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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동성커플도 건보 피부양자 자격 인정…1심 뒤집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주문. 1심 판결을 취소한다. 피고 건강보험공단이 원고 소성욱씨에 대해 한 보험료 부과처분을 취소한다. 소송 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21일 오전 10시 서울고등법원 제1별관 대법정. 행정1-3부(부장 이승한·심준보·김종호)는 ‘동성결합’에도 부부와 같은 권리를 인정한 국내 첫 판결을 내놨다. 세 문장으로 끝난 선고에 소성욱씨와 그의 남편 김용민씨는 어리둥절해 했다. 함께 온 이호림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네트워크 활동가가 뒤에서 달려와 “이겼어, 우리가 이긴 거야” 하니 그제야 눈물을 터뜨렸다.

이날 판결이 민법상 부부 개념에 동성도 포함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 소송은 소씨가 건보공단을 상대로 보험료 부과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낸 것이다. 건보공단은 사실혼 관계의 배우자에 대해서도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등록해 보험료를 내지 않고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같은 논리로 소씨도 직장가입자인 김씨의 피부양자로 등록해줘야 한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소씨 부부를 사실혼 관계로 인정해서가 아니라, 사실혼에 비해 동성결합을 차별하면 안 된다는 이유로 이 같은 판결을 내렸다. 판결문에는 ‘동성 부부’나 ‘동성 사실혼 배우자’란 표현 대신 ‘동성결합’이라는 말을 썼다. “아직 동성 간 혼인 또는 사실혼이 인정되지 않는 현행법 하에서 이런 표현은 개념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으므로, 동성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사실혼과 같은 생활공동체 관계를 동성결합이라 부르기로 한다”는 설명이다.

재판부는 본질적으로 평등의 원칙을 지켜야 하는데, 건보공단이 같은 집단에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대우’를 했다고 봤다. “사실혼 배우자 집단과 동성결합 상대방 집단은 성적 지향에 따라 상대방이 이성인지 동성인지만 달리할 뿐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이라는 판단이다.

2019년 5월 김씨와 결혼한 소씨는 2020년 2월 건보에 동성 커플임을 밝히고 피부양자 자격을 얻었다. 그러나 건보가 그해 10월 “착오 처리로 소씨를 피부양자 등록했다”며 소씨의 자격을 소급해 없애고 지역가입자로 바꿔놓자 소송을 냈다. 지난해 1심은 “아직 입법이 없는 상태에서 해석만으로 혼인의 의미를 동성 간 결합에까지 확대할 수 없다”며 건보의 손을 들어줬다.

이날 소씨는 “오늘 사법부의 판단은 남편을 사랑하는 이 마음이 저주당할 것이 아니라는 걸 말해주는 것 같아 정말로 기쁘다”고 말했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내부 입장을 정리 중이며, 상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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