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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질문에 환자 놀란다…'조용한 살인자' 잡아내는 명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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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Dr. Who] ‘폐암 명의’ 권오정

 권오정 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환자와의 신뢰관계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우상조 기자

권오정 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환자와의 신뢰관계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우상조 기자

“더 물어볼 것 없으세요?” 어찌 보면 환자가 당연히 들을 것 같은 말이지만, 사실 경험하기 힘든 친절이다. 의사 권오정은 환자가 진료실을 나가기 전에 꼭 이 질문을 건넨다. 그 말이 가진 힘을 믿기 때문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해드리면 환자가 훨씬 좋아하시더라”며 웃었다. 폐암은 조기 발견이 어렵다. 대부분 병기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에서 진단된다. 그만큼 환자와 그 가족의 절망감이 크다. 그가 환자와의 라포(rapport·신뢰 관계)를 최우선에 두는 이유다. 진료실을 나서는 환자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보는 것도 그 과정인 셈이다.

권 교수는 경고 신호 없는 폐암의 안타까운 임상 사례를 이렇게 설명했다. “폐와 상관없이 갑자기 다리가 아파 찍어보면 암이 전이된 경우가 있어요. 대부분 폐에 덩어리가 보이죠. 중풍 비슷하게 골이 아프고, 팔 한쪽에 마비 비슷하게 와서 자기공명영상(MRI)을 찍어보면 뇌로 전이된 사람도 있어요.”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폐암 치료법은 수술·방사선·항암 등이 있다. 1·2기가 의심될 때는 수술한다. 3기는 A, B로 나뉜다. A일 땐 방사선·항암 치료를 두 달 정도 진행한 뒤 수술하면 예후가 좋다고 한다. B일 땐 수술은 어렵지만, 방사선·항암을 같이 하면 5년 생존율 30~40%로 성적이 나쁘지 않다. 4기도 표적치료제를 쓸 수 있다면 치료를 기대해볼 만하다. 그가 속한 삼성서울병원 폐식도암센터는 ‘드림팀’으로 불린다. 폐암을 연간 1500건 이상 수술한다. 5년 상대 생존율은 50.7%로, 국내(36.8%)는 물론 미국(21.7%) 평균을 웃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입소문이 퍼지면서 암이니 수술하라고 하면 “일단 서울 가서 권오정을 보고 오라”는 말이 생겼다. 권 교수가 바로잡은 오진 사례는 부지기수다. 그는 “양성이면 동그랗게 보이는데 암은 경계가 삐쭉삐쭉하고 늑막 쪽으로 선이 가 있다. CT 찍을 때 조영제를 쓰기 전후로 얼마나 진해지나 보는데, 암세포엔 혈관이 많아 증강이 많이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최근 비흡연 여성 폐암 환자가 늘고 있는데, 그는 “50세가 넘으면 흡연 여부나 성별과 관계없이 저선량 CT를 찍어보라”고 권했다. 현재 대상은 54~74세 30갑년(매일 담배 한 갑씩 30년 흡연) 이상 흡연자다.

담배를 30년 피웠다면, 끊은 지 30년은 돼야 안 피운 사람과 비슷해진다. 담배를 피우면 폐암이 생겨도 치료를 못 하는 경우가 있다. 권 교수는 “초기 1기에 발견해도 수술하려면 폐 기능이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흡입제 등을 쓰면 소폭 올라가지만, 떨어진 폐 기능은 회복하기 어렵다. 그도 30대 후반까지 20년 정도 흡연하다가 환자를 보면서 끊었다. 폐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 묻자 그는 “숨 쉴 때마다 바깥 공기가 왔다 갔다 하니 세균·바이러스에 많이 노출되고 염증에 가장 취약하다. 잘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호흡기내과는 영상의학과와의 합이 중요하다”고 권 교수는 강조했다. 현재 삼성창원병원 이경수 영상의학과 교수가 삼성병원에 있을 당시 일주일에 세 번 X선 콘퍼런스를 했다. 그는 “판독만으로 안 되니까, 우리가 환자 임상 정보를 주고 판독을 다시 하고, 치료는 어떻게 할 건지 같이 의논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999년 저선량 CT 검사가 폐암 조기 발견에 효과적이라는 걸 밝힌 논문도 이 교수와 함께였다. 당시 일각에서 과잉 진단이라고 지적했지만, 이들은 진단율을 최대 20%포인트 끌어올릴 수 있음을 증명했다. 2012년 이 교수 등과 함께 ‘자랑스러운 삼성인상’을 받았다. 의사가 이 상을 받은 건 처음이었던 만큼 자부심이 상당했다. 그는 “일반 직원은 1직급 특진한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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