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열풍이다. 누적 관객 수가 334만명을 돌파했다. 만화 단행본도 100만부 이상 팔렸다. ‘슬친자(슬램덩크에 미친 사람)’란 말까지 나왔는데, 프로농구 서울 SK의 가드 김선형(35)도 그중 한 명이다.
김선형은 최근 경기 중 나오는 자신의 테마곡을 슬램덩크 OST(오리지널사운드트랙으로 바꿨다. ‘Dai Zero Kan’ 반주에 맞춰 ‘선! 플래시 선! 김선형’이란 가사를 넣었다. 지난 21일 경기도 용인의 서울 SK 훈련장에서 만난 김선형은 슬램덩크 캐릭터인 서태웅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왔다. 김선형은 “어린이 팬이 선물해줬다. 슬램덩크 팝업 스토어에선 한정판 굿즈를 사기 위해 수 백명이 오픈런까지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이 티셔츠를 입고 출퇴근했다”며 웃었다.
5주 전에 아내와 함께 슬램덩크 영화를 관람했다는 김선형은 “농구를 시작하던 중1 때 책방에서 만화를 대여해서 봤다. 내용과 결과를 아는 데도 영화를 보면서 가슴이 웅장해졌다. 원작과 달리 송태섭 시점에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를 전개한 게 인상적”이라고 했다. 가장 사랑하는 최애 캐릭터에 대해 그는 “학창 시절엔 서태웅을 닮고 싶어 더블 클러치를 따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농구로 진짜 완벽한 선수는 산왕공고 정우성”이라고 말했다. 팀 동료 최준용 얘기를 꺼내자 “강백호처럼 괴짜인데 집념이 강백호 정도인지는 모르겠다”고 농담했다.
김선형은 또 “강백호가 산왕공고전에서 허리 부상을 입었는데도 ‘영강님에게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나는 지금입니다’라며 코트에 나서는 장면이 소름 돋았다”며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았다. 이어 “만약 나라면? 전국 대회 초반 경기긴 했지만, 나 같아도 투혼을 발휘할 것 같다. 최강팀을 상대로 끝까지 해보고 싶고, 스포츠는 현실을 뛰어 넘는 뭔 가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슬램덩크에 3040세대를 넘어 MZ세대까지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김선형은 “추억의 만화를 영화로 풀어 ‘복고 바람’이 분 것 같다. 캐릭터 하나하나가 살아있고, 꺾이지 않는 마음도 담겨 있다”고 말했다. 영화 속에서 안한수 북산 감독은 “포기하는 그 순간이 바로 시합 종료예요”라고 말한다.
중1 때 만화 슬램덩크를 보며 농구선수 꿈을 키운 김선형은 올해 35세인데도 꺾이지 않는다. 지난달 KT전에서 원핸드 덩크슛을 터트렸고, 가스공사전에서는 3차 연장까지 홀로 47점을 몰아치며 승리를 이끌었다.
올 시즌 어시스트 6.4개로 전체 1위다. 평균득점은 15.5점으로 국내 선수 중 5위다. 프로 12시즌 중 ‘커리어 하이’다. 김선형이 최근 만난 중앙대 동기인 오세근(36·안양 KGC)에게 “형은 어떻게 점프도 안 뛰고 그렇게 잘해. 50세까지 하겠다”고 말하자, 오세근은 “그러는 너는 대학 시절하고 똑같이 하냐”고 답하는 대화를 나눴다.
김선형은 “2017년 발목이 탈골되자 주변에서 ‘운동 신경은 끝났고, 에이징 커브(노쇠화)가 올 것’이라고 했는데, 보란 듯이 깨버렸다. 자동차로 치면 옛날엔 시속 200㎞로 달렸다면, 요즘은 100㎞로 속도를 줄였다. 시야가 넓어지고 강약을 조절하니 농구가 더 재미있다”고 했다. 또 “체지방을 10.5~11% 정도로 유지한다. 아내가 바비인형 다루듯 잘 먹여주고 잘 입혀준다. 80대 후반의 나이에도 정정하신 할머니에게 노화 속도가 느린 유전자를 물려받았나 보다”며 웃었다.
극장에서 슬램덩크가 고공 행진 중이지만, 정작 코트에서 ‘한국농구가 망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1990년대 농구대잔치 시절 오빠부대를 몰고 다녔지만, 요즘 TV 시청률은 0.1%대다. 김선형은 “NBA를 접할 수 있고, 외국인 선수가 도입되다 보니 한국농구의 경쟁력이 떨어졌다고 한다. 그래도 3~4년 전엔 최악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올 시즌은 나아지고 있다. ‘티켓값이 아깝지 않은 경기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뛴다”고 했다. 김선형은 19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 만원관중(5271명) 앞에서 20점-10도움을 올려 KGC의 11연승을 저지하는 명경기를 펼쳤다.
시즌 초반 공동 9위까지 떨어졌던 SK는 최근 7승1패를 거둬 3위까지 올라왔다. 지난 시즌 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다음달 일본에서 열리는 동아시아 수퍼리그에 출전한다. 김선형은 “나라를 대표해 자존심을 지키고 싶다. 또 리그 리핏(2연패)이 목표”라고 했다.
▶‘플레시 선’ 김선형은...
나이: 35세(1988년생)
체격: 키 1m87㎝, 몸무게 80㎏
포지션: 가드
소속팀: 송도고-중앙대-서울 SK(2011~, 12시즌)
우승: 정규리그 3회(2013, 20, 22) 챔프전 2회(2018, 22)
MVP: 정규리그(2013) 챔프전(2022)
올 시즌: 어시스트 전체 1위(6.4개) 국내 득점 5위(15.5점)
▶슬램덩크 열풍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누적관객 330만명 돌파
-만화 단행본 100만부 돌파
-김선형은 슬램덩크 OST로 테마송 변경. ‘서태웅 티셔츠’ 입고 출퇴근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