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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배운 엄마가 보낸 카톡에 펑펑"...건(健)중년 선포한 횡성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강원 횡성군의 한 경로당에서 '스마트폰 활용법'에 대한 교육을 받고 있는 교육생들 모습. 채동하씨 제공

강원 횡성군의 한 경로당에서 '스마트폰 활용법'에 대한 교육을 받고 있는 교육생들 모습. 채동하씨 제공

‘80세’는 넘어야 ‘노인’이지 

“요즘 누가 60대를 노인이라고 하나요. 80세는 넘어야 노인이지.”

강원 횡성군에서 스마트폰 강사로 활동하는 채동하(67)씨가 한 말이다. 채씨는 60세가 넘은 2018년부터 지역 경로당을 돌며 어르신 대상으로 ‘스마트폰 활용법’을 강의를 하고 있다. 강의는 일주일에 2번 월·목요일에 한다.

지난 20일 오전엔 둔내면 석문1리 경로당에서 어르신 7명을 대상으로 스마트폰 활용법을 알려줬다. 채씨 강의 내용은 문자·카카오톡 메시지 보는 방법, 애플리케이션(앱) 활용, 유튜브 보기, 키오스크 사용 등이다.

어르신들 휴대전화에 교육용 키오스크 앱을 깔고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 사기, 기차·버스 예매하기, 은행 ATM 이용법 등을 연습한다. 이후 실제 활용할 수 있는 앱을 깔아 실습하는 과정까지 진행한다. 교육은 1대1 방식이다.

강원 횡성군의 한 경로당에서 '스마트폰 활용법'에 대한 교육을 받고 있는 교육생들 모습. 채동하씨 제공

강원 횡성군의 한 경로당에서 '스마트폰 활용법'에 대한 교육을 받고 있는 교육생들 모습. 채동하씨 제공

‘60대 중반’은 한창인 나이

서울에서 30년 넘게 학원을 운영하다 횡성으로 이주한 채씨는 “60대 중반은 한창인 나이다. 아직도 배우고 싶고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고 말했다. 채씨는 지난해 8월 연세대 금융부동산학 석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14%를 넘으면 고령사회, 21%를 넘으면 초고령사회라고 정의한다. 횡성군은 지난해 12월 기준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1만5222명으로 전체 인구(4만6532명)의 32.7%에 달한다.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셈이다.

횡성군은 고령화 문제 해법을 찾고자 과거 노인이라 불리던 65~70세를 ‘건(健)중년’으로 새롭게 정의하고 이들을 생산가능인구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건중년은 ‘굳세고, 건강하고, 튼튼하다’는 의미다.

이후 채씨처럼 65~70세에도 활발한 활동을 하는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건중년 선언·선포식을 연다. 선포식은 22일 오후 2시 횡성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다.

강원 횡성군의 한 문해교실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교육생들 모습. 양덕희씨 제공

강원 횡성군의 한 문해교실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교육생들 모습. 양덕희씨 제공

‘건중년 활동 효과’ 곳곳에서 나타나

실제 건중년 활동은 다양한 분야에서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양덕희(67)씨는 매주 화·수·금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문해교육을 하고 있다. 처음엔 교육생 대부분이 쉬운 글자도 읽지 못했는데 요즘은 읽는 게 가능해져 삶에 큰 변화 생겼다.

교육생 이모(68여)씨는 기차에 타면 알파벳을 읽지 못해 옆 사람에게 눈이 잘 안 보이니 자리를 좀 찾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글과 알파벳을 익히면서 스스로 좌석을 찾는 등 외부 활동에 자신감이 생겼다.

또 다른 교육생 최모(74·여)씨 역시 글을 읽지 못해 재난지원금 지급 시기를 놓치고 마을행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요즘은 딸에게 문자를 보낸다고 한다. 최씨 딸은 어머니의 문자를 받던 날 펑펑 울었다고 한다.

활발하게 활동하는 강원 횡성군 '건중년'들의 모습. 횡성군

활발하게 활동하는 강원 횡성군 '건중년'들의 모습. 횡성군

중년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 필요

양씨는 “어려운 시절 학교 가는 건 엄두도 못내 제대로 배우지 못한 분들이 굉장히 많다”며 “교육생들이 학교 졸업장을 받고 책을 읽고 간단한 영어를 하게 되면서 외부 활동이 늘어나고 자존감도 많이 올라갔다”고 말했다.

한편 1981년 경로우대법 제정 당시 만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 3%대에 불과했다. 평균수명은 66.1세로 2021년 83.6세와 비교하면 20세 가까이 차이 난다. 국민이 체감하는 65세의 신체 역량이나 사회·경제적 활동도 40여 년 전과 많이 달라진 상황이다. 이런 이유로 서울·대구 등 전국 곳곳에서 지하철 무임승차 연령 상향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김명기 횡성군수는 “건중년 선언은 중년 위상을 다시 세우고, 중년에 대한 사회적 인식 자체를 변화시키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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