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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커플, 유족연금 신청도 가능해지나? 의료·법조계 촉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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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선고 직후 서울고법 앞에서 소성욱씨와 김용민씨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선고 직후 서울고법 앞에서 소성욱씨와 김용민씨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동성 커플에게도 기존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취지의 법원 판결에 의료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패소 판결을 받은 건강보험공단 측은 21일 “이번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건보공단과 의료계는 향후 파장에 주목하고 있다. 건보 피부양자 자격과 같은 복지 혜택은 의료계의 여러 법령에 유사하게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건보 “대법원 간다”…재정 영향 적지만, 파장은 커

1심에서 이겼다가 2심에서 패소한 건보공단 측도 난감해하는 분위기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현재 내부 지침에는 피부양자 자격에 동성 부부를 포함하지 않은 ‘사실혼 배우자’에 대해서만 적시돼 있기 때문에 대법원에서도 같은 판결이 나온다면 지침이나 법 개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공단 측은 동성 커플에게도 피부양자 자격이 주어지더라도 재정적인 부담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9월 기준 최근 5년간 사실혼 배우자 피부양자 등록 신청 건수 자체가 3560건으로 미미한 수준이다. 이번 판결로 동성 사실혼 배우자의 신청이 오더라도 이성의 경우보다 훨씬 적을 것이라는 게 공단 측의 분석이다.

그러나, 이번 판결의 상징성으로 인해 상당한 파장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판결의 주요 근거가 된 ‘형평성’ 잣대를 유사 사회보장법 체계에 적용한다면 그간 인정해오던 가족의 범위 자체가 대폭 확대될 수 있어서다.

동성 사실혼 피부양자 등록했다가 취소…건보, “착오였다”

결혼 5년차 동성커플 소성욱 씨와 김용민 씨가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민건강보험공단 상대 보험료 부과 취소 처분 소송 항소심 선고 직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결혼 5년차 동성커플 소성욱 씨와 김용민 씨가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민건강보험공단 상대 보험료 부과 취소 처분 소송 항소심 선고 직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서울고법 행정1-3부(이승한·심준보·김종호 부장판사)의 이번 판결 요지는 이른바 ‘동성 부부’에게도 건보 피부양자 자격 중 하나인 ‘사실혼 배우자’를 인정해 주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사실혼 배우자 집단과 동성 결합 상대방 집단은 이성인지 동성인지만 달리할 뿐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또 “소득이나 재산 없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을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보는 사회보장제도 목적에 비춰볼 때 동성이라는 이유로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건 평등의 원칙에 어긋나는 차별”이라는 게 법원 판단이다. 이는 동성의 혼인이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동성의 사실혼 관계도 인정할 수 없다는 1심의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원고 소성욱씨는 지난 2019년 동성인 김용민씨와 결혼식을 올린 후 이듬해 2월 직장가입자인 배우자 김씨의 피부양자로 등록했다. 등록이 가능했던 건, 당시 건보공단 측이 받아줬기 때문이다. 앞서 소씨의 문의에 공단 측은 “동성 커플이어도 피부양자 등록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같은 해 10월 관련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착오였다”며 입장을 바꿨고 소씨의 자격을 소급해서 없앴다. 소씨가 소송을 하게 된 배경이다. 건보공단 측은 이번 판결 이후에도 “실무자가 ‘사실혼 배우자’의 법적 정의를 정확하게 알지 못해 벌어진 일”이라고 설명했다.

의료·법조계 “각종 사회보장법 체계에 영향 줄 것”

서울고법은 이번 판결에서 ‘동성 사실혼 배우자’의 법적 지위를 인정한 것은 아니라는 단서를 달았다. 법원이 ‘동성 부부’ 대신 ‘동성 결합 상대방’이라는 표현을 쓴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러나, 판결의 파장은 확산될 전망이다. 법률적으로 동성혼이 인정되지 않더라도 사실상 ‘동성 사실혼 배우자’를 인정한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특히, 유사 규정이 많은 각종 사회보장 체계 해석에 적용될지에 관심이 많다.

이에 대해 현두륜 변호사(법무법인 세승)는 “국민연금법이나 공무원연금법 등 유사한 사회보장 관련 법률에서 향후 동성 부부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평등 원칙에 위배된다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단초가 됐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 가입자가 사망 후 나눠 갖는 유족연금에서도 동성 배우자가 ‘사실혼 관계’를 근거로 자신의 상속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 변호사는 또 “사회보장 영역은 아니지만, 연명 의료 중단 결정에서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배우자 범위에 동성 결합 상대방을 포함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리가 제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동성결합을 어디까지 인정하고, 법적 지원을 어떻게 해줄지 논란이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격세지감”…‘사실혼 배우자’ 자격도 10년 전 일인데

의료계에선 ‘격세지감’을 거론하는 목소리도 있다. 건보공단이 (이성의) ‘사실혼 배우자’에 대해 피부양자 자격을 처음 인정해주기 시작한 것도 2013년의 일이기 때문이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지만, 부부 공동생활을 인정할 만한 실체가 있는 사실상 배우자의 경우 피부양자로 인정해줘야 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가 나온 뒤부터다. 이성의 사실혼 배우자의 피부양 자격이 인정된 지 10년 만에 동성의 사실혼까지 인정을 받는 상황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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