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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뜯다 대학 가고 취업까지…고졸의 꿈, 정부가 키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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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해 말 천정근군이 경남항공고 정비 실습하는 모습. 천정근군 제공.

지난해 말 천정근군이 경남항공고 정비 실습하는 모습. 천정근군 제공.

올해 남해대 항공정비학부 신입생이 된 천정근군의 고교 3학년 여름은 여느 때보다 뜨거웠다. 지난해 6월부터 석 달간 한국항공서비스(KAEMS)의 비행기 정비소에서 일하며 땀을 흘렸다. KAEMS는 항공기 제조기업인 한국우주항공(KAI)의 정비 자회사다. KAEMS가 회사 인근의 경남항공고 학생만을 위한 현장 실습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천군은 거기에서 대학 진학의 기회를 잡았다. 경남 진주·사천·고성교육지원청이 지난해 진행한 직업교육 혁신지구 사업의 성과 중 하나다. 직업교육 혁신지구 사업은 교육부가 2021년부터 직업계 학생 대상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지역 교육청·자치단체에 각각 5억~10억원을 지원하는 돈이 핵심 동력이 된다.

지난 여름, 천군은 KAEMS에서 보잉737 기종의 정비 보조, 내·외부 세척과 점검을 맡았다. 의자를 뜯어내거나 창문을 고쳐 달고 비상구의 안전을 점검하며 오래 사용한 비행기를 새것으로 만들었다. 서울의 고교 3학년생 못지않은 강행군이었다.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 학교 기숙사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사천 KAEMS 본사로 출근했다. 항공고 졸업생 절반 가량이 선택하는 부사관이 될까 고민했던 천군은 실습 후 인생 항로를 항공정비사로 변경했다.

여름에 흘린 땀은 대학 합격통지서로 돌아왔다. KAEMS와 함께 혁신지구 사업에 참여한 남해대의 수시모집에 지원해 3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었다. 현장 실습 프로그램에 참여해 가산점을 받은 게 도움이 됐다. 천군은 “대학에 다니면서 자격증과 (정비사 작업에 필요한)영어 공부를 착실히 해서 좋은 정비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고졸 지역 인재를 키워라”…교육청-지자체 손 잡고 취업·정주 돕는다

지난해 8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에서 혁신지구 사업 참여 학생들이 신입사원 마인드 함양 연수를 받는 모습. 대구시교육청 제공

지난해 8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에서 혁신지구 사업 참여 학생들이 신입사원 마인드 함양 연수를 받는 모습. 대구시교육청 제공

교육부의 직업교육 혁신지구 사업은 지역 인재를 키우기 위한 프로젝트다. 지역 정주율이 높은 고졸 인재를, 지역이 직접 키우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교육부 관계자는 “고졸 인력은 지역 잔존율이 높음에도 이들의 교육 문제는 학교나 교육청의 책임으로만 취급돼 지자체의 관심이 낮았다”며 “인구소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지자체와 함께 사업을 시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교육부의 지원금(약 100억원)은 직업계고·대학·기업이 함께 공동 교육과정과 현장실습, 취업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지구(지역교육청-지방자치단체 연합체)를 거쳐 사업 참여 직업계 고교나 대학에 지급된다. 올해는 광역단체 중 전북이, 기초단체 중엔 충남 당진시 등 2개 지구가 신규로 선정돼 총 12개 지구가 사업을 진행한다.

지난해 말 천정근군이 경남항공고 정비 실습하는 모습. 천정근군 제공.

지난해 말 천정근군이 경남항공고 정비 실습하는 모습. 천정근군 제공.

항공정비사, 호텔리어…맞춤형 교육과 취업

각 지구는 지난 3년간 다양한 방법으로 고졸 인재 양성에 주력했다. 부산시는 관광업 등 지역 대표 산업 분야에서 일할 고졸자 양성 트랙을 특화했다. 부산시교육청 관계자는 “시가 전략적으로 키우는 4개 분야(스마트제조, 글로벌관광, 금융경영정보서비스, 라이프케어) 관련 직업계고 학생 100명을 뽑아 이들의 취업과 대학 진학을 도왔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글로벌관광 분야에 선발된 25명의 학생들이 파라다이스, 그랜드하얏트 등 지역의 대표 호텔에 취직하고 경남정보대 호텔조리학과에 진학해 호텔리어의 꿈을 키우게 된다.

대구시는 일·학습 병행 제도를 적극 활용한 경우다. 지난해 의료기기 업체 메가젠임플란트 취업과 대구보건대 치기공학과 합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송다영양(대구 과학기술고 졸업)은 “보건대 교수님들이 학교 입학 전부터 직접 회사로 찾아와 직업 교육을 해주셨다. 다음달부터는 평일엔 온라인 강의, 주말엔 대면 실습강의를 들으며 취업과 공부를 병행하게 된다”고 말했다. 송양을 선발한 정효경 대구보건대 교수(치기공학과장)는 “학생은 커리어에 도움되는 공부를 할 수 있고 학교는 맞춤형 인재를 뽑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8월 부산 파라다이스호텔에서 부산시교육청의 혁신지구 사업 실습에 참여하고 있는 학생들. 부산시교육청 제공

지난해 8월 부산 파라다이스호텔에서 부산시교육청의 혁신지구 사업 실습에 참여하고 있는 학생들. 부산시교육청 제공

천안시는 고졸 인재 양성에 지자체(천안시청)의 참여도를 높였다. 충남도교육청 관계자는 “직업계고 교사에게 일임했던 학생들의 취업 알선 업무를 지자체가 전담하게 했다. 사회 생활 초년생인 청년들이 부동산 계약이나 금융 업무를 볼 때 피해를 입지 않도록 지자체가 예방 교육까지 책임지는 방식으로 지역 정주를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는 사업 시작 때 참여한 직업계 고교 1·2학년 학생들이 취업이나 대학에 진학하는 첫해다. 교육부 관계자는 “지역 인재를 키우는 게 지역을 발전시키는 일이다. 함께 성장하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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