.39명이 급감했다.
바닥 모를 저출산…작년 24만9000명 출생, 10년새 반토막

학생 수 감소로 문을 닫는 서울 광진구 화양초등학교에 폐교 알림 현수막이 걸려 있다. 장윤서 기자
일각에선 경제가 팍팍해진 게 최근 출산율의 수직 낙하를 불렀다는 분석이 나온다. 2015~2016년을 기점으로 경제성장률이 3%대에서 2%대로 내려갔고, 취업자 수 증가 폭도 매년 30만~40만 명 수준에서 20만~30만 명 수준으로 줄었다. 젊은이들이 취업이 힘들고, 돈벌이도 쉽지 않다 보니 결혼을 늦추고 출산을 미뤘다는 것이다.
결혼 자체가 줄고, 결혼을 하더라도 늦게 하는 추세가 저출산을 심화하고 있다. 지난해 혼인 건수는 19만2000건으로 1년 전보다 1000건 줄었다. 1970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가장 적었다. 혼인 건수는 2021년(19만3000건) 처음으로 20만 건 아래로 떨어졌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런 저출산 기조에 코로나19가 기름을 부었다. 앞서 한국은행은 ‘코로나 시대 이후의 인구구조 변화 여건 점검’ 보고서에서 “코로나19에 따른 혼인 감소, 임신 유예를 고려했을 때 2022년까지 적어도 2년은 저출산 심화가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사망자 수(37만2800명)가 출생아 수보다 12만3800명 많아 ‘인구 자연 감소’ 추세가 2020년부터 3년째 이어진 것도 충격적이다. 사망자는 사실상 1970년 이후 최대 규모다. 첫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되는 나이는 33.0세로 전년보다 0.3세 높아졌다. 이는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고, OECD 평균(29.3세)보다 3.7세 높은 수준이다.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 이상을 아우르는 전체 평균 출산연령은 33.5세로 전년 대비 0.2세 올랐다. 35세 이상 고령 산모 비중(35.7%)은 전년보다 0.7%포인트 늘었다. 아이를 갖더라도 한 명에 그치는 추세도 두드러졌다. 첫째 출생만 1년 전보다 5.5% 늘었다. 둘째와 셋째는 각각 16.8%, 20.7% 감소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저출산 기조는 전반적인 경제 활력을 떨어뜨린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생산·소비의 주체인 생산가능인구가 ▶2030년 3381만 명 ▶2040년 2852만 명 ▶2050년 2419만 명으로 쪼그라들 것으로 예상했다. ‘출산율 저하 → 인구 감소 → 내수 위축 → 경기 침체 → 출산율 저하’라는 악순환이 예고돼 있다.
특히 당면한 노동·연금·교육 개혁 해결도 어려워졌다. 정부가 추진하는 연금 개혁의 경우 2025년부터 출산율이 반등해 2031년 1명대로 회복하고, 2046~2070년 1.21명대 출산율을 유지하는 ‘낙관론’을 전제로 한다. 저출산이 가속할 경우 부담이 더 늘어난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년 연장과 맞물린 노동 개혁, 대학 입시와 맞물린 교육 개혁도 저출산 문제 해결이 성공의 전제”라고 말했다.
저출산 대책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05년 저출산·고령화위원회가 출범한 뒤 2021년까지 16년 동안 저출산 극복에 280조원을 쏟아부은 결과가 ‘서울 합계 출산율 0.59명’이라서다.
정부는 “장래 인구 추계에서 올해 출산율은 0.73명으로 잡았다”며 “0.78보다 더 줄어들 여지가 있다”고 예상했다. 정부는 코로나19에 따른 혼인 감소 등의 영향으로 합계출산율이 2024년 0.70명까지 하락한 뒤 반등할 것으로 보고 있다. 부정적인 시나리오에서는 합계출산율이 2025년 0.61명까지 떨어진다.
이성용 한국인구학회장은 “글로벌 사례를 봤을 때 재정을 살포하면 단기 효과라도 있는데 한국에선 그마저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말했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주거·육아·교육·일자리·지방균형발전에 걸친 전방위 대책을 마련해 출산에 대한 젊은 세대의 미래 불안감을 줄여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