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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아이돌 사랑받는 비결…감정 이입할 스토리 입혀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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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다양한 가상 아이돌이 등장하고 있다. 가상 아이돌 서바이벌 예능 ‘소녀 리버스’는 재데뷔를 꿈꾸는 소녀들의 서사가 몰입감 있고, 지난달 데뷔한 ‘메이브’(아래)는 진짜 사람 같은 비주얼이 강점이다. [사진 카카오엔터]

다양한 가상 아이돌이 등장하고 있다. 가상 아이돌 서바이벌 예능 ‘소녀 리버스’는 재데뷔를 꿈꾸는 소녀들의 서사가 몰입감 있고, 지난달 데뷔한 ‘메이브’(아래)는 진짜 사람 같은 비주얼이 강점이다. [사진 카카오엔터]

“펭수야, 쪼개지마~”

서바이벌 예능에 출연한 한 걸그룹 멤버가 사회자로 나선 인기 캐릭터 ‘펭수’를 향해 던진 말이다. 자신이 사전 평가에서 최하위 등급에 배정되자 애꿎은 화풀이를 사회자를 향해 한 것이다. 하위 등급을 받은 또 다른 출연자는 “아, 기분 나빠”라 소리치며 아예 촬영장 밖으로 탈주한다.

이게 과연 진짜일까 싶지만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지난달부터 선보이고 있는 서바이벌 예능 ‘소녀 리버스’ 1화에 담긴 실제 장면들이다. 아이돌에게 예의 바른 태도는 필수라 여겨지는데, 어떻게 이런 황당하리만치 솔직한 모습들이 나올 수 있었을까.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기획, 제작한 버추얼 걸그룹 데뷔 서바이벌 예능 ‘소녀리버스’. [사진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기획, 제작한 버추얼 걸그룹 데뷔 서바이벌 예능 ‘소녀리버스’. [사진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소녀 리버스’가 현실이 아닌 가상 세계를 기반으로 한 서바이벌 예능이기 때문이다. 실제 K팝 걸그룹 멤버 30명이 출연하지만, 이들은 모두 가상현실(VR) 기기를 통해 가상공간에 접속, 직접 선택한 2D 캐릭터의 모습으로 촬영에 임한다. 각종 대결을 거친 끝에 내달 6일 발표되는 최종 생존자 5인은 새로운 버추얼 아이돌로 데뷔하게 된다.

그간 메타버스와 아바타를 활용한 음악 예능은 꾸준히 등장했지만, VR 기술을 아이돌 서바이벌 형식에 접목한 건 ‘소녀 리버스’가 처음이다. 실제 외모와 성격이 드러나지 않는 가상 세계이기에 걸그룹 멤버들은 평소 제약을 벗어나 위와 같은 거침없고 철부지 같은 매력도 여과 없이 뽐낼 수 있다.

공개 전만 해도 생소한 시도에 반신반의하던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도 “진솔한 매력을 볼 수 있다”는 호평이 주를 이루며, 캐릭터들이 탈락할 때마다 안타까워하는 반응이 쏟아진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29일 한국의 메타버스 콘텐트를 소개하는 기사에서 ‘소녀 리버스’를 주요 사례로 다루며 “한국이 보여주는 메타버스 엔터테인먼트의 미래”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사실 ‘소녀 리버스’는 버추얼 아이돌이 대형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기획·제작으로 양지에 올라온 첫 사례일 뿐, 이미 온라인에서는 여러 버추얼 아이돌들이 활동 중이다.

국내 최초 버추얼 아이돌로 꼽히는 6인조 걸그룹 ‘이세계 아이돌’(이세돌)은 2021년 발매한 데뷔곡 ‘리와인드(RE:WIND)’로 벅스 실시간 음원차트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 있다. 4인조 보이그룹 ‘레볼루션 하트’는 지난해 10월 버추얼 아이돌 최초로 극장에서 쇼케이스를 개최, 예매 시작 3분 만에 1100여석을 매진시키기도 했다.

다양한 가상 아이돌이 등장하고 있다. 가상 아이돌 서바이벌 예능 ‘소녀 리버스’(위)는 재데뷔를 꿈꾸는 소녀들의 서사가 몰입감 있고, 지난달 데뷔한 ‘메이브’는 진짜 사람 같은 비주얼이 강점이다. [사진 카카오엔터]

다양한 가상 아이돌이 등장하고 있다. 가상 아이돌 서바이벌 예능 ‘소녀 리버스’(위)는 재데뷔를 꿈꾸는 소녀들의 서사가 몰입감 있고, 지난달 데뷔한 ‘메이브’는 진짜 사람 같은 비주얼이 강점이다. [사진 카카오엔터]

이런 성과는 아직 가상 인간이 낯선 이들에게는 의아하게 들릴 수 있다. 로지·한유아·김래아 등 최근 2년 사이 쏟아져 나온 버추얼 인플루언서들을 향해 여전히 ‘불쾌한 골짜기’(가상 인간의 유사성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오히려 거부감이 드는 현상)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또 방송사에서 큰돈을 들여 제작한 ‘아바타 싱어’(MBN), ‘아바드림’(TV조선) 등의 메타버스 음악쇼들도 1%대 시청률을 벗어나지 못하며 외면받았다.

언뜻 보면 전부 비슷해 보이는 가상 인간들의 성패가 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외적 생김새가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서사가 얼마나 몰입감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는 분석이다.

메이브

메이브

메타버스 전문가인 김상균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우리가 소설 속 인물들에 쉽게 동화되듯이, 감정 이입할 수 있는 스토리가 있어야 버추얼 캐릭터도 사랑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금까지 팬덤을 이루는 데 성공한 버추얼 아이돌들은 진정성 있는 서사를 바탕으로 팬들과 유대감을 형성했다. 이세돌은 트위치 스트리머이자 유튜버인 우왁굳이 구독자들을 대상으로 소박하게 시작한 오디션 콘텐트가 인기를 끌면서 자연스럽게 팬들이 모였다.

레볼루션 하트도 처음에는 자발적으로 뭉친 버추얼 유튜버들에 불과했지만, 멤버마다 캐릭터를 구축하며 10대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앞으로 버추얼 아이돌은 더욱 정교해질 전망이다. VR, 인공지능(AI) 기술을 보유한 IT 기업과 콘텐트 회사들이 가상 아이돌 제작에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외모가 실제 사람과 유사해져도 팬들을 몰입시킬 내러티브 구축에 실패한다면 버추얼 아이돌의 지속 가능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김 교수는 “실존 인물의 정체성이 반영되지 않은 버추얼 아이돌의 경우 제작사가 일상 속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구축하고, 팬들과의 접점을 유지해야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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