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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00억 '미사일 폭주' 약발 다했다…10살 김주애 내민 北딜레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20일 담화를 통해 지난 18일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및 20일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의 책임을 미국 측으로 돌렸다. 미국이 한반도에 전략자산을 전개하며 이에 대한 맞대응 차원에서 미사일 시험 발사에 나섰다는 게 김 부부장의 주장이다. 연합뉴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20일 담화를 통해 지난 18일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및 20일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의 책임을 미국 측으로 돌렸다. 미국이 한반도에 전략자산을 전개하며 이에 대한 맞대응 차원에서 미사일 시험 발사에 나섰다는 게 김 부부장의 주장이다. 연합뉴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20일 담화를 통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 발사 등 최근 재개한 미사일 도발의 책임을 미국에 떠넘겼다. 20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한 담화에서 “태평양을 우리의 사격장으로 활용하는 빈도수는 미국의 행동 성격에 달려있다”고 주장하면서다. 이는 미국이 한·미 연합훈련 당시 B-1B 전략폭격기 등 전략자산을 배치함에 따라 북한 역시 미사일 시험발사로 맞대응에 나섰다는 설명이다.

'자체적인 발전 계획→미국 탓' 입장 변화   

김 부부장의 이 같은 메시지는 미사일 발사를 국방력 발전 계획의 일환으로 설명했던 기존의 북한 입장과 결이 사뭇 다르다. 북한은 미사일 도발을 재개한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우리가 진행한 신형무기 개발 사업은 국가 방위력을 현대화하기 위한 활동일 뿐, 특정한 나라나 세력을 겨냥하지 않았다”(1월 14일 외무성 대변인 명의 담화)고 주장해 왔다. 또 지난해 12월엔 노동신문을 통해 지난 1년간의 국방력 강화 노력에 대해 “세계적 군사 강국으로서의 위용과 절대적 힘이 만천하에 과시된 위대한 승리의 해”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지난해 70발이 넘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반도 긴장 수위를 끌어 올리기 위한 무차별 도발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도발의 빈도수가 증가하며 미사일 발사에 대한 경각심이 낮아지는 딜레마 상황에 놓였다. 사진은 지난해 미사일 시험발사 현장을 직접 참관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북한은 지난해 70발이 넘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반도 긴장 수위를 끌어 올리기 위한 무차별 도발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도발의 빈도수가 증가하며 미사일 발사에 대한 경각심이 낮아지는 딜레마 상황에 놓였다. 사진은 지난해 미사일 시험발사 현장을 직접 참관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결국 김 부부장이 “최근 조선반도(한반도) 지역에서 미군의 전략적 타격 수단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며 미국을 직접 겨냥한 건 도발 카드로써 미사일 발사가 갖는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지난해 이례적으로 많은 미사일 발사를 감행하면서도 이를 자위권 차원의 국방력 발전 계획 조치로 포장해왔고, 미사일 발사 사실 자체를 노동신문에 게재하지 않는 등 주민들에게 알리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며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는 이미 지난해 하반기 시작했는데 이제 와서 이를 미사일 발사의 이유라고 주장하는 것은 식량난 등 내부의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외부 긴장을 조성하는 모습으로 보여진다”고 설명했다.

北 '도발의 일상화'가 낳은 미사일 딜레마

북한은 지난 18일 약 2개월만에 미사일 도발을 재개한 데 이어 20일 두 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재차 발사했다. 사진은 지난 18일 북한이 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5형. 연합뉴스

북한은 지난 18일 약 2개월만에 미사일 도발을 재개한 데 이어 20일 두 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재차 발사했다. 사진은 지난 18일 북한이 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5형. 연합뉴스

북한의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는 그 효과와 한계가 뚜렷한 도발 방식이다. 미사일 도발로 북한이 얻을 수 있는 건 안보 불안 조성과 대미(對美) 협상 레버리지 강화다. 이를 통해 대북 제재 완화·해제와 경제적 인센티브 제공 등 미국을 상대로 한 요구사항을 관철하고자 한다.  


문제는 계속된 도발로 미사일 발사가 갖는 지렛대 효과가 점차 약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여당 내에서도 “북한 미사일 발사가 일상화되다시피 하는 바람에 경각심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20일 비대위 회의)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실제 북한은 지난해에만 최소 73발의 미사일을 발사했다. 북한의 도발 자체가 일상화됐다. 수년째 경제난이 이어지는 북한 입장에서 미사일 발사에 수반되는 비용은 부담일 수밖에 없다. 북한은 지난해에만 미사일 발사에 약 5억6000만 달러(약 7200억원)을 쏟아부은 것으로 추산된다.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북한) 일부 지역에서 아사자가 속출하는 등 식량난이 심각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 북한 측이 세계식량계획(WFP)의 지원을 희망하는 정황을 확인한 바 있다”고 말했다.

더구나 미·중 경쟁 격화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 등으로 북핵 문제는 미국의 안보 우선순위에서 점차 밀려나는 모습이다.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는 출범 직후 약 2년간 ‘북한의 선제적 변화 없이는 인센티브 제공도 없다’는 원칙론을 고수하고 있다. 북한의 계속된 미사일 발사에도 대화와 협상을 위한 당근 없이 대북제재 확대 등 채찍으로 일관하는 식이다.

'당근' 없이 계속되는 제재·압박  

박진 외교부 장관은 20일 네덜란드·독일 출장 마치고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길에 기자들과 만나 "북한은 도발할수록 스스로 고립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박진 외교부 장관은 20일 네덜란드·독일 출장 마치고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길에 기자들과 만나 "북한은 도발할수록 스스로 고립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특히 최근 한·미·일 3국은 독자 제재를 통해 북한의 돈줄을 옥죄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외교부는 이날 북한이 두 발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직후 대북 독자 제재 대상을 추가 지정하며 “북한의 자금줄을 차단해 나가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 역시 이날 해외 출장 일정을 마치고 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한이 도발할수록 스스로 고립되고, 국제사회에서 규탄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지난해 북한의 폭주로 미사일 발사가 상시화했는데 바이든 행정부에선 아무런 반응 없이 연합훈련 및 대북제재 강화로 일관하며 ‘신 무관심 정책’을 펼치고 있다”며 “북한으로선 도발을 이어가기 위해선 막대한 돈이 들고, 도발을 자제하자니 경각심이 식는 ‘도발 딜레마’ 상황에서 김정은의 딸 김주애를 등장시키고 미국을 직접 겨냥하며 관심 끌기 전략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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