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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공약 '설악산 케이블카'…국책연구기관 "백두대간 훼손" 반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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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상부 정류장 예정지.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상부 정류장 예정지.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윤석열 정부의 대선 공약이자 강원도의 숙원 사업인 설악산 케이블카에 대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환경연구원(KEI)이 “삭도(索道·케이블카의 법령상 명칭)를 설치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20일 이은주 정의당 의원실(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이 KEI·국립공원공단 등 전문기관 5곳으로부터 받은 ‘설악산국립공원 오색삭도 설치사업 환경영향평가서(재보완) 검토 의견’에 따르면, KEI는 “오색삭도가 설치되는 지역은 전 국토의 1.65%에 불과한 국립공원 공원자연보존지구에 속하는 지역”이라며 “자연의 원형이 최우선적으로 유지·보전돼야 하는 공간에 자연환경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큰 삭도를 설치하는 것은 부적절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또, “사업자 측이 제시한 보전대책으로는 자연환경의 최우선 보전지역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저감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모식도. 환경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모식도. 환경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는 양양군 오색지구에서 대청봉 근처에 있는 봉우리인 끝청까지 길이 3.5㎞의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사업이다. 1982년부터 추진됐지만, 환경 단체의 반대 등으로 인해 40년 넘게 첫 삽조차 뜨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에서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조속 추진’을 공약으로 내걸면서 사업에 다시 속도가 붙었다.

양양군은 환경부 원주지방환경청의 요청에 따라 지난해 말에 동식물 보호 대책 등을 담은 환경영향평가 재보완서를 제출했다. 원주청은 전문기관의 검토 의견 등을 종합해 이르면 이달 말에 최종 의견을 양양군에 통보할 계획이다.

산양 피해 정류장 위치 낮췄지만…“지형 훼손 오히려 증가”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예정지에서 포착된 멸종위기종 산양.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예정지에서 포착된 멸종위기종 산양.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환경영향평가의 핵심은 케이블카 사업이 멸종위기 1급인 산양을 포함해 희귀 동식물이 다수 서식하는 설악산 정상부에 얼마나 환경적인 영향을 미치는 지다. 이에 대해 양양군은 상부 정류장과 산책로의 위치를 당초 계획보다 낮추고 저소음 공법을 적용해 생태계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는 보완책을 내놨다.

하지만, KEI는 의견서에서 사업 예정지가 여전히 산양의 서식지를 단절하는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또, 변경된 상부 정류장 대상지에 급경사 구역이 많아서 공사 과정에서 환경을 더 훼손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KEI는 “환경영향평가서(재보완)는 (기존 환경영향평가서보다) 지형 훼손이 오히려 증가한 계획으로써 백두대간 핵심 구역의 훼손이 과도하게 발생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국립환경과학원과 국립공원공단·국립기상과학원·국립생태원 등 나머지 4개 전문기관은 케이블카 사업에 대해 직접적인 반대 의견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상부 정류장을 산양 서식지 핵심 구역이 포함되지 않은 범위로 조정하고, 체류 인원을 제한하는 등 보완책을 요구했다. 이 의원은 “전문기관들의 검토 의견을 종합하면 사업자가 제시한 대책으로는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저감할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사업을 추진하는 강원도와 양양군은 원주청과 협의를 거쳐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재보완서를 제출한 만큼 사업 추진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양정규 양양군 삭도추진단 팀장은 “아고산대 지역을 회피하려고 상부 정류장의 위치를 50m 내리는 등 최대한 환경을 훼손하지 않은 범위에서 보완책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 “반드시 진행”…환경부 선택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를 반대하는 환경·시민단체 회원들이 2일 원주지방환경청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를 반대하는 환경·시민단체 회원들이 2일 원주지방환경청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환경부 앞에 놓인 선택지는 세 가지다. 환경영향평가서를 동의 또는 부동의하거나, 또 보완을 요구하면서 반려할 수도 있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6일 기자간담회에서 “전문기관 검토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방향을 정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지난 10일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 “오색케이블카 사업이 반드시 진행되도록 환경부에 확인하겠다”며 정상 추진을 약속한 상황에서 부동의 결론을 내기는 쉽지 않다. 환경부 고위 관계자는 “전문기관에서 세게 반대 의견을 내서 딜레마에 놓인 부분이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는 것을 전제로 사업을 조건부 동의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양양군은 환경영향평가서가 통과되면 남은 절차를 빠르게 진행해 늦어도 내년에는 착공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북한산과 지리산, 무등산 등 다른 국립공원에서 추진 중인 케이블카 사업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정인철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무국장은 “당장 내년에 총선이 있기 때문에 오색 케이블카가 준공되면 전국적으로 많은 지역에서 국립공원 케이블카를 추진하려는 바람이 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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