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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이 회계’ 노조…정부 지원 끊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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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윤석열

윤석열

윤석열(얼굴) 대통령이 20일 노동조합 재정 투명성과 관련해 “국민의 혈세인 수천억원의 정부 지원금을 사용하면서도 법치를 부정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와의 주례회동에서 “노조 회계 투명성은 노조 개혁의 출발점”이라며 이같이 말했다고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이 브리핑에서 전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말부터 노동개혁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노조의 회계 투명성을 강조했다. 구체적 방안으로 노조 회계 공시시스템 구축을 제시했다. 하지만 상당수 노조가 회계자료 제출을 거부하자, 재차 개혁 의지를 확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1~15일 조합원 수 1000명 이상인 단위 노조와 연합단체 총 327곳에 회계 관련 자료를 요청한 결과, 120곳(36.7%)만이 정부 지침에 따라 자료를 제출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정부·지자체로부터 지난 5년간 약 1500억원을 지원받았다는 사실을 거론하며 “세금을 지원받지만 내역을 공개하지 않는 노조의 행태에 윤 대통령이 격노했다”며 “회계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고는 노동개혁이 이뤄질 수 없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으로부터 노조 회계장부 공개와 관련한 향후 대응방안을 보고받았다. 이 자리에서 이 장관은 관련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노조에 대해 정부지원금 중단과 환수 등을 취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장관은 “회계장부 비치·보존 결과를 제출하지 않은 207개 노조에 대해 무관용 원칙으로 엄정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부터 회계 자료 미제출 노동조합을 재정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고, 15%의 조합비 세액공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 윤석열 정부 노동개혁의 첫 단추로 여겨지는 ‘노조 회계 투명성 조치’ 추진을 위해 초강수를 둔 것으로 풀이된다. 노동계에선 “국고 지원과 회계 자료 제출은 별개 사안”이라고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 장관은 이날 윤 대통령에게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 관련 보고를 마친 뒤 서울 용산 청사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자료 미제출 노조에 대해) 즉시 14일간의 시정 기간을 부여하고 미이행 시 과태료를 부과할 것”이라며 “그럼에도 계속 보고하지 않는 노조에 대해서는 현장조사를 실시하고, 이를 거부하거나 방해·기피하는 경우 과태료를 추가로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 “노조 폐해 종식없이 미래 없다” 법대로 초강수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가운데)이 20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노동조합 회계 투명성 강화를 위해 “현장조사를 실시하겠다”며 “이를 거부하거나 방해·기피하는 경우에는 과태료를 추가로 부과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왼쪽은 김은혜 홍보수석, 오른쪽은 안상훈 사회수석. [뉴시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가운데)이 20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노동조합 회계 투명성 강화를 위해 “현장조사를 실시하겠다”며 “이를 거부하거나 방해·기피하는 경우에는 과태료를 추가로 부과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왼쪽은 김은혜 홍보수석, 오른쪽은 안상훈 사회수석. [뉴시스]

과태료는 각각 500만원 이하 범위에서 부과할 수 있다.

무엇보다 국고보조금이나 세액공제 등 정부의 직간접적인 재정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방침은 양대 노총에 상당한 압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장관은 “올해부터 회계 관련 법령상 의무를 준수하지 않는 노동단체를 지원에서 배제하고, 그간 지원된 전체 보조금에 대해선 면밀하게 조사해 부정 적발 시 환수하는 등 엄정 조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합원 열람권 보장, 회계감사 사유 확대 등 전반적인 법제도 개선 방안도 마련할 것”이라며 “회계 자료를 제출하지 않는 노조에 대해선 현재 15%인 노조 조합비 세액공제를 법 개정 전이라도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를 위한 가이드라인 마련, 노조 회계 공시시스템 구축 등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했다.

정부·지자체, 양대 노총에 5년간 1520억

이번 후속 조치는 정부의 회계 자료 제출 요구에 207개 노조가 거부하면서 이뤄졌다. 전체 제출 대상의 63.3%다. 이 가운데 양대 노총 결의에 따라 정부 요구 자료(자율점검결과서·표지·속지) 가운데 속지를 제출하지 않은 ‘일부 미제출’ 노조가 153개(46.8%)로 가장 많았다. 이 장관은 “구체적인 내용을 들여다보겠다는 게 아니라 노조법 14조에 따른 주요 서류 비치 의무를 확인하기 위한 조치”라며 “(노조의 서류 업무 부담 최소화를 위해 요구한) 속지 한 장도 안 낸다는 것은 제도 취지나 정부 정책에 반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이런 강경 조치는 정부·지자체가 노조에 매년 수백억원씩 지원하는데도 법적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는 정치권 지적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실이 고용노동부와 광역지자체 17곳에서 받은 노조 지원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양대 노총에 약 1520억5000만원이 지원됐다. 연평균 304억1000만원꼴이다. 여기에 세액공제를 통한 정부 세금 지원까지 더하면 실제 노조 지원액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1500억원보다 훨씬 많다”고 이 장관은 강조했다.

이날 윤 대통령이 이 장관에게 “기득권 강성 노조의 폐해 종식 없이는 대한민국 청년의 미래가 없다”고 강조한 만큼 노동부의 후속 조치는 강력하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여권도 정부 움직임에 발을 맞췄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노조에 나라 예산이 이렇게 지원되는 게 맞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며 “이 예산이 투명하게 쓰였는지도 따져봐야 하는데, 회계장부 제출조차 거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권을 겨냥해 “지난 정권에서 노조를 많이 도와주는 바람에 마치 탈법이 만성화돼서 치외법권에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면서 “이걸 방치하고는 제대로 된 기업이 만들어질 수 없고 좋은 일자리가 생길 수 없다. 이번 기회에 철저히 회계 투명성을 따져야 하고 지원의 당위성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계는 즉각 반발했다. 국고보조금은 회계감사를 받는 대상으로, 정부가 요구한 ‘조합비 회계 자료’와는 전혀 무관한 사안이라는 것이다. 한국노총은 이날 ‘국민의힘과 권성동은 악선동을 중단하라’는 성명서를 통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지원받은 지원금에 대해선 이미 회계 자료를 보고하고 있다”며 “국가보조금에 대해 외부 공인회계사 2명이 포함된 외부 회계감사를 연 2회 실시해 결과를 정부에 제출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노총이 제출을 거부한 것은 노조 자체 조합비 운영에 관련한 사항으로, 이 역시 철저하게 관리·운영되고 있으나 어디까지나 노조 내부에서 알아서 할 것이지 정부의 관리·감독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노동계 “악선동·직권남용 말라” 반발

회계자료 제출 노조, 절반도 안 돼

회계자료 제출 노조, 절반도 안 돼

정부의 재정 지원 중단 계획에 대해선 “국고 지원과 회계 자료 제출은 별개의 사안인데, 이를 연관시키는 자체가 직권남용”이라며 “또한 시·도·지자체 예산은 정부가 관여할 사안이 아닌데, 이를 대통령실에서 돈을 줘라, 말라 하는 것은 지방자치 시대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한상진 민주노총 대변인도 이날 “민주노총은 입주 건물 보증금인 약 30억원 외에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게 없다”며 “이 역시 노사관계발전법 등에 따라 지원받는 것이고 보증금이기 때문에 빼서 쓸 수 있는 게 아니다”고 밝혔다.

이런 반발에도 불구하고 노동계가 노조법 14조 규정을 피해 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노조법 14조는 노조의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를 3년간 보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부로서는 점검할 근거를 가지고 있다. 조합비 세액공제 역시 노조가 세제 혜택을 받는 만큼 조합비가 목적에 맞게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지 검증될 필요가 있다.

한편 이날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야당이 추진하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조, 3조 개정안)에 대해 작심 비판을 내놨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조합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다. 추 부총리는 “노사관계의 근간을 흔들고 위헌 소지가 있어 국가 경제 전반에 부정적 여파가 예상된다”며 “사용자 범위를 모호하게 확대해 헌법상 죄형법정주의를 위배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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