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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남규의 특별인터뷰

“푸틴은 야만적 독재자, 반인간적 범죄 끝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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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강남규 기자 중앙일보 국제경제 선임기자

우크라이나 전쟁 1년…비판적 지식인 노엄 촘스키

강남규 국제경제 선임기자

강남규 국제경제 선임기자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2022년 2월 24일 텔레비전 연설을 시작했다. 그는 “특별 군사작전”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선언했다. 이틀 뒤면 개전 1년이다. 그간 수 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소모전 양상을 띠고 있다. 전선과 후방에선 피로가 고조된다. 그런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전격 방문했다. 한 번 더 해보자는 태세다.

언어학자인 노엄 촘스키(95) MIT와 애리조나대 교수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추악하고 비인간적인 전쟁”이라고 비판해왔다. 1960년대 베트남전을 비판한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이나 프랑스 극작가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을 떠올리게 했다. 촘스키 교수의 말을 외신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들어보기 위해 애리조나주 자택에 머무르는 그를 줌(Zoom) 너머로 만났다.

우크라도 러시아도 승리 어려워
외교협상만이 더 이상 재앙 막아

미국의 초정밀 미사일 제공 우려
핵전쟁으로 확산되는 일 없어야

화석에너지 회사들만 이익 챙겨
기후위기 대비 노력 늦추는 역설

국제정치 현실에도 관심이 큰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 교수는 러시아가 미국처럼 인프라 붕괴 전술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 바람에 우크라이나 경제의 붕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AP=연합뉴스]

국제정치 현실에도 관심이 큰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 교수는 러시아가 미국처럼 인프라 붕괴 전술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 바람에 우크라이나 경제의 붕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AP=연합뉴스]

갈수록 비참해지는 우크라 상황

우크라이나 전쟁이 거의 1년을 맞았다. 우선 이 전쟁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반인간적인 범죄다. 국제정치 전문가들은 미국이 러시아를 도발했고(provoked) 앞뒤 가리지 않고 제재했다고 비판했다. 이 점은 대(對)러 매파나 비둘기파 모두 동의하는 사실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쳐들어간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떤 상태인가.
“러시아-우크라이나 두 진영이 (휴전이나 종전을 향해 움직이는 게 아니라) 전쟁 상황을 고조시키고 있다. 미국과 독일이 첨단 탱크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려고 한다. 미국산 F-16 전투기도 우크라이나 하늘을 날아다닐 전망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비극이 펼쳐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영토가 황폐화하고 있다. 전쟁이 이어질수록 우크라이나 국민의 상황은 더욱 악화한다.”
휴전이나 종전 가능성은 엿보이는가.
“이곳 미국에서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일을 계속하면 (휴전) 협상하기 좋은 위치를 선점할 수 있다’는 주장이 강하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현장에서는 (양쪽) 병사 수천 명이 아니라 수만 명이 죽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다.”

우크라 인프라 궤멸에 나선 러시아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무엇인가.
“애초 미국 전쟁 전문가 등은 러시아군이 전쟁 초기에 우크라이나 통신과 항만·도로 등 인프라스트럭처를 철저히 부숴놓을 것으로 봤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할 때처럼 말이다.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전쟁 초기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일상생활은 원활하진 않았지만 도시 기능이 마비되는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은 어떤가.
“요즘 러시아군은 미국이 이라크에서 했던 것처럼 인프라를 철저히 부숴버리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의 중요한 지역에서 러시아군이 인프라를 파괴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이런 전쟁 양상이 이어진다면 우크라이나 경제는 더욱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다.”

2022년 우크라이나 경제 규모는 한 해 전보다 35%나 줄어들었다. 촘스키 교수가 말한 “인프라를 파괴하지 않는” 전쟁 방법만으로도 공황 수준보다 더 나쁜 성장률이다. ‘유럽의 곡창’으로 불린 우크라이나의 밀 생산과 수출이 중단되고, 전쟁으로 일상적인 경제활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결과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경제 파탄 말고도 예상치 못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무엇이 예상치 못한 결과인가.
“전쟁 직전까지 세계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대체에너지 쪽으로 전환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생했다. 천연가스 등 화석 에너지 공급이 불안해졌다. 가격이 급등했다. 화석 에너지 회사들이 큰 이익을 챙기고 있다. 에너지 공급 위기를 이용해 정부를 움직여 화석 에너지 개발에 다시 나설 채비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기후위기 대응을 방해하는 모양새다.”

“나토 확장 없을 것” 약속 어긴 미국

2022년 가을 한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사태가 핵전쟁으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했는데, 여전히 핵전쟁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우크라이나 비극이 핵전쟁으로 번질 수 있다. 내가 우려하는 상황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초정밀 장거리 미사일 등을 공급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군이 미군이나 미국 방산회사 기술자의 도움 없이 초정밀 미사일을 운용하기는 불가능하다. 미국 쪽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를 잘 아는 러시아가 폴란드 등에 있는 미사일 병참기지 등을 공격하고 나서면 확전이 본격화한다. 그 결말은 입에 담기조차 부담스러운 국지적 또는 전면적 핵전쟁일 수 있다.”

촘스키 교수는 전쟁 전문가가 아니다. 인터뷰가 이어지면서 현재 전쟁이 어떻게 치러지고 있고, 어느 쪽으로 흘러갈 것인지 등과 같은 질문보다 전쟁의 원인이나 이후 파장 등을 묻는 게 그에게 더 적절할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 첫머리에서 미국이 러시아를 도발했다(provoked)고 했는데, 많은 사람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미국을 자극했다고 믿고 있다. 통념과 달라 뜻밖이다.
“현재 우크라이나 비극을 이해하려면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 재임 기간(1993~2001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그렇게 긴 뿌리를 갖고 있다는 말인가.
“사실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아버지인 조지 부시 시절까지 되돌아가야 한다.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은 소련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안에서 독일이 통일(1990년)되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나토는 독일 너머 동쪽으로 1인치도 확장되지 않을 것’이라고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대통령에게 약속했다. 부시의 약속은 아주 분명했다. 오해의 소지도 없었다. 그가 고르바초프에게 한 약속이 문서로 남아 있다. 미국 국가안보문서국(National Security Archive)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누구나 부시가 고르바초프에게 한 약속을 문서로 확인할 수 있다.”

클린턴이 방아쇠 당긴 신냉전 구도

그런데 어떻게 됐나.
“클린턴이 약속을 뒤집었다. 폴란드 등을 나토에 가입시켰다(1999년). 클린턴은 친구인 보리스 옐친 당시 러시아 대통령에게 폴란드계 등 동유럽 출신의 미국인 표를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 뒤 ‘미안하다!’고 말했다. 클린턴이 신냉전의 방아쇠를 당긴 셈이다. 신냉전은 조지 W 부시(아들) 대통령 시절에 더 심해졌다. 우크라이나와 조지아까지 서방으로 끌어들이려 했다. 프랑스와 독일이 반대해 무산됐다.”

클린턴은 1996년 대선에서 재선했다. 그리고 3년 뒤인 1999년 폴란드와 헝가리·체코가 나토에 가입했다. 세 나라는 옛 소련이 주도한 안보동맹인 바르샤바조약기구의 멤버였다.

그 뒤 우크라이나 상황도 달라졌다.
“우크라이나에서 2014년 (친러) 시민들의 주도 아래 대규모 봉기가 일어났다. 그 바람에 친서방 정부가 무너졌다. 이를 계기로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서방 진영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통독 이후 미국이 한 약속과 약속 파기 등이 모두 러시아를 자극했다.”
우크라이나가 지정학적으로 러시아에 얼마나 중요하기에 전쟁까지 불사했을까.
“지도를 한번 보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활짝 열려 있는 ‘노는 골목’ 같다. 실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옛 소련 군대가 우크라이나에서 치열하게 싸웠다.”

“푸틴은 그릇이 작은 인간일 뿐”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기까지 미국이 무슨 일을 했는지를 살펴봤다. 그렇다면 푸틴에 대한 평가가 궁금하다.
“푸틴은 거친 사람이다. 야만적인 독재자다. (거침없이 국고를 사유재산으로 바꾸고 있는데) 그의 도벽이 병적이기도 하다. 그의 정치적 목적은 자신과 측근이 수퍼 리치가 되는 것이다. 그는 (위대한 러시아 재건을 부르짖고 있지만) 결코 표트르 대제(1세)가 아니다.”

표트르 1세는 17~18세기 러시아 황제다. 그 시절 서유럽보다 뒤떨어진 러시아를 위에서부터 근대화했다. 러시아 해군을 창설해 당시 강국인 스웨덴을 굴복시켜 서유럽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해 협상 가능한 인물일까.
“푸틴은 그릇이 작은 인간이다. 세계 정복을 꿈꿀 만한 인물이 아니란 얘기다. 푸틴의 야망은 크지 않다. (서방이) 들어주기 어렵지 않다. 우크라이나의 비극을 끝낼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이다.”
양쪽 협상이 시작될 계기가 있을까.
“우크라이나의 현재 상황을 보면 어느 한쪽이 군사적으로 승리하기 어려운 단계로 가고 있다. 우크라이나(서방)나 러시아 모두 조만간 한계에 이를 수밖에 없다. 멀지 않았다. 결국 외교적 협상이 시작된다. 서유럽과 러시아는 에너지와 경제를 위해 서로 기댈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을 양쪽이 하루라도 빨리 깨달아 비인간적인 전쟁을 끝내길 소망한다.”

◆노엄 촘스키=세계적인 언어학자다. 비판적 지식인으로 유명하다. 1928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 2세로 태어났다.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8년(30세) MIT 부교수, 1961년(33세) 종신교수가 됐다. 20세기 언어학을 혁명적으로 바꿔놓은 ‘변형생성문법 이론’의 창시자다. 유대계이면서도 이스라엘과 미국의 패권외교 등을 비판해 왔다.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문명은 지금의 자본주의를 견뎌 낼 수 있을까』 『세계는 들끓는다』 등이 번역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