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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면 못 봐도 월 700만원"…기상천외한 건설노조 불법행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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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6시면 노조원 40여명이 공사장 정문을 차단하고, 모든 사람의 신분증을 검사합니다. 외국인은 합법 노동자라도 겁먹고 다 도망가죠. 드론 띄워서 쉬는 시간에 담배 피우거나 안전모 벗은 인부들 사진 찍고요. 사법경찰이나 다름 없어요.”

지난 8일 만난 건설업체 A사 임원은 연신 한숨을 쉬었다. A사는 전국 건설현장 10여곳을 책임지는 하도급사다. A사가 공개한 지난해 3~4월 경기 고양시 일대 공사장의 노조 피해 일지는 ‘월화수목금토’ 내내 집회·태업·무단출입 기록으로 빼곡했다. 이 임원은 “채용 강요나 금품 요구에 쓸 협박거리 하나만 걸리란 식”이라며 “공사 기간과 금액을 맞춰야만 하는 하도급사의 약점을 이용한다”고 토로했다. A사의 2~3월 예상 피해액은 인건비 손실, 업무방해로 인한 공정지연 등을 합쳐 약 16억원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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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경찰청·국토교통부 등 관계부처는 ‘범정부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 근절대책’을 발표했다. 정부 차원에서 건설현장 불법 행위에 대해 전방위적 단속·수사에 나서면서, 그간 현장에서 쉬쉬했던 황당한 피해 사례들도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대표적인 게 채용 강요다. 한 예로 민주노총 건설노조 경기중서부지부가 요구한 조합원 고용률은 직종별로 70~100%에 달했다. 전국 25개 현장을 관리하는 B하도급사 이사는 “공사 첫날 망치 한 번 안 들어본 노조원들이 우르르 몰려와 ‘이제부터 같이 일하라’고 선언한다”며 “직함은 목수팀장, 철근팀장인데 도면도 못 보면서 월 700만원씩 가져간다”고 호소했다. A사 임원은 “비노조원이나 외국인 근로자만큼 생산성이 나면 아무 문제 없다”며 “작업 효율성이 절반인데 채용 안 하면 집회, 태업 등으로 괴롭히니 미치겠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민주노총 건설노조 경기중서부건설지부가 건설사 대표들에게 현장 내 조합원 채용률을 50~100%로 요구한 공문. 사진 대한전문건설협회

지난해 10월 민주노총 건설노조 경기중서부건설지부가 건설사 대표들에게 현장 내 조합원 채용률을 50~100%로 요구한 공문. 사진 대한전문건설협회

2021년 경기 양주시에선 건설업체가 채용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레미콘 차량 통행로에 동전 수천 개를 뿌리고 하나하나 천천히 주워가며 공사를 방해한 기상천외한 사례도 있었다. 이들은 증거 인멸을 위해 집회 당시 사용한 무전기 어플을 삭제키도 했다. 이 사건으로 민주노총 간부 2명이 지난달 구속됐다. 강성주 전문건설협회 노동정책팀장은 “집회시위법상 소음 기준(10분)에 맞춰 심야에 장송곡과 노동가를 9분씩 틀었다 껐다 하며 주민 민원을 유발하는 경우도 빈번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22일 경기도 소재 한 공사현장에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공사 차량의 통행을 방해하고 있다. [사진 제보자]

지난해 3월 22일 경기도 소재 한 공사현장에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공사 차량의 통행을 방해하고 있다. [사진 제보자]

현장의 ‘노노 갈등’이 유혈 사태로 번진 경우도 많다. 지난해 3월 경기 안양시에선 현장 입구를 막아선 민주노총 조합원과 진입하려는 한국노총 조합원 사이에서 채용 경쟁을 두고 몸싸움이 벌어졌다. 두 노조는 특수폭행 및 공동상해 혐의로 상대 조합원 3~4명을 경찰에 맞고소했다. 인천 청라에선 2021년 한국노총 건설산업노조(현재는 한국노총서 제명) 700여명이 현장 민주노총 조합원 십수 명을 ‘집단 린치’한 사건도 있었다. 당시 민주노총은 “머리를 맞고 기절해 119에 실려가거나, 임플란트 시술 중이던 조합원이 치아가 다 상해 피를 철철 흘리는 등 8명이 병원 신세를 졌다”고 말했다.

채용 강요, 집회·태업 등으로 인한 피해는 결국 공사 지연과 이에 따른 금전적 손실로 귀결된다. 특히 노조와 원청 사이에 낀 하도급사에 피해가 몰린다. 성남 대장동 일대 아파트 공사를 맡았던 C하도급사는 약 79억원의 손실 감당이 어려워지자 공사를 포기했다. D하도급사는 양주 공사 현장에서 노조원 과투입(53억원), 무노동자 임금(6억5000만원) 등으로 1년간 약 72억원을 손해봤다. D사 관계자는 “양주 현장에서 근무하던 30년 넘게 근속한 임원이 ‘노조 때문에 너무 힘들다’며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가까스로 살아난 적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건설노조의 불법행위는 2017년부터 급격히 늘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박광배 건설정책연구원 박사는 “5~6년 전쯤 전국에서 아파트 공사가 활성화되면서 합법·불법을 막론하고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건설현장이 버틸 수 없게 됐다”며 “불법 외국인 단속을 빌미로 노조들이 영향력을 키워나갔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시기 양대노총 건설노조 조합원 수도 11만2500명(2016년)→24만9500명(2020년)→28만6515명(2022년) 등으로 급증했다.

A사 임원이 지난 2~3년간 받은 노조 간부들의 명함. 이 임원은 “같은 사람이 다른 노조 명함을 들고 온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사진 A사]

A사 임원이 지난 2~3년간 받은 노조 간부들의 명함. 이 임원은 “같은 사람이 다른 노조 명함을 들고 온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사진 A사]

고용노동부가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7~2023년 신규 설립된 건설 관련 노조도 157개에 달했다. 박광배 박사는 “군소 노조가 무분별하게 난립하면 조합원 영입 경쟁이 생기고, 이 비용이 건설업체에 전가된다”며 “건설업 특성상 발생하는 분진·미세먼지 등 환경법, 안전모 미착용 등 산업안전법, 외국인 고용법 위반 등을 빌미로 공사를 방해하기 때문에 업체는 요구를 들어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경찰은 지난해 12월부터 오는 6월까지 200일간 전국 건설노조 불법행위를 특별단속하고 있다. 지난 17일 기준 1648명(400건)을 입건해 63명을 검찰에 송치했고, 1535명을 수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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