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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원전 멈춘다"…고준위 방폐장, 소위도 못올린 국회 왜

중앙일보

입력

원자로에서 연료로 사용된 뒤 나온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 문제를 두고 여야의 의견이 엇갈려 관련 입법이 표류하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20일 소위원회에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특별법(고준위 방폐물법)’을 논의할 예정이었지만, 다른 안건을 처리하느라 아예 논의 테이블에도 올리지 못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특별법을 매듭짓지 못하면 7년 뒤 원전이 멈추게 된다”(김소영 KAIST 교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전남 영광군 홍충읍 계마리에 자리한 한빛원전의 모습. 뉴스1

전남 영광군 홍충읍 계마리에 자리한 한빛원전의 모습. 뉴스1

원자력발전의 연료로 사용되고 난 후의 핵연료 물질을 처리하는 시설인 고준위 방폐장 건설은 국내 원자력계의 숙원이다. 정부는 1986년부터 경북 영덕·울진·포항 등을 건설 가능 부지로 선정했지만, 주민 반대로 번번이 백지화됐다. 방사능이 적은 중·저준위 폐기물 처분 시설은 2009년 경북 경주에 들어섰지만, 고준위 폐기물들은 아직 원전 내 임시 저장시설에 보관돼 있다.

문제는 국내 원전 내 폐기물 저장 용량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 10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31년으로 예상한 전라남도 영광군의 한빛원전 저장시설 포화 시점은 2030년으로 1년 당겨졌다. 7년만 지나면 사실상 가동을 중단해야 할 형편이다. 한빛원전에 이어 ▶한울(2031년) ▶고리(2032년) ▶월성(2037년) ▶신월성(2042년)도 순차적으로 포화 상태에 도달한다.

이 같은 문제는 국회도 알고 있다. 21대 국회에서 고준위 방폐물법은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민주당안과 이인선 국민의힘 의원의 정부안,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의 원전업계안 등 3건이 발의됐다. 모두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체계 ▶부지선정 절차 ▶원전 내 저장시설 용량 관련 내용을 담고 있다. 소위는 3차례 해당 법안을 다뤘으나 여전히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김한정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산업통상자원특허소위원장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산업통상자원특허소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김한정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산업통상자원특허소위원장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산업통상자원특허소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여야 간 최대 쟁점은 ‘폐기물 저장 용량’이다. 민주당은 원전 설계수명만큼의 폐기물만 저장하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여당은 안전성 검토를 거쳐 원전의 수명을 연장해서 폐기물 저장량을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민주당 산자위원은 “이미 폐기물이 많이 찬 상황인데, 저쪽(국민의힘)에서는 기간 연장만 주장하고 있다”며 “이 같은 이견으로 합의가 안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준위 폐기물에 대한 ‘관리 주체’도 쟁점이다. 김영식 의원 안에는 국무총리 소속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위원회’를 신설해 담당하는 내용을 담았다. 나머지 두 개 법안은 원자력환경공단을 주체로 명시했다. 이 쟁점은 지난해 11월 열린 두 번째 소위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졌으나, 양측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지난해 12월 열린 3차 소위에선 여야 모두 고준위 방폐물법 제정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여야는 “다음 세대에 더 이상 미루지 않았으면 좋겠다”(이인선 국민의힘 의원), “깊이 있는 논의를 위해 차기 법안 소위에서 우선 심사하겠다”(김한정 민주당 의원·소위 위원장)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두 달 뒤 열린 20일 소위에서 안건 상정조차 불발되면서, 이 같은 약속은 끝내 공염불이 됐다.

‘골든타임’이 7년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국회 논의가 공전을 거듭하자, 정부와 학계 원성은 커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 법이 빨리 진행돼야 고준위 방폐장이 지정될 수 있다”며 거듭 조속한 처리를 요구하고 있다.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관련 법이 제정되어야 주민들이 원전에 저장된 폐기물의 보관 기한이 언제까지인지 예측하고 우려를 덜 수 있다”며 “폐기물을 언제까지 어디로 옮겨서 어떻게 보관하겠다는 것도 법으로 박아둬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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