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대한항공은 ‘왜 올해 상반기’를 택했나‧‧‧마일리지, 택일의 경제학

중앙일보

입력

대한항공의 항공 마일리지 개편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21일 항공 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 측은 일단 올해 안에 마일리지를 새로 개편한다는 계획을 사실상 접은 상태다. 내부적으로는 아예 새로운 안을 만들겠다는 분위기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별도로 대한항공은 지난 20일 역대 최대인 총 2771억원 규모의 주주 배당을 결정하는 등 여론 달래기에 나섰다.

지난 19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 출국장 전광판에 대한항공의 회원 마일리지 등급인 스카이패스가 안내되고 있다. [뉴스1]

지난 19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 출국장 전광판에 대한항공의 회원 마일리지 등급인 스카이패스가 안내되고 있다. [뉴스1]

사실 대한항공으로선 마일리지 개편은 미룰 수 없는 숙제다. 항공사가 제공하는 누적 마일리지는 재무제표상 ‘이연수익’으로 일종의 부채다. 지난해 3분기(연결 기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이연수익은 각각 2조6830억원, 9338억원이었다. 양사를 합치면 3조6168억원이다. 대한항공으로선 재무 건전성 강화 등을 위해 부채를 털어낼 필요가 있다. 실제 이번 마일리지 개편안은 2019년 마련됐다가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인해 미뤄진 것이다.

기업들 ‘올해가 적기다’ 판단 

문제는 시기다. 대한항공이 올해 마일리지 개편을 밀어붙인 건 ‘더 늦어지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때문으로 업계는 풀이한다.

항공 업계는 지난해 코로나19 충격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매출 13조4127억원, 순이익 1조9976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보다 각각 53%, 170% 늘었다. 체력이 든든해진 만큼 마일리지 개편 등에 따른 대규모 비용을 감당하겠다는 판단이었다.

여기에 올해 경제성장률은 1%대에 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한항공 역시 올해 실적이 지난해보다 나아진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그런 만큼 ‘무엇인가 하려면 올 상반기에’라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익명을 원한 항공 업계 관계자는 이날 “순식간에 매출과 영업이익이 반토막 났던 코로나19 당시의 경험은 업계 전반에 큰 상처로 남았다”며 “외부에 보이는 것과 다르게, 대한항공으로선 마일리지 개편이라는 근본적인 변화를 준비하기엔 올해가 적기였던 셈”이라고 설명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원가는 물론 서비스 비용까지 상승하기 때문에 물가가 오르는 구조적인 특징이 있다”며 “항공 업계도 서비스 비용 상승이나 원자재 가격 상승에 대한 압박을 받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소비자에 부담 떠넘기는 방식은 문제

사실 대한항공뿐 아니라 다른 업계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감지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초 대규모로 제품 가격을 올렸던 식품 업계가 대표적이다. 식품 업계는 사실 다른 곳보다 코로나19 타격이 작았던 곳으로 여겨진다. 지난해 ‘연매출 3조원’을 돌파한 기업 8곳으로 전년(4곳)보다 크게 늘었다.

하지만 수익성 개선에 대한 의문은 끊이지 않는다. 실제 매출 3조원 고지를 넘긴 기업 8곳 중 식품 부문만 따져 5% 이상의 영업이익을 거둔 곳은 CJ제일제당(5.5%)과 오뚜기(5.8%) 두 곳에 그친다. 그런 만큼 선제적으로 제품값을 올리는 게 더 유리할 것이란 판단이었단 얘기다.

최근 5대 시중은행에서만 2200여 명의 희망퇴직을 받은 금융권도 비슷한 속내다. 지난해 거둔 실적을 바탕으로 불확실성에 대비하겠다는 포석이다.

그런데 결국 부담을 떠안는 게 최종 소비자라는 게 더 큰 문제다. 사실상 과점 상태인 국내 산업 구조도 기업의 일방통행식 가격 인상이나 서비스 축소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정광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거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개별 기업들의 경영상 선택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여기서 파생되는 부담을 소비자에게만 전가하는 건 분명한 문제”라며 “정부도 무조건 시장에 개입하기보다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기업과 시장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패턴을 바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