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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게 분양하며 "소송 않는다" 합의했어도…法 "임대주택법 기준 초과면 무효"

중앙일보

입력

서울의 한 고층 빌딩에서 내려다 보이는 아파트들.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 연합뉴스

서울의 한 고층 빌딩에서 내려다 보이는 아파트들.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 연합뉴스

‘위 합의사항은 본인의 자유의사로 충분히 확인 후 서명하였음을 확인합니다.’

2013년 11월 전북 완주군의 두 동짜리 아파트. 입주민과 시공사 동광종합토건은 64㎡(구 19평형)는 4257만원, 77.76㎡(구 23평형)는 5239만원에 분양하기로 하고 합의서를 작성했다. 합의서엔 분양가에 대한 민사 소송이나 형사 고소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런 합의서까지 작성하게 된 건 분양가를 두고 이미 다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공임대주택으로 지어진 이 아파트는 임대 의무기간을 채운 뒤 분양전환을 하려던 참이었다.

동광토건은 완주군에 분양전환 승인을 신청하며 64㎡는 4309만원, 77.76㎡는 5290만원에 내놓겠다고 했다. 입주민들은 분양대책위원회를 구성해 군에 민원을 넣었지만 이와 비슷한 금액(1~2만원 차이)에 승인이 났다. 동광토건은 이 승인 금액보다 50만원씩을 낮춰 주겠다며 위 합의서를 쓰자고 했고 많은 입주민이 서명했다.

그런데 입주민들은 나중에서야 이 가격이 법이 정한 것보다 높은 가격이란 걸 알게 됐다. 구 임대주택법 시행규칙에 따라 분양전환 가격을 산정할 때 건축비 상한선이 기준이 된다. 이때 건축비를 표준건축비로 본 적도 있지만, 2011년에 “실제 투입된 건축비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이 아파트 분양가를 산정할 때 실제 건축비를 기준으로 했다면 분양전환가격은 64㎡에 3181만원, 77.76㎡에 3866만원이어야 했다. 하지만 동광토건이 각각 1075만과 1372만 원씩을 더 받아갔단 게 입주민들의 주장이다.

초과액만큼을 돌려달라며 전체 209세대 중 132세대가 소송에 나섰지만, 하급심에선 소송 자체를 걸 수 없다며 각하 당했다. 1심은 “이미 일절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한다는 합의를 했으니 권리 보호의 이익이 없다”고 했다(전주지법 2017년 8월 선고). 항소심에선 “입주민들은 분양대책위를 구성해 동광토건과 가격협상을 한 끝에 감정평가금액보다 700만 원 이상 낮은 금액에 분양계약을 체결했고, 합의서를 동광토건이 강요한 것도 아니다”며 마찬가지로 동광토건의 손을 들어줬다(광주고법 2018년 7월 선고).

반전은 대법원에서 벌어졌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지난 2일 “분양전환가격이 구 임대주택법 등 관련 법령에서 정한 산정기준에 따른 금액을 초과하였다면 초과분은 무효”라며 기존 판결을 깨고 판결을 다시 하라고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입주민들을 대리해온 윤정수 변호사는 “강행법규는 임의법규와 달리 반드시 법에 나온 요건대로 처리해야지 당사자 간 합의로 그 내용을 변경할 수 없는 것”이라며 “무주택 서민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주택을 공급하기 위한 복지국가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 구 임대주택법의 제정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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