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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조한제상서’ 기억납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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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조현숙 기자 중앙일보 기자
조현숙 경제부 기자

조현숙 경제부 기자

1990년대 중반 은행은 대학 졸업생이 선망하는 최고의 직장이었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며 한국 경제가 눈부신 성장을 이어가던 때다. 돈줄을 쥐고 있던 은행은 다른 업계를 압도하는 고액 연봉을 자랑했다.

1996년 11월 채용정보업체 리크루트가 초임을 조사했더니 금융계 대졸 신입사원이 1위였다. 연봉 평균이 1996만원이었다. 2위 화학·의약(1695만원), 3위 전자·통신(1668만원)을 크게 따돌렸다. 그런 금융계에서도 은행이 최상위였다. 그해 신입사원에게 연 2500만원 넘게 준 회사는 단 3개였는데, 그중 2개가 은행이었다. 퇴직금 격차는 더했다. 같은 해 12월 노동부(현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30년 근속 기준으로 금융업이 평균 1억6193만원에 달했다. 제조업(5800만원)의 3배에 육박했다.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30평(101㎡)이 1억7000만원 하던 시절이다. 은행원 퇴직금으로만 서울 강남 집 한 채를 살 수 있었다.

당시 은행의 주 수입은 예대마진(예금금리와 대출금리 차이로 얻는 수익)이었다. 전체 수익의 80% 이상을 차지했다. 하지만 은행의 황금기는 곧 막을 내렸다. 1997년 외환위기로 이자 장사에 의존했던 은행은 순식간에 무너져내렸다. ‘조한제상서’로 불릴 만큼 기세등등했던 1~5위 조흥·한일·제일·상업·서울은행 모두 쓰러졌다.

최근 은행권 ‘돈 잔치’가 논란이다. 고금리로 벌어들인 수십조원 이익을 직원들 성과급·퇴직금으로 퍼주는 데 쓴다는 비판이다. 과점 은행들이 ‘안방(국내)’ 이자 장사에만 몰두하고, 내실을 쌓기보다 버는 만큼 쓰기 바쁘다. 20~30년 전과 그리 달라진 게 없다. 은행 이익에서 예대마진이 차지하는 비율도 여전히 80%를 웃돈다. 아직도 ‘천수답’ 장사다. 그런데 여기저기 위기 신호다. 고물가·고금리 장기화에 위기 때나 보이던 달러당 1300원 환율이 다시 등장했다.

1998년 제일은행은 대규모 명예퇴직을 단행했다. 홍보실은 떠나는 여러 직원의 모습을 25분짜리 ‘눈물의 비디오’(원제는 ‘내일을 준비하며’)에 담았다. “변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 하지만 누가 변해야 한다, 어느 부서가 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정작 자신이 변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25년 전 비디오 속 선배 은행원의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