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을 민간사업자가 독점하지 못하도록 추가적인 사업이익 배분조건을 제시하는 사업 제안 신청자에게 평가 점수를 더 주도록 공모지침서를 수정해야 한다.”
고(故)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 한달여 전인 2021년 11월 수기로 작성한 메모 중 일부다. 같은 해 12월 숨진 채 발견된 김 전 처장은 대장동 개발의 실무를 주도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김 전 처장을 모른다고 말했다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초과이익 환수해야” 메모 남긴 김문기…檢 수사 실마리
2015년 2월 김 전 처장은 위례신도시 공동주택사업 공모를 경험한 주모 팀장에게 대장동 사업 공모지침서 검토를 지시했다. 주 팀장은 대장동 사업과 결합 개발 형식으로 이뤄진 1공단 공원 조성비를 제외한 나머지 수익의 70%를 성남도개공에 보장하는 입찰자에게 만점을 주는 방식을 제안했다.
하지만 현재 배임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정민용 당시 성남도개공 전략사업실장은 주 팀장의 보고와 김 전 처장의 제안을 묵살했다고 한다. 그해 2월 13일 공개된 공모지침서에는 성남도개공이 확정이익 1830억원을 갖는다는 부분 외에 나머지 초과이익에 관한 내용은 빠졌다. 이처럼 민간에 유리한 방향으로 공모지침서 작성을 유도한 정 전 실장은 평가표에서도 대장동 민간사업자들이 참여한 컨소시엄에 전 항목 만점을 줬다.
김문기 지시로 70% 이익 환수 검토…이재명 배임액 산정 근거
주 팀장이 김 전 처장의 지시로 작성한 공모지침서 초안은 검찰이 이재명 대표에게 배임 혐의를 묻게 되는 시작점이 됐다. 김 전 처장이 남긴 메모에서 시작된 ‘초과이익환수 묵살 정황’은 이후 내부 검토 보고서와 당시 관련자 진술 등을 토대로 구체화했다.
검찰은 지난 16일 이 대표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대장동 사업 개발이익의 70%(6725억원) 가운데 성남시가 확정이익 형식으로 가져간 1830억원을 뺀 4895억원을 배임액으로 명시했다.
김 전 처장은 공모지침서 공개 후에도 주 팀장을 통해 정 전 실장에게 “민간사업자의 초과이익 독점을 막아야 한다”고 의견을 전달했다. 이후 공모지침서 해석을 담은 ‘질의답변서’ 작성 과정에서도 주 팀장이 김 전 처장의 지시를 받아 초과이익 배분 필요성을 전달했지만, 정 전 실장은 “성남도개공의 이익은 1·2차 이익 배분에 한정한다”고 답했다. 검찰은 이 대표 구속영장에 정 전 실장뿐만 아니라 유동규 전 성남도개공 기획본부장이 주 팀장의 초과이익환수 의견을 묵살하고 질책한 과정도 상세히 담았다.
김 전 처장은 메모에 “네 차례에 걸쳐 초과이익 환수 필요성을 제기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고 적었다. 검찰도 구속영장에서 이 대표의 배임 혐의를 설명하며 사업 진행 과정에서 수차례 초과이익을 환수할 수 있었지만, 그때마다 민간사업자와 결탁한 이 대표 측의 방해가 있었다고 했다. 2014년 11월 이 대표의 성남도개공 공동주택 분양사업 참여 배제 지시를 시작으로 2017년 2월 대장동 민간사업자의 택지 매입 과정까지, 민간의 초과이익을 다섯 번이나 환수할 기회가 있었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李 “개발이익 환수는 시장 의무 아니다” 반박
이 대표는 22일 국회에서 ‘대장동 민간업자들과 공모했다’는 검찰의 영장청구에 대해 “제가 공모했다면 그들이 원하는 대로 공모하지 않고 민간업자를 지정했을 것”이라며 “원하는 대로 하지 않아서 그들은 기득권을 다 잃어버렸다”고 반박했다. 이 대표는 지난달 28일 서울중앙지검 소환조사 때 제출한 입장문에서 “개발이익을 일부 환수하는 민관 공동개발은 시장의 의무가 아니다”라며 “개발이익이 100% 민간에 귀속되도록 특정 개인에게 개발을 허가해도 적법하고 배임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