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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키이우 007작전…콜사인 바꾸고, 추적 피해 응답기 껐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일 우크라이나 키이우 성 미카엘 성당 앞을 거닐고 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일 우크라이나 키이우 성 미카엘 성당 앞을 거닐고 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주년(24일)을 앞둔 20일(현지시간) 철통 같은 보안 속에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전격 방문했다. 전투가 활발히 벌어지고 있는 전장에, 더구나 미군 병력이 주둔하지 않는 곳에 미국 대통령이 발을 디딘 것은 이례적이라고 백악관은 밝혔다.

바이든, 비행기·밤기차 타고 22시간 #충돌 피하려 출발 전 러시아에 통보 #"골프장 도착 안내" 이메일 받고 집결

바이든 대통령이 위험을 감수하고 키이우행을 결정한 것은 자유로운 우크라이나 땅을 밟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나란히 선 모습을 전 세계에 보이기 위해서였다. 워싱턴에서 출발해 22시간 걸려 도착한 키이우에서의 5시간에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을 결속하고 우크라이나의 전쟁 승리에 대한 염원을 담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깜짝 방문해 마린스키궁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부인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깜짝 방문해 마린스키궁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부인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출발 이틀 전 최종 결정…러시아에도 알렸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온라인 브리핑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키이우 방문은 여러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고 전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바이든 대통령은) 키이우를 방문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지속적인 지원에 대한 명확하고 틀림없는 메시지,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고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는 국제사회와 서방의 명확하고 틀림없는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또한 자유로운 키이우에서 젤렌스키 대통령 옆에 서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략에 성공적으로 저항하고 있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전략적 실패를 겪고 있다는 것을 강력한 실증을 통해 전 세계에 말하는 대신 보여주길 원했다"고 강조했다. 브리핑은 바이든 대통령이 키이우를 떠난 직후 열렸다.

바이든 대통령의 키이우행은 준비단계부터 삼엄한 보안이 유지됐다. 백악관은 수개월 동안 준비해왔으며, 최종 결정은 출국 이틀 전인 지난 17일 바이든 대통령을 포함해 국방부, 정보기관 등 국가안보 관련 극소수 인사들이 모인 가운데 이뤄졌다고 밝혔다.

존 파이너 백악관 국가안보부보좌관은"각 기관에서 손에 꼽을 수 있는 사람만 안전 작전을 위한 계획에 관여했다"면서 "대통령은 단계별 계획과 비상상황 발생 가능성 등에 대해 충분히 보고받은 뒤 방문 여부에 대해 최종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을 러시아에 알렸느냐는 질문에 설리번 보좌관은 "우리는 러시아인들에게 바이든 대통령이 키이우를 방문할 것이라고 통보했다"면서 "우리는 출발 몇 시간 전에 충돌을 피하기 위해(de-confliction) 그렇게 했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 키이우에 기차를 타고 도착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 키이우에 기차를 타고 도착했다. 로이터=연합뉴스

"폴란드만 간다" 연막…비행기+기차 22시간

백악관은 사전 브리핑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폴란드만 방문한다고 거듭 강조하면서 연막을 피웠다. 백악관은 전날 저녁 배포한 폴란드 일정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20일 오후 7시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출발해 바르샤바로 비행할 계획이라고 공지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이보다 약 33시간 전인 19일 오전 3시 30분께 백악관을 출발해 우크라이나 방문 길에 오른 상태였다.

바이든 대통령을 태운 비행기는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오전 4시 15분 이륙했다. AP통신은 바이든 대통령이 보잉 747을 개조한 에어포스원 대신 크기가 작은 보잉 757기를 개조한 공군 C-32기를 사용했다고 전했다. 항공기 콜사인은 '에어포스원' 대신 'SAM 060'을 사용했다. '스페셜 에어 미션'(Special Air Mission·특별공중임무)'의 머리글자를 딴 SAM은 행정부 고위 인사를 태운 항공기에 사용한다.

전용기는 독일 람슈타인 공군기지에서 급유한 뒤 폴란드에 들어갔다. 전용기가 람스타인 기지에서 폴란드 남서부 제슈프까지 비행하는 약 1시간 반 동안은 추적을 피해기 위해 무선 응답기(트랜스폰더)도 껐다고 한다.

풀기자 2명 "골프장 도착 안내" 메일 받고 집결 

바이든 대통령은 폴란드 남동부 프셰미실역에서 키이우까지는 기차로 이동했다. 오후 9시 15분에 출발해 대략 10시간 정도 소요됐다. 기차에는 침대칸이 마련됐으며 보안요원들로 가득했다고 풀 기자단은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전용기를 타고 이동한 인원은 소수다. 설리번 보좌관, 파이너 부보좌관, 케이트 베딩필드 백악관 공보국장이 탑승했다. 대통령 취재에 동행하는 백악관 풀기자단은 통상 인원(13명)보다 적은 2명만 탔다.

선발된 2명의 풀 기자는 17일 통보받고 비밀유지를 서약했다. 출발 약 13시간 전 이메일을 통해 집결 장소와 시간을 전달받았다. 이메일 제목은 "골프 토너먼트 도착 안내"였다고 풀 기자단은 전했다.

19일 오전 4시 15분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전용기는 기내 모든 창문을 내린 채 앤드루스 공군기지를 이륙했다. 출발 전 보안요원에게 제출한 휴대전화 등 전자기기는 키이우에서 마지막 일정인 미국 대사관에서 돌려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24시간이 훨씬 지나서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일 키이우 시내 성 미카엘 성당 앞을 거닐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일 키이우 시내 성 미카엘 성당 앞을 거닐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5시간 체류…자유로운 키이우 거닌 두 정상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오전 8시 우크라이나 국기를 상징하는 노란색과 파란색 줄무늬 넥타이를 매고 키이우 마린스키궁에 도착했다. 워싱턴에서 출발한 지 22시간 만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 부부의 환영을 받은 뒤 "미국 대통령이 공격이 시작된 날 이곳에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면서 "나는 국가의 독립, 주권, 영토 보전에 대한 우리의 변함없는 지지를 보여주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지원에 대해 어떠한 의심도 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면서 "몇몇 문제에 대한 의회의 의견 불일치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해서는 중대한 합의가 있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짧은 연설에서 우크라이나에 5억 달러(약 6500억원) 규모 추가 군사원조를 발표했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회담한 뒤 오전 11시20분쯤 키이우 중심부의 성 미카엘 대성당 앞을 함께 걸었다. 설리번 보좌관이 설명한 자유로운 키이우 땅에서 두 정상이 함께 선 모습이었다.

이들이 성당에 들어갔다가 나오자 돌연 공습 사이렌이 울렸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에 개의치 않고 인근 전사자 추모의 벽으로 함께 갔고, 러시아군과 교전 끝에 숨진 전사자들의 사진이 붙어 있는 벽 앞에 헌화하고 묵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대사관에 들른 뒤 오후 1시 넘어 키이우를 떠났다. 5시간에 걸친 깜짝 방문이 마무리됐다.

미군은 바이든 대통령이 키이우를 방문하는 동안 E-3 센트리 조기경보기와 RC-135W 리벳조인트 정찰기를 폴란드 영공에 띄워 주변 상공을 감시하는 등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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