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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에 '팽' 당할까 반격?…바그너 수장, 러 군부에 또 날선 비난

중앙일보

입력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21일(현지시간) 텔레그램을 통해 러시아 군 수뇌부를 향해 날선 비난을 퍼부었다. 사진은 2017년 프리고진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 등장한 모습. AP=연합뉴스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21일(현지시간) 텔레그램을 통해 러시아 군 수뇌부를 향해 날선 비난을 퍼부었다. 사진은 2017년 프리고진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 등장한 모습. AP=연합뉴스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Wagner)그룹의 수장이 러시아 군 수뇌부를 향해 또 독설을 퍼부었다. 러시아 군부 내 갈등이 표출됨과 동시에, 이런 과잉 반응이 최근 러시아 권력의 핵심에서 그가 밀려났다는 것을 방증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2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이날 텔레그램에 올린 음성 메시지를 통해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통합사령관 등 군 수뇌부가 용병을 착취하고 바그너그룹을 와해하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들(군 수뇌부)은 조국과 국민의 뜻을 들먹이며 본인들 편의를 위해 용병이 희생돼도 된다는 결정을 내린다"면서 "바그너 전사들은 필수 보급품이 부족한 가운데 파리처럼 죽어가고 있다"고 역설했다. 러시아 군 수뇌부가 바그너그룹에 대해 '어깃장'을 놓고 있다며 이는 "반역죄로 처벌할 만한 일"이라는 주장이다.

예브게니 프리고진 바그너그룹 수장이 "러시아 군 수뇌부가 바그너그룹을 와해시키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이 2021년 12월 모스크바에서 발레리 게라시모프 통합사령관(왼쪽),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오른쪽)과 국방통제센터를 둘러보는 모습. AP=연합뉴스

예브게니 프리고진 바그너그룹 수장이 "러시아 군 수뇌부가 바그너그룹을 와해시키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이 2021년 12월 모스크바에서 발레리 게라시모프 통합사령관(왼쪽),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오른쪽)과 국방통제센터를 둘러보는 모습. AP=연합뉴스

프리고진은 전날에도 일부 국방부 관리들이 자신에 대한 개인적인 반감을 이유로 바그너그룹에 대한 물자지원을 거부했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그는 "쇼이구 장관이 '바그너그룹에 탄약 등 무기를 지원하지 말고, 항공 수송 지원도 하지 마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 동부 격전지 바흐무트 등지에서 전투 중인 바그너그룹은 필요한 탄약의 80%를 보급받지 못해 최근 두 배 넘는 병력 손실을 봤다고 한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런 프리고진의 폭로에 "사실무근"이라며 일축했다. 국방부는 이날 오후 성명을 통해 "군 당국은 전투병 보급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다하고 있다"며 "탄약 부족과 관련해 '자원 공격 부대'를 대변해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모든 진술은 전적으로 틀린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러시아 전투 부대 간 긴밀한 상호 작용과 지원 체계를 분열시키려는 시도는 되레 역효과를 내고 적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성명에서 바그너그룹을 직접적으로 특정하지는 않았다.

프리고진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주로 음지에서 푸틴의 불법적인 활동을 지원해 왔다. 그러다 2014년에 창설한 용병집단 바그너그룹이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전과를 올리면서 푸틴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다. 지난해 말엔 군 수뇌부의 전술 실패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등 기세를 올려왔다.

예브게니 프리고진(왼쪽)이 이끄는 바그너그룹이 최근 전장에서 전과를 올리자 러시아 군 수뇌부의 견제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프리고진이 지난 2011년 푸틴 대통령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모습. AP=연합뉴스

예브게니 프리고진(왼쪽)이 이끄는 바그너그룹이 최근 전장에서 전과를 올리자 러시아 군 수뇌부의 견제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프리고진이 지난 2011년 푸틴 대통령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모습. AP=연합뉴스

하지만 올해 들어 프리고진의 상승세에 잇따라 제동이 걸리는 모습이 포착되고 있다. 러시아 크렘린궁은 지난 1월 프리고진과 밀착하는 군 간부를 강등시키고, 바그너그룹의 용병 모집을 제한하는 등 그의 영향력을 억제하려는 징후를 드러낸 바 있다. 심지어는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바그너그룹 용병을 철수하라고 명령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프리고진의 튀는 행보들은 전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군부 내 권력다툼이 심해지고 있다는 징조라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 독립언론 메두자의 군사 분석가 드미트리 쿠즈네츠는 NYT에 "전쟁이 2년째에 접어들면서 러시아 군 내부의 권력 경쟁이 점차 치열해지고 있다"며 "정규군 반대 세력의 실세인 프리고진이 전과를 올리자 군 수뇌부의 질투를 불렀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바그너그룹은 러시아 국방부로부터 필요한 군수물자를 보급받지 못해 최근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심각한 병력 손실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우크라이나군이 지난 16일 우크라이나 동부 바흐무트에서 교전을 벌이고 있는 모습. AFP=연합뉴스

바그너그룹은 러시아 국방부로부터 필요한 군수물자를 보급받지 못해 최근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심각한 병력 손실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우크라이나군이 지난 16일 우크라이나 동부 바흐무트에서 교전을 벌이고 있는 모습. AFP=연합뉴스

일각에선 이런 권력다툼에서 프리고진이 밀려나 푸틴 대통령 눈 밖에 났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러시아 독립 정치분석기관 R.폴리틱 대표 타탸나 스타노바야는 텔레그램에 "(존재감을 어필하기 위해) 푸틴을 향한 일종의 '자포자기 행위'"라며 "이는 군 수뇌부를 압박함으로써 푸틴에게 정치적으로 다가가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21일 국정연설에 모인 정치인 및 군 간부들에게 "부처 간 어떠한 반목, 형식주의, 오해, 원한 그리고 그 밖의 다른 터무니없는 일들 모두를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발언을 두고 로이터 통신은 "푸틴이 프리고진을 염두에 두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내분을 종식하고 싶은 의중을 시사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 프리고진은 "너무 바빠서 국정연설을 보지 못했다"며 "따라서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코멘트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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