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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류태형의 음악회 가는 길

K클래식, 다음에는 작곡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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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류태형
류태형 기자 중앙일보 객원기자·음악칼럼니스트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지난 17일 마포아트센터에서 창작오페라 ‘양철지붕’을 봤다. 사전지식이 전혀 없이 감상했던 작품은 기대 이상이었다. 일단 고재귀의 극본이 탄탄했다. 불안하게 이어지는 음산한 비극의 한가운데로 관객들을 몰고 가는 흡인력이 있었다. 작곡가 안효영의 음악은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고통과 미스터리를 배가시키는 신빈악파 작품 같았다. 가슴을 철렁하게 하는 곳곳의 요소들이 다음 장면과 음악을 기대하게 했다. 치우치지 않게 이야기 속으로 몰입하게 하는 안효영의 음악은 짧지 않은 여운을 남겼다. 구모영이 지휘한 프라임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작곡가가 창조한 음악을 신선하고 따끈하게 전달했다. 연극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라 음악보다 극쪽으로 기운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장서문의 연출은 가수들의 노래에 귀 기울이게 했다.

지난 17일 공연된 창작오페라 ‘양철지붕’. [사진 류태형]

지난 17일 공연된 창작오페라 ‘양철지붕’. [사진 류태형]

이번 작품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사업인 ‘공연예술창작산실’에서 ‘올해의 신작’ 중 하나였다. 2008년부터 시작된 이 사업은 동시대성과 다양성을 중시하며 ‘대본 공모’와 사전연구 및 사전제작 단계 지원, 우수한 신작을 발굴하는 ‘올해의 신작’, 창작 관현악 저변 확대를 위한 ‘지속연주지원’ 등 예술가들을 다각도로 지원하고 있다.

공연예술창작산실을 통해 탄생한 오페라 가운데 실망스러운 작품도 다수 있었다. 하지만 해를 더해가면서 자리를 잡는 모양새다. 세련된 동시대성을 갖춘 작품들이 눈에 띈다. 오페라는 좋은 대본과 작곡가, 연출가, 가수들, 지휘자, 오케스트라가 들인 시간과 노력이 합쳐졌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종합예술이다. 좋은 작품이 나오기 어려운 현실이 당연해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신작은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청중은 검증받은 작품에만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이달 우리나라 작곡계에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7~12일 프랑스 공영방송 라디오 프랑스에서 주최한 ‘2023 프레장스 페스티벌’에서 한국 작곡가 진은숙이 집중 조명됐다. 올해로 33주년을 맞는 이 프랑스 대표 현대음악 페스티벌에서는 트리스탕 뮈라이유, 파스칼 뒤사팽, 조지 벤자민, 볼프강 림 등이 화제가 됐었다. 아시아 작곡가 중에는 진은숙이 최초다.

국립심포니 다비트 라일란트 음악감독은 “한국 문화의 뿌리가 손상되지 않은 상태 그대로 발굴했을 때 큰 가치가 있다. 한국이 발휘한 문화적 역량이 작곡을 통해서 충분히 폭발할 수 있다”며 “잠재력 높고 기여할 바가 높기 때문에 작곡을 주시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내년 임기가 시작되는 서울시향의 신임 음악감독 판 즈베던은 ‘오징어 게임’의 작곡가 정재일과 함께 작업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조성진·임윤찬 등 연주자들이 견인해온 K클래식은 기존에 창조된 작품을 해석하는 예술적 능력이 탁월했기에 가능했다. 앞으로는 작곡의 창조성이 K클래식의 큰 축 중 하나가 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