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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지구가 웃어야 아이들이 웃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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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고진하 시인·목사

고진하 시인·목사

야생초를 뜯어 요리해 식탁을 차린다고 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생계가 어려워서 야생초를 뜯어 먹느냐? 그 거칠고 맛없는 들풀을 어떻게 요리해 먹느냐? 땡볕에 나가 풀 뜯는 게 힘들지 않느냐? 지구를 축내지 않으려고 그렇게 애쓰는 것이냐? 이런 다양한 반응을 들으면 나는 야생초를 낯설어하는 이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려 애쓴다.

우리 가족이 야생초 요리를 식탁에 올리기 시작한 것은 15년 전 귀촌한 후부터였다. 그렇게 야생초에 애착을 갖게 된 까닭은 단지 생계가 어려워서도 아니고, 또 야생초 요리가 풍부한 영양과 약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만도 아니다. 그렇다면 왜? 정말 궁핍한 시절이 오면 야생초가 인류의 미래 식량이 될 수도 있을 거란 생각 때문이다. 인류의 지속가능한 삶을 이야기할 때 그 앞자리엔 항상 먹거리 문제가 돋을새김 되지 않던가.

15년째 밥상에 올린 야생초 요리
미래세대의 식량이 될 수도 있어
성경에서 찾아 읽는 생태학 지혜

‘지속가능’이란 말이 요즘처럼 많이 회자한 때도 없었다. 그 어휘는 우리의 삶이 지속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강한 부정의 느낌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 사실. 인터넷이 발달해 세계의 날씨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것처럼 급격한 기후변화로 일어나는 지구촌의 기후재앙을 우리는 매일 같이 목도한다. 지구촌을 무섭게 강타하는 혹한과 혹서의 소식은 깨어 있는 사람이라면 지구 종말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낄 수밖에 없게 한다.

이런 엄청난 위기 앞에서 요즘 나는 인류가 으뜸의 가르침으로 여겨온 종교 경전 속에서 생태적 삶의 지혜를 궁구하고 있다. 먼저 나는 지속가능한 삶을 영위하는 일에 애면글면해 온 고대 유대인들의 역사와 삶의 지혜를 들여다보고 있다. 오래된 지혜에는 지구 어머니의 자비의 DNA가 묻어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왜 유대인은 지속가능한 삶에 그토록 깊은 관심을 기울였을까. 무엇보다도 그들이 터 잡고 사는 땅이 황무지이기 때문이다.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쓴 여행기를 보면, 경치가 황량한 나라로는 팔레스티나가 으뜸이라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런 척박하기 그지없는 황량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연친화적인 많은 규칙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구약성경의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등에 보면 생태적인 규칙이 많이 등장한다. 이런 규칙을 보고 난 이들 중엔 참 이상하다고 투덜거리는 이도 있으리라. “아니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형편이라면서 무슨 생태적 규칙이람?”

나는 유대인이 만든 수많은 규칙 중에 먹거리에 대한 규칙에 먼저 눈길이 갔다. “육지에 사는 짐승 가운데... 너희가 먹지 못할 것이 있다… 발굽은 갈라져 있으나 새김질을 하지 못하는 돼지를 먹어서는 안 된다.”(레위기 11: 1~8) 부정한 동물이니 먹지 말라는 것. 그러나 부정하다는 위생적 이유보다는 다른 이유가 있었음을 눈치챌 수 있다. 유대 땅은 자원이 무척 한정되어 있다. 그런데 인간이 먹을 수 있는 것까지 다 먹어치우는 엄청난 식욕을 가진 잡식성의 돼지는 지속가능한 삶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금지 규칙이 생긴 건 아닐까.

물에 사는 동물 가운데도 먹지 말라고 한 동물이 있다. “물에서 우글거리며 사는 것 가운데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것은… 너희에게 더러운 것이다… 그 고기를 먹지 마라.”(레위기 11: 10~11)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물고기는 무엇일까. 개구리가 아닌가! 유대 땅에서 개구리를 먹어서는 안 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성서 속의 생태학』이란 책을 쓴 독일의 생태학자 휘터만은 그 이유를 방글라데시에서 찾았다. 방글라데시는 1970년대 말부터 개구리를 대량으로 잡아 그 넓적다리를 프랑스에 수출했다. 이 때문에 돈은 벌었지만 나라에 말라리아가 창궐했다. 원래 이 지역엔 말라리아가 없었는데, 모기의 천적인 개구리 씨를 말려버림으로써 무서운 재앙을 겪게 되었던 것.

사실 고대 유대는 말라리아 때문에 무척 고통받는 지역이었다. 그래서 개구리를 먹지 말라는 생태적인 규칙을 만들었다는 것. 이런 규칙을 만들어 지속가능한 삶을 영위했던 유대인의 삶의 지혜를 오늘 우리도 곱씹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과거 어느 때보다 지속가능한 삶을 저해하는 심각한 요인이 훨씬 더 많으니까.

자본 만능의 세상이라지만, 우리 후손이 살아가야 할 터전인 지구의 안녕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생태계 파괴로 신음하는 지구를 웃게 하는 일에 온 마음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지구가 웃어야 나무들이 웃고, 물고기들이 웃고, 새들이 웃고, 아이들이 웃고, 인류가 웃을 수 있으니까!

고진하 시인·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