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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제어' 세계 톱 연구자…산불 고통 호주가 SOS 친 한국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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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0.1%를 만나다] 안춘기 교수

안춘기 교수는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한 우물만 파야 한다”고 강조한다. 젊은 나이에 그를 ‘0.1%의 연구자’로 만든 비결이다. 김현동 기자

안춘기 교수는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한 우물만 파야 한다”고 강조한다. 젊은 나이에 그를 ‘0.1%의 연구자’로 만든 비결이다. 김현동 기자

지난 설 연휴 안춘기(46)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호주로 향했다. 2019년 9월 발생한 호주 산불은 5개월간 계속됐고, 남한 면적보다 넓은 삼림이 소실됐다.

안 교수는 “호주에서 산불은 가장 큰 문제다. 그 넓은 땅을 사람이 감시할 수 없기 때문에 드론의 역할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호주 연구진이 젊은 한국인 과학자에게 손을 내민 이유는 그가 지능제어 분야의 세계 톱 연구자이기 때문이다. 안 교수는 글로벌 학술기관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매년 선정하는 논문 인용이 많은 HCR(Highly Cited Researchers)에 2019년부터 4년 연속 선정됐다.

지능제어가 뭔가.
“이 방에서 문을 열고 나가라고 한다면 인간은 처음 와 본 방이어도 쉽게 나갈 수 있죠. 하지만 기계는 갓난아이 같아서 문이 뭔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여는지 몰라요. 이런 상황에서 기존 지식을 갖고 추측하고 예측하면서 방법을 찾아내는 게 지능제어입니다.”
호주 산불 드론에는 어떻게 적용되나.
“넓은 범위를 커버하려면 드론이 편대비행을 해야 해요. 산불을 먼저 발견하고, 다른 드론에 정보를 공유하고 대응 방안을 찾게 하는 거죠. 이건 북한 무인기 침범에 대비하는 기술이기도 해요. ‘안티 드론’이 편대비행을 하면서 적의 드론을 발견하면 격추하거나 교란하는 기술도 연구 중입니다.”

안 교수는 예를 들어 설명하는 중에도 계속 “아직은 기초적 수준”이라고 말했다. 인간처럼 판단하고 행동하는 AI는 “지금으로선 공상과학”이라며 “먼 미래라면 모르지만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알파고’가 인간을 이겼지 않나.
“AI가 대화 수준을 높인다거나 바둑을 두는 수준은 가능해요. 모두 ‘제한된 룰’의 프로그램이거든요. 알파고는 사실 계산기입니다. 컴퓨터 계산기가 몇십만 자리 곱셈을 순식간에 하는 건 놀랍지 않죠? 인간의 지능은 그 정도 수준이 아닙니다. AI는 아직도 기초 단계에 있어요.”
각국의 경쟁도 치열한데.
“AI·로봇을 어떻게 제어하느냐가 핫 이슈죠. 중국은 이 분야에 천문학적인 지원을 하고 있고, 한 우물만 10년 넘게 판 연구인력 숫자도 우리와 게임이 되지 않아요.”
우리나라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학생들이 로봇이나 드론을 보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찾아오지만 사실 이 분야는 수학이거든요. 수학이 어려워 기피하는 경향도 있어요.”
이 분야를 선택한 이유는.
“제어공학이란 수업이 공대 ‘마의 3대 과목’으로 꼽히거든요. 수학을 많이 써서 싫어하는데 저는 대학 3학년 때 이 과목에 매료됐어요.”
연구자가 된 계기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일본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가 쓴 『학문의 즐거움』이란 책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어요. 연구하는 것, 논문을 쓰는 것에 대해 막연한 동경이 생겼죠.”

히로나카 교수는 1970년 수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받은 세계적인 학자다. 안 교수는 e메일 주소까지 hironaka로 쓸 정도다.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방법은.
“자기 고유의 방법이 오래 축적돼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근데 똑똑한 사람은 많아도 하나를 오래 한 사람은 많지 않아요. 트렌드에서 멀어지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자기만의 뿌리를 찾아야죠.”

그는 지능제어 분야의 최고 학술지인 IEEE TNNLS의 수석 편집장도 맡고 있는데, 각국에서 공동 연구 요청이 쇄도한다고 한다. 그는 “너무 많아서 80% 이상은 거절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학생들이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
“점수 잘 받으려고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죠. 남들이 따르는 유행이 자기 적성이라고 착각하지 않도록 자신에게 질문해 봤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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