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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역 10월, 벌금 4000만원 선고받은 셈" 재수생 부모의 한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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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해 8월 31일 오전 서울 마포구 종로학원 강북본원에서 재수생들이 9월 수능모의고사를 치르고 있다. 뉴스1

지난해 8월 31일 오전 서울 마포구 종로학원 강북본원에서 재수생들이 9월 수능모의고사를 치르고 있다. 뉴스1

“애가 재수하면 부모는 징역 10월에 벌금 4000만원 선고받는 거나 마찬가지라잖아요.”
서울의 주요 사립대 추가 합격을 기다리던 고3 학부모 김모(47)씨의 하소연이다. 그는 자녀의 재수 가능성이 커지자 지난주 주요 재수학원 홈페이지를 방문해 ‘재수 비용’을 계산해 봤다고 한다. 김씨는 “벌금이 더 늘었어요. 어쩌겠어요, 벌금이라니 내야죠. ‘징역’까지 더 살면 안 되잖아요”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처럼 ‘문 닫고 입학’에 실패한 학부모들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원했던 대학에 가지 못해 속상해하는 아이를 위로하며 재수를 결정했지만, 생각보다 ‘뒷감당’이 만만치 않아서다. 비싼 학원비에 숨이 턱 막힌 학부모들은 “재수하는 아이 학부모 마음이 ‘죄인’ 같다는 게 뭔지 알겠다”고 입을 모은다. 김씨는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학원비를 마련해보려고 한다”고 했다.

재수 종합반 월 200만원, 기숙은 월 400만원 넘어 

20일 종로·대성·메가스터디 등 주요 재수학원의 정규 종합반이 개강했다. 의·약학 계열에 진학하지 못한 최상위권 학생들을 위한 ‘의대 재수반’, 주말에도 수업하는 ‘기숙형 학원’, 아예 기숙사에서 숙식과 공부를 전담하는 ‘기숙학원’ 등 수험생·학부모의 요구사항에 맞춘 다양한 재수학원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중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물가와 인건비 인상 등으로 재수학원 비용도 증가했다. 취재팀이 파악해 보니, 서울 강남의 A학원 재수 종합반 월 수강료는 199만5000원이었다. 4년 전(134만4000원)에 비해 65만원이 올랐다. 서울 강북의 B학원 재수 종합반 월 수강료는 162만2000원으로, 4년 전(107만1000원)보다 약 55만원 인상됐다. B학원의 강남점 재수 종합반 월 수강료는 212만원이다. 학원마다 운영 시간, 독서실·교재비·모의고사비 포함 여부 등으로 차이가 나긴 하지만, 서울의 주요 재수학원 종합반은 월 200만원가량의 학원비를 감수해야 한다.

일반 종합반보다 월 100만원 이상 비싼 기숙학원 교습비도 올해 더 올랐다. A학원의 수도권 기숙학원 월 교습비는 345만원으로, 2019년(292만6000원)에 비해 40만원가량 인상됐다. 식비가 월 62만4000원에서 78만원으로, 기숙사비가 88만5000원에서 114만원으로 올랐다. B학원의 기숙학원 월 교습비도 4년 전 290만원에서 올해 320만원으로 올랐다. 수도권 기숙학원의 월 교습료는 310~350만원 정도, 비수도권 기숙학원 월 교습료는 300만~310만 원 수준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월 14만 원대의 독서실 비용과 매월 봐야 하는 모의고사비, 월 20만~30만 원 상당의 교재비와 특강비 등은 별도 부담이다. 이 경우 학부모들이 학원에 내는 돈은 월 400만원을 훌쩍 넘게 된다.

재수 기회도 ‘빈익빈 부익부’…N수도 돈 있어야 한다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지난해 11월 17일 수험장인 강원 강릉시 강일여고 앞에 걸려 있는 응원 플래카드 앞을 한 수험생이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지난해 11월 17일 수험장인 강원 강릉시 강일여고 앞에 걸려 있는 응원 플래카드 앞을 한 수험생이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의대를 희망하며 3수에 도전한 아들을 둔 학부모 이모씨는 “의대 등록금보다 재수학원비가 비싸다”며 한숨을 쉬었다. 대학교육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사립대 평균 등록금은 1년에 752만원이었다. 의학 계열의 경우 1052만원이다. 2월부터 재수학원에 다닌다고 했을 때 수능 때까지 9개월 학원비가 평균 1800만원이 넘으니 대학 학비보다 비싼 건 불변의 진리다. 기숙 학원 등의 경우엔 1년 학원비가 대학 4년 등록금보다 비쌀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씨는 “대학만 가면 다 해결된다는 심정으로 투자하고 있지만, 요즘은 물가도 오른 데다 학원비까지 생활비가 정말 부담”이라며 “재수시키려고 은행에서 추가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강사료가 늘고 한반당 학생 수를 줄이다 보니 월 운영비가 과거보다 4~5배 이상 인상됐다”며 “현장에서도 재수학원비가 많이 늘어나면서 학부모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점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입시학원 관계자는 “종합반이나 기숙학원은 비용이 부담스럽다며 대신 단과반이나 독학반 비용을 문의하는 학부모·수험생도 많아졌다”고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재수의 기회조차 ‘빈익빈 부익부’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서울의 한 대학생 김모씨는 “원하던 대학은 아니었으나 부모님에게 부담을 드릴 수 없어 결국 재수는 포기했다”며 “재수학원 다니는 친구들을 부러워하게 될 줄 몰랐는데, 그 친구들은 또 기회가 있는 것 같고 나는 없는 것 같아 씁쓸했다”고 했다.

“올해 재수생 비율 더 늘어날 것”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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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학원 비용이 비싸져도 재수생 비율은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수능 응시생 중 졸업생 수는 14만2303명으로, 전체 응시자의 28%에 달했다. 2002학년도 수능 이후 22년 만에 졸업생 응시자 비율이 가장 높은 해였다. 종로학원은 올해 수능의 경우 고3 학생 수가 줄어 재수생 비율이 지난해보다도 높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투자 대비 효과가 있다는 믿음 때문에 수험생·학부모가 여전히 큰돈과 시간을 들여서라도 재수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계층 간 차이가 비정상적으로 벌어질수록 대학 입학을 통해 계층 사다리 위쪽으로 가려는 개개인의 열망이 커진다”며 “그 과정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 역시 더 증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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