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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단지 아파트 월세 매물 84%, 전세보다 비싸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경기도 광명시 아파트에 전세로 사는 이모씨는 최근 이사하기 위해 서울 양천구 목동의 전세나 월세집을 알아보다가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이씨는 “대출이자나 전·월세 전환율(보증금을 월세로 전환할 때 적용하는 비율) 등을 고려해 계산할 때 월세가 전세보다 비싼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실제 22일 중앙일보가 네이버 부동산에 등록된 서울 주요 아파트단지의 전·월세 물건을 전수조사(7303건)한 결과, 이들 단지의 월세 물건 중 83.7%(6113건)가 전세 시세보다 비쌌다. 전·월세 전환율은 평균 5.3%로 나타났다. 전·월세 물건이 각각 10건 이상 등록된 서울의 1000가구 이상 대단지 아파트 257곳을 조사한 결과다.

전세와 월세의 가격은 전세대출 이자와 월세의 차이를 통해 비교할 수 있다. 전세 시세는 매물 호가의 중간값으로 정하고, 전세자금 대출 금리는 한도가 5억원(SGI서울보증)인 상품의 최저금리(연 4.38%·신한은행 기준)로 잡았다. 마포구 아현동 마포더클래시 단지의 보증금 3억5000만원에 월세 190만원짜리 매물(전용 84㎡)을 계약할 경우 전세 이자보다 매월 약 37만원가량을 더 내야 한다. 해당 면적 전세 매물 141건의 중간값은 7억7000만원으로 전세와 월세 보증금의 차액인 4억2000만원을 연 4.38% 이율로 빌릴 경우 월 이자는 약 153만원이기 때문이다.

전세가율이 낮은 재건축 단지의 상황도 비슷하다. 양천구 목동의 신시가지5단지 전용 115㎡의 경우 8억원에 170만원짜리 월세 물건이 있는데, 중간값(11억원) 전세 매물의 이자비용은 약 110만원으로 월세보다 60만원가량 낮다. 최고금리(5.08%·신한은행 상품 기준)로 가정해도 월세가 전세보다 비싼 사례는 조사 대상의 60.6%(4430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이렇게 월세가 ‘비싸진’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대출금리가 크게 치솟고, 고금리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면서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은행 대출이자보다 월세를 내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경우가 늘었다. 갭투자(전세 낀 상태로 주택 매입)를 원천 차단하겠다며 문재인 정부에서 1주택자에 대한 전세자금 대출을 막은 것(2020년 6·17대책)도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시가 9억원을 초과하는 주택을 갖고 있거나 부부합산 소득이 1억원 이상인 1주택자는 지금도 전세자금을 대출받을 수 없다. 김모(49)씨는 “부부합산 소득이 1억원이 넘는다는 이유로 대출이 딱 막혔다”며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더 비싼 월세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대출 규제를 대거 풀겠다는 정부는 3월 2일부터 시가 9억원 초과 1주택자 및 부부합산 소득 1억원 이상 1주택자에 대한 전세대출보증을 허용키로 했다. 하지만 6·17대책 때 축소한 1주택자의 보증한도(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 보증을 받을 경우 4억원에서 2억원으로)에 대해서는 아직 개선책이 없다. 두성규 목민경제정책연구소 대표는 “거주 이전의 자유를 막는 전세자금 대출 규제는 반드시 규제 이전 상태로 복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세사기 등으로 전세에 대한 위험이 커진 것도 전셋값 약세를 예상하는 이유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전세 리스크가 클수록 금리가 전·월세 전환율보다 아주 낮아야 전세로의 수요 이동이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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