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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군축 중단' 휘두르는 푸틴…핵실험 대결 냉전시대 돌아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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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 1주년(2월 24일)을 사흘 앞두고 또 ‘핵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번에는 미국과의 핵무기 통제 조약인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뉴스타트) 참여 중단을 선언하며 미국에 압박을 가했다. 이로 인해 핵군비 경쟁과 핵실험 재개 가능성 등이 제기되면서 냉전시대와 같은 핵대결로 돌아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푸틴, 핵 군축조약 중단…핵 위험 증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1일 러시아 모스크바 의회에서 2년 만에 국정연설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1일 러시아 모스크바 의회에서 2년 만에 국정연설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2년 만에 열린 의회 국정 연설에서 “러시아는 뉴스타트 참여를 중단한다”면서 “미국이 새로운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는데, 미국이 핵실험을 할 경우 우리도 똑같이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푸틴이 언급한 ‘미국의 새로운 핵실험’ 내용은 기존에 알려진 바 없다. 미국과 러시아가 2010년 체결한 뉴스타트는 양국의 핵탄두를 각각 1550개 이하, 핵무기 운반 수단을 각각 1500개 이하로 감축하고 쌍방 간 핵 시설을 주기적으로 사찰하는 내용이 골자다. 조약은 한 차례 연장을 거쳐 2026년 2월까지 유효한 상태다.

다만 푸틴 대통령은 협정 탈퇴가 아닌 중단이라고 밝혔다. 이날 러시아 하원(두마)은 뉴스타트 참여를 중단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아울러 러시아 외무부는 미국의 태도에 따라 중단 결정은 번복될 수 있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 발사는 계속 사전에 미국에 통보하겠다고 밝혔다. 또 핵탄두 배치 제한도 지켜나가겠다고 했다. 당분간은 현상 유지 형태로 협정 내용을 지키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푸틴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뉴스타트 중단을 언급하면서 전 세계 핵무기의 90%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과 러시아의 핵 경쟁을 막아주던 협정이 확실히 위태로워졌고 핵 위험도 더욱 증가했다고 진단했다.

핵 군축 시대 종식 신호…핵실험 가능성↑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구체적으로 핵 군축 시대 종식의 신호가 돼 전략핵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전했다. 미국 무기통제협회의 데릴 킴볼 사무국장은 “뉴스타트 협정 만료(2026년) 전까지 양국이 전략핵 제한에 합의하지 않으면, 세계 양대 핵무기 보유국에 대한 제한이 사라진다. 이는 양국 모두에게 전략핵을 증강할 수 있는 문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과학자연맹(FAS)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5977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의 핵탄두는 5428개로 추정된다. 영국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윌리엄 앨버크 전략·기술·군축 국장은 “양측이 실전 배치한 전략핵 수(각각 1550개)가 하룻밤 사이에 4000개 수준으로 늘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국가안보 전문가 존 볼프스탈은 뉴욕타임스(NYT)에 “미국에선 러시아와 경쟁하고, 중국이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핵무기를 확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로 인해 미국·러시아는 물론 중국·인도·파키스탄 등 다른 국가들도 핵무기를 더 많이 구축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과도한 군비경쟁이 촉발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해 10월 26일 러시아 북서부 플레세츠크의 기지에서 실시된 핵 훈련에서 야르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시험 발사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해 10월 26일 러시아 북서부 플레세츠크의 기지에서 실시된 핵 훈련에서 야르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시험 발사되고 있다. AP=연합뉴스

또 협정이 중단되면 양국이 서로 핵 현황과 핵 능력 등을 자세히 알 수 없어 핵실험을 통해 군사력을 과시하던 미국과 소비에트연방(소련) 간의 냉전 시대로 돌아갈 수 있다. 미국과 소련의 핵실험은 194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빈번하게 실시됐지만, 지난 1996년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CTBT) 체결 이후 핵실험을 중지했다.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정치학부 산하 오슬로 핵 프로젝트 소속 연구원인 제임스 캐머런은 “러시아가 핵실험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 염려스럽다”면서 “이제 상대방의 핵전력을 어림짐작할 수밖에 없는 탓에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 핵무기 체계와 계획을 증진할 경우 큰 불안정이 생겨날 수 있다”고 했다.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지속해서 가했던 핵 위협의 연장선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푸틴 대통령이 뉴스타트 중단에 이어 핵실험까지 한다면,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준비가 됐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미·러 핵 감축 두고 오랜 진통 겪어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미국과 러시아는 냉전 종식 이후 핵 감축을 두고 줄다리기 싸움을 벌여왔다. 지난 1991년 미국이 당시 소련과 핵탄두, ICBM 등의 감축에 합의한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스타트)을 맺었으나 자주 난관에 봉착했다.

오랜 갈등 끝에 지난 2010년 미·러는 전략핵무기의 30%를 감축하는 뉴스타트 협정을 체결했다. 양국이 쌍방 간 핵시설을 주기적으로 사찰해 협정 준수 여부를 확인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후 간혹 진통을 겪었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직후인 지난 2021년 2월에 간신히 연장 합의(2026년 2월까지)가 이뤄졌다.

하지만 지난해 2월 말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의 강도 높은 제재에 불만을 갖은 러시아는 지난해 8월로 예정된 미국 사찰단의 방문을 불허했다. 지난해 11월에는 뉴스타트 이행을 위한 양자협의위원회(BCC) 회의도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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