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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 갈아타자 "15억 내놔"…배달업계에 벌어진 '땅따먹기 전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음식 배달을 하는 라이더. 뉴시스

음식 배달을 하는 라이더. 뉴시스

수요 정체를 겪고 있는 음식 배달 시장이 업체 간 출혈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배달앱 운영사들이 지역별 배달대행업체를 고객으로 유치하는 과정에서 계약 위반 논란이 발생해 소송전도 치열하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에 따른 음식 배달 수요가 폭증하던 시절이 끝나자마자 사업자 간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1. 경기 성남시 일대에서 음식 배달대행업을 하는 조모씨. 라이더(오토바이 배달원)들을 지휘하며 식당 사장님들에게 배달 1건에 1000~5000원을 받는 사업이다. 소비자가 '배달의민족' '요기요' 등으로 주문을 하면, 이를 받은 식당 업주가 조씨 같은 배달대행업자에게 연락하는 방식이다. 그러면 조씨가 지휘하는 라이더가 최종 배달을 수행한다. 소비자 눈엔 보이지 않는 시장인데, 이 과정은 '생각대로' '부릉' '국민배달' 등의 앱으로 진행된다. 조씨는 ‘생각대로’를 이용해 이 사업을 해왔다. 배달 1건당 88원을 앱 사용료로 내면서다. 생각대로는 매출액 기준(운영사 로지올, 2021년 451억원) 업계 2위 서비스다.

그런 조씨가 관리하는 지점에 지난해 다른 배달대행앱 회사의 제안이 들어왔다. 신생업체 ‘국민배달’은 조씨 지점에 배달 이용료를 55원만 받겠다고 했다. 이에 지점은 국민배달로 플랫폼을 바꿨다.

'국민배달'로 바꾼 조씨는 몇 달 뒤 '생각대로'에게서 내용증명 한 통을 받았다. ‘계약 위반을 했으니 위약금을 포함한 각종 지원비 약 15억원을 물어내라’는 문서였다. 당황한 조씨는 '국민배달'과 '생각대로' 양측에 하소연도 하고 항의도 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조씨는 기자에게 “몸이 아파 중간 관리자에게 지점을 맡긴 동안 중간 관리자가 내 결제없이 국민배달로 이탈한 것”이라며 “연 매출 1억~2억원 짜리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 그런 돈이 어디 있느냐. 소상공인에 대한 앱 시장 과점 업체의 갑질”이라고 말했다. '생각대로' 운영사인 ‘로지올’은 조씨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건 상태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2. 경기 김포에서 같은 사업을 하는 황모씨도 '생각대로'를 쓰다가 '국민배달'로 옮겼다. 마찬가지로 소송에 걸렸다. 황씨에 따르면 '생각대로' 측에서 요구한 금액은 1억5000만원이다.

황씨는 적립금 탈취 논란까지 겪고 있다. 황씨 업체에서 일하던 H씨가 지난해 12월 배달 적립금 1억3000만원을 빼갔다는 것이다. 배달 적립금이란 음식점 업주들이 황씨에게 미리 맡겨놓은 배달 요금이다. 배달이 이뤄질 때마다 1000~5000원씩을 적립금에서 차감한다.

황씨는 H씨가 '생각대로' 측의 사주를 받아 계좌에 접근해 돈을 빼갔다고 주장한다. 황씨는 “H씨는 계좌 접근 권한이 없는 사람”이라며 “그런데도 마스터 아이디를 통해 계좌에 손을 댔고, 그 아이디는 '생각대로'에서 사용 승인을 해주지 않으면 쓸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내가 '국민배달'로 앱을 바꾼 뒤 '생각대로'가 위약금을 요구하며 벌인 일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황씨는 이달 초 H씨와 '생각대로' 운영사인 로지올을 상대로 서울서초경찰서에 고소장을 냈다. 황씨는 “돈뿐 아니라 계약된 라이더·식당 정보까지 빼갔다”며 “식당 사장님들을 부추겨 나와의 계약을 끊게 만드는 식으로 압박하려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로지올은 “적립금 탈취 논란은 우리 회사와 전혀 관련이 없다”며 “황씨와 H씨의 사인 간 갈등에서 벌어진 일에 우리 회사를 연결해 계약 위반 책임을 피하려는 시도로 보인다”고 반박했다.

음식 배달용 오토바이. 중앙포토

음식 배달용 오토바이. 중앙포토

공정위 조치 해석 줄다리기 

조·황씨와 '국민배달' 측 주장의 핵심 근거는 2021년 5월 공정거래위원회의 발표에 두고 있다. 이전까지 배달업체가 앱 사용 계약을 중간에 끊으면 남은 계약 기간에 비례해 수억~수십억대 위약금을 물어야 했다. 이런 점이 부당하다고 배달업체들이 지속해서 문제를 제기한 결과, 공정위는 “배달업체 앱 운영사 간 계약서에서 위약금 규정을 폐지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국민배달 측은 “공정위가 하지 말라고 한 내용을 그대로 우리 고객사에 요구한 것”이라며 “소송에 걸리니 정말 미안하고 당황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당시 공정위가 ‘자율시정’이라면서 해당 발표를 한 점이다. 공정위가 시정조치나 과징금 처분을 한 게 아니어서, 자율시정 조치가 최근의 앱 업체 간 계약 옮기기에도 적용되는지가 쟁점이 됐다. 정재훈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배달 대행 시장처럼 지역·상황별 계약 형태가 다양한 영역에선 공정위가 일괄적인 구속력을 갖는 조치를 하기가 어려워 자율시정으로 처리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로지올 측은 “공정위의 자율시정 결정은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며 “다만 자율시정 조치 발표 이전에 했던 계약에 대한 책임은 여전히 유효하고, 자율적으로 소급 적용을 고려하더라도 이들과의 계약 형태에 대해서까지 적용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분쟁의 근원은 배달 시장의 성장세가 멈췄기 때문이다. 음식배달은 2017년 총 2조7300억원 어치가 이뤄졌는데, 코로나19를 겪으며 그 규모가 2021년엔 25조6700억원으로 성장했다. 5년간 10배 넘게 폭증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그 성장세가 꺾였다. 2022년 4분기 음식배달 거래액은 6조3600억원으로 1년 전(6조7800억원)보다 6.2% 하락했다.

이 때문에 배달앱 업체들은 지역별로 대규모 라이더뿐 아니라 식당과 계약 관계를 보유한 배달대행사들을 새 손님으로 끌어오는 게 과제가 됐다. 업계에선 배달 지역 ‘땅따먹기’로 불린다. 국민배달과 같은 신생업체까지 진입하면서 땅따먹기 경쟁은 더욱 심해졌고, 민ㆍ형사 사건으로 번지고 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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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령 의혹까지…"경쟁 업체의 음해" 

땅따먹기 경쟁을 하다 보니 배달앱 업체들은 지역에 뿌리내린 배달업체와 라이더를 자기네 고객으로 유치하기 위한 ‘영입금’도 쓰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고객 적립금을 유용한다는 논란도 불거졌다. 또 다른 배달앱 업체 ‘만나플래닛’은 음식점 업주들로부터 미리 받아둔 배달 적립금이 213억원인데, 회사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98억원이라고 공시해 업계에서 의혹을 받았다. 맡아둔 돈을 회사가 무단으로 빼내 영업에 활용했다는 횡령 의혹이다. 이에 대해 만나플래닛 측은 “관계사와의 연결된 재무상태를 고려하면 고객 적립금과 현금성 자산의 불균형은 없어진다”며 “일부 자료만 보고 ‘적립금을 유용해 영업에 활용한다’는 건 경쟁사들의 무책임한 음해와 왜곡”이라고 반박했다. 만나플래닛의 2021년 매출은 123억원으로 업계 3위로 알려져 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배달앱 업계에선 수요 정체와 진입 장벽이 낮다는 점 때문에 이런 상처내기식 경쟁이 더 심해질 거란 관측이 나온다. 한 배달앱 업체 관계자는“배달앱을 만드는 건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 없는 게 사실”이라며 “그만큼 새로운 경쟁자가 들어서기 좋은 시장이다. 출혈 경쟁은 심해질 것”이라고 털어놨다.

홍대식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진입 장벽이 낮아 경쟁이 활성화되는 것 자체는 좋지만, 질 낮은 서비스를 하는 사업체까지 시장에 들어오면 소비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며 “과거 택시 콜서비스에 온갖 사업자가 끼어들면서 서비스 품질이 낮아졌던 것과 비슷한 현상이 배달대행앱 시장에서 나타나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홍 교수는 “순간의 이익을 노리고 시장에 진입해 몸집만 키우고 사업을 매각해 빠지는 일까지 빈번하게 발생하면, 적립금이라는 이름으로 거액의 배달료를 선납하고 있는 소상공인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다. 감시와 보호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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