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살인데도 "내가 어른인가"…청년들 성인 자각 늦어지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 한 병원 신생아실 모습. 뉴스1

서울 한 병원 신생아실 모습. 뉴스1

청년의 취업과 경제적 자립이 어려워지면서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전환하는 중간 단계가 갈수록 길어진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로 인해 한국 청년층이 스스로를 성인으로 인지하는 시기가 점차 늦어지고, 결혼·출산 연령이 올라가면서 저출산 현상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다.

‘청소년→성인’ 전환기 과거보다 5년 길어져

유민상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22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보건복지부 주최로 열린 ‘제1차 미래와 인구전략포럼’에서 이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유 연구위원에 따르면 최근 한국 청년들은 과거에 비해 ‘성인 이행기(Emerging Adulthood)’를 장기간 경험하고 있다. 성인 이행기란 청소년기에서 성인기로 급격히 전환하는 게 아니라 교육과 훈련을 받으며 안정된 직업을 위해 탐색하는 시기를 뜻한다. 유 연구위원은 한국의 높은 고등교육 진학률(지난해 73.8%)과 혼인·출산 연령 증가 등을 봤을 때 성인 이행기를 길게 겪는 청년들이 늘었다고 분석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남녀 초혼 연령은 각각 33.35세와 31.08세로, 1990년보다 각각 5.56세, 6.3세 늦어졌다. 이를 두고 유 연구위원은 “성인 이후 과도기적 기간이 늘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평균 출산 연령(첫 아이 기준)은 2001년 27.99세에서 2021년 32.61세로 4.62세 올라갔다.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시기가 과거보다 5년 정도 길어졌다는 뜻이다. 유 연구위원은 성인 이행기가 길어진 배경으로 청년들의 취업과 경제적 자립이 어려워진 현실을 꼽았다.

“난 어른” 인식도 늦어

성인 이행기가 길어지면서 자신을 성인으로 인지하는 시기가 점차 늦어지는 것과도 연관이 있다.

유 연구위원은 자체 조사를 인용해 ‘얼마나 자주 성인이 됐다고 느끼는지’에 대한 질문에 ‘자주 느낌’ ‘항상 느낌’이 절반을 넘기는 지점은 만 28세(1994년생) 정도라고 설명했다. 만 30세(92년생)만 살펴봤을 때 자주·항상 성인이 됐다고 느끼는 비율은 각각 16%와 40%였다. 가끔 느낀다거나 거의 느끼지 못한다는 비율은 39%와 5%였다.

주관적인 성인 인식이 지연되면서 결혼과 출산 연령도 올라가고 있다는 게 유 연구위원 설명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초혼 연령은 2011년 남성 31.9세, 여성 29.1세였으나, 2021년에는 남성 33.4세, 여성 31.1세로 올라갔다. 평균 출산 연령도 2011년 31.4세에서 2021년 32.6세로 높아졌다.

성인 이행기에 있는 이들이 느끼는 결혼·출산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반응이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성인 이행기에 있는 청년(18~34세)의 인식 조사에서 ‘결혼·출산을 해야 한다’는 대답이 매년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자세히 살펴보면 ‘결혼을 해야 한다’고 대답한 비율은 2016년 56%에서 2021년 39.1%로 줄었다. ‘자녀를 가져야 한다’고 대답한 비율은 같은 기간 54%에서 37.2%로 감소했다.

유 연구위원은 “이는 현재 청년 세대뿐 아니라 청소년 세대에게까지 나타나는 거시적 변화”라고 말했다. 이어 “저출산 정책으로 개인의 인식을 변화시키려고 하기보다는 개인이 삶의 지향을 선택하고 실현해 안정화될 수 있도록 하는 자립 지원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슬기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6월 24∼49세 미혼 남녀 834명(남성 458명, 여성 37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인의 가족 및 결혼 가치관 조사'를 바탕으로 청년 세대의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 변화를 발표했다. 최 교수는 2018년 이후 합계출산율이 1.0명 이하로 떨어졌지만, 미혼 남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자녀 수'는 1.96명(비동거 미혼자 기준)으로 조사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원하는 만큼 출산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며 "저출산 문제는 청년세대의 비명 소리로 이해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정부가 나서서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고 계도하기보다는 자녀를 갖는 것이 개인의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도록 제도 개선과 실질적 지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미혼 남녀와 기혼 남성, 미취학 자녀 기혼여성, 취학 자녀 기혼여성 등에 대한 그룹별 심층면접(FGI) 결과를 토대로 미래에 대한 불안, 일에 대한 욕구, 육아의 어려움 등이 출산을 기피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근본 해법은 아빠들의 육아 참여로, '독박 육아'(혼자만 하는 육아)를 깨트려야 한다"며 "일터와 가정은 각자 다른 목표를 가진 만큼 역할 중첩에 대한 충돌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 충돌을 병행 가능한 수준으로 낮추려면 여성 중심의 자녀 돌봄 책임 논의를 벗어나 남녀 모두의 문제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