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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찬호 논설위원이 간다

“가결 불가피” “부결과 대표직 맞교환” 줄다리기 한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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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재명 체포동의안 D-5, 빨라지는 비명계 움직임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27일)이 임박하며 비명(비이재명)계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이에 맞서 이 대표와 친명계는 체포동의안 부결을 밀어붙이며 ‘당권 수호’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재명 사법리스크’를 둘러싸고 가속화하는 양측의 공방전을 들여다본다.

이낙연, 체포동의 입장 밝힐까

지난해 6월 이래 미국 워싱턴에 머물고 있는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22일(한국시간) 방문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조지 워싱턴대에서 남북관계를 주제로 강연한다. 방미 이래 첫 공개강연인 데다 한국 특파원단도 참석할 예정이라 관심이 쏠린다. 강연 뒤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이 나올 게 뻔하기 때문이다. 워싱턴에서 지내면서 특파원들과 자주 만나고, 서울발 뉴스를 매일 접하며 상황을 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 전 대표도 이런 질문을 예상해 ‘답변 수위’를 저울질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엔 부결” 의견 우세한 가운데
“가결 찬성 30명 육박”설도 상당해
이재명-비명계 회동서 ‘딜’ 가능성
친명, 6월 귀국 이낙연 견제에 총력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 끝)이 지난 16일 이낙연계 싱크탱크 ‘연대와공생(연공)’이 여의도 한 식당에서 주최한 강연회에서 “적극 투쟁해 표 얻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했다. 이 자리엔 최운열 전 민주당 의원과 남평오 연공 운영위원장 등 이낙연계 인사 수십 명이 참석했다. [연합뉴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 끝)이 지난 16일 이낙연계 싱크탱크 ‘연대와공생(연공)’이 여의도 한 식당에서 주최한 강연회에서 “적극 투쟁해 표 얻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했다. 이 자리엔 최운열 전 민주당 의원과 남평오 연공 운영위원장 등 이낙연계 인사 수십 명이 참석했다. [연합뉴스]

이 대표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된 16일, 이 전 대표의 싱크탱크 ‘연대와 공생’이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강연회를 연 것도 눈길을 끌었다. 주최측은 “한 달 전부터 기획된 행사”라고 했고, 이낙연계 현역 의원들도 전원 불참해 친명계 자극을 피하려 했으나 김 전 위원장이 “민주당과 이재명의 동일시는 옳지 않다. 사법리스크는 개인 문제”라며 이 대표를 비판하면서 주목도는 되레 커졌다.

강연 사실이 전날 중앙일보 보도로 알려지자 이낙연계 의원들은 워싱턴에 있는 이 전 대표에게 전화해 “불필요한 오해는 차단해야 한다”는 뜻을 전했으며, 이 전 대표도 행사 당일 주최 측에 문자를 보내 상황을 묻는 등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주최 측 소식통은 “친명계 6~7명이 행사 뒤 전화를 걸어왔길래 ‘김종인 위원장이 당과 이재명은 분리돼야 한다고 얘기했다’고 전하니 ‘잘 알았다’고 반응하더라”며 “행사에 취재진이 몰리고 참석자도 50명이 넘는 등 이낙연의 존재감이 확인됐다. 앞으로도 금태섭 전 의원 등 중도 인사를 초청해 한 달에 한 번씩은 행사를 할 것”이라고 했다.

이 전 대표는 그동안 애틀랜타·시애틀 등 미 전역을 돌며 강연과 간담회를 했으며, 한국의 외교·안보를 주제로 책을 저술 중인데 제목과 윤곽은 4~5월께 나올 것이라고 한다. 그는 비자가 만료되는 6월 초 귀국이 예정돼 있었으나, 독일 등을 들러 복지 모델을 시찰하고 귀국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며, 이 경우 귀국 시점은 6월 말로 예상된다고 측근들이 전했다.

체포동의안 ‘가결·부결’ 공방

이재명

이재명

이 대표 체포동의안에 대해 비명계도 “부결이 우세하다”고 전망한다. 가결되려면 민주당(169석)에서 이탈표가 최소 28표 나와야 하는데, 무리하게 가결을 시도했다가 당을 분열시켰다는 책임론에 휩싸일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란 지적이다. 그러나 이낙연계 중진 의원은 “가결에 내심 찬성하는 의원이 30명은 된다. 또 일단은 부결시키더라도 대북 송금 등의 혐의로 두 번째 체포동의안이 상정되면 가결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고 했다.

비명계의 또 다른 중진 의원은 “첫 번째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면 친명계 힘이 커져 차후를 도모할 수 없으니 이번에 가결해야 한다는 의견도 상당하다”며 “이 대표와 금주 만나 ‘비명계가 부결에 동의해줄 테니 부결 결과를 명분으로 대표직을 사퇴하라’는 제안을 할 생각도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이낙연계 중진 의원은 “이 대표의 체포나 구속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일단 이 대표가 기소되면 형사공판을 받게 돼 매번 법정에 출석해야 하고 공판 내용이 샅샅이 중계돼 큰 내상을 입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 대표 퇴진론은 갈수록 힘을 얻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재명 대표도 비명계 이탈을 막기 위해 설훈(5선)·이원욱·전해철(3선), 기동민·김종민(재선) 의원 등을 1대1로 만난 데 이어 이번 주엔 이상민·홍영표 등 비명계 중진 의원들을 만날 예정이다. 민주당 소식통은 “이 대표와 40분간 식사를 겸해 만난 한 의원에 따르면 이 대표는 ‘난 죄 없고 결백하다. 똘똘 뭉쳐 일하자’면서 ‘내년 총선 공천은 시스템으로 이뤄지니 불이익이 없을 것’이란 취지로 얘기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는 “체포동의안 부결해 달라고 대놓고 얘기 한 것은 아니지만 말 뜻이 뻔한 것 아니냐. ‘부결시켜 주면 공천 불이익 없다’고 회유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자신의 당권 유지를 전제로 한 얘기라 듣는 비명계 의원 입장에선 불쾌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다른 비명계 의원은 “8월이 마지노선일 것이다. 이 대표가 그때까지 당권을 내려놓지 않으면 분당의 기로에 설 수 있다. 또 하락 추세인 지지율이 20% 밑으로 떨어지면  총선에서 수도권은 전멸하고, 호남도 흔들리게 돼 당내에 이 대표 퇴진론이 급물살을 탈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의 ‘당권방어’ 열쇠 3개

이에 맞선 이 대표 측의 ‘당권 방어’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민주당은 지난달 31일, 윤리심판원장에 친명계로 분류되는 위철환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을 내정했다. 윤리심판원장은 당직자가 기소됐을 때 당직 유지 여부를 판단하는 데 키를 쥐고 있다. 또 내년 총선 공천을 앞두고 현역 의원 평가를 맡는 선출직 공직자평가위원회 위원장에 송기도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를 임명했다. 송 교수는 2021년 이재명 대권 후보 지지모임인 ‘전북정책포럼’ 상임대표를 맡은 친명계 인사다.

비명계 중진 의원은 “언론이 주목을 안 하는데, 두 사람 자리는 이 대표의 당권과 공천권 방어에 큰 역할을 하는 자리”라며 “이를 두고 의원총회에서 비명계 의원들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유야무야 넘어갔다”고 말했다. 그는 “친명 강경 초선 모임 ‘처럼회’ 소속 양이원영 의원과 이재명 캠프 대변인 출신 현근택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이낙연계 양기대(광명을)·윤영찬(성남중원) 의원의 지역구를 공략하는 등 이낙연계를 치기 위한 ‘자객공천’ 움직임도 거세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 대표는 이처럼 공천권 과시와 함께 호남의 지지층이 이탈하거나 이낙연에게 이동하는 것을 막기 위해 ‘박지원 카드’를 적극 활용 중”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올초 정청래 의원 등 친명 측근의 반발을 무릅쓰고 박지원 전 국정원장을 복당시켜줬다.

비명계 중진 의원은 “그 뒤 박 전 원장의 발언을 보면 ‘이낙연이 DJ(김대중)냐. 미국 간 것부터 잘못됐다’는 등 이낙연 비난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고 했다.

이와 함께 ‘개딸’ 등 강성 지지층의 팬덤 정치도 이 대표의 당권 방어에 중요한 수단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그는 “개딸들이 디시인사이드 등 디지털 공간에서 ‘이낙연이 대장동 의혹을 제기한 탓에 이재명이 대선에서 졌다’ ‘이낙연이 미국으로 도망갔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도 실은 친한 사이가 아니다’며 이낙연 책임론과 악마화 논리를 유포하고 있다”고 했다. ‘개딸’을 자처하는 20대 중후반 여성 3명은 최근 이낙연계 핵심 설훈 의원의 국회 사무실을 찾아가 “왜 이재명에게 반대하냐”고 항의했다가 설 의원의 논리적 설명에 설득돼 돌아갈 땐 설 의원 지지층이 됐다는 전언도 나왔다.

이낙연계 “대선 패배는 이재명 탓”

이낙연계 중진 의원은 “이재명 성남시장의 전횡으로 엄청난 손해를 본 대장동 원주민들이 2021년 7월 이낙연 캠프에 어른 한 팔 두께의 문건을 들고 와 읍소했다. 그 뒤 8월 말 언론이 ‘대장동 게이트’라며 이 문제를 폭로했기에 이후 후보 간 토론에서 문제를 제기한 것뿐”이라며 “국민이 호소하는 고통과 의혹을 정치인이 눈감는다면 정치할 이유가 뭐냐. 대선에서 이재명이 진 건 이재명 탓”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사이가 좋지 않은 정치인도 이낙연 아닌 이재명”이라며 “2018년 이재명이 경기지사로 당선된 뒤 문재인 대통령은 2~3주에 한 번씩 그를 국무회의에 참석시켰는데, 이 지사가 발언할 때마다 눈을 감았다고 한다. 다른 지자체장이 얘기할 때는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한 것과 대조됐다. 2017년 대선 경선 때 겨룬 앙금 등으로 감정이 좋지 않았다는 증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