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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도 “좁다”…1000억원짜리 박정희 추모관 논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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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면

 경북 구미시 상모동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일대에 박 전 대통령 동상이 세워져 있다. 백경서 기자

경북 구미시 상모동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일대에 박 전 대통령 동상이 세워져 있다. 백경서 기자

지난 15일 오후 경북 구미시 상모동 고(故) 박정희(1917~79) 전 대통령 생가. 박 전 대통령이 대구사범학교 졸업 전까지 20년간 산 곳이다. 주변엔 민족중흥관과 역사자료관·새마을운동테마공원 등이 자리해 있다.

생가 안에는 안채·사랑채가 보존돼 있고, 79년에 지어진 56㎡(17평) 규모의 추모관도 운영 중이다. 추모관에선 매년 박 전 대통령 서거일인 10월 26일에 맞춰 제례(祭禮)가 열린다. 이날 생가를 찾은 관광객들은 추모관에서 묵념하고 방명록에 글을 남겼다.

관광객 중엔 가끔 추모관이 좁다는 불평이 나왔다. 구미시민 박모(61)씨는 “추모관뿐 아니라 생가 진입로도 (폭 3~4m 정도라) 너무 좁다”며 “추모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인파가 운집하는데 안전사고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1일 박 전 대통령 생가에 들렀다가 “추모관이 좁다”고 우려했다고 한다. 당시 윤 대통령 방문 소식에 2000여 명의 시민들이 생가 입구에 몰렸다. 현장에 있었던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 대통령이) ‘추모관이 너무 협소하다’며 함께한 도지사·시장·국회의원에게 좋은 방안을 (찾아보자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구미시는 윤 대통령 방문 전에 이미 추모관을 확장할 계획을 세웠다. 1000억원을 들여 추모관을 ‘숭모(崇慕)관’으로 새로 짓겠단 방안이다. 구미시에 따르면 매년 박 전 대통령 서거일 하루에만 1만여 명이 생가 등을 찾는다. 연간 방문객은 20만 명 규모다.

구미시 관계자는 “추모관의 누적 방문 인원은 425만 명 정도인데 협소해 방문객이 불편을 느끼는 게 사실”이라며 “더욱이 비탈길 위에 위치해 안전사고 위험도 따른다. 숭모관은 위치를 변경해 짓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미시는 각계 전문가를 중심으로 한 ‘박정희 대통령 숭모관 건립자문위원회’를 꾸려 오는 7월까지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용역을 마칠 계획이다. 1000억원의 건립비용은 국·도비 지원 외 박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국민의 자발적인 모금을 통해 마련하겠다는 게 구미시 설명이다.

반면 구미지역 시민사회단체는 숭모관 건립에 대해 ‘세금 낭비’라며 반발하고 있다. 구미경실련은 최근 성명서에서 “구미시는 고물가와 고금리로 시민들이 이렇게 힘든 시기에 난방비 보조금부터 챙겨야 한다”며 “굳이 하고 싶으면 주민투표로 결정하라”고 주장했다.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도 “생가 일대에는 900억원을 들여 조성한 새마을운동테마공원부터 50억원을 들인 민족중흥관, 160억원을 들인 역사자료관 등이 있다”며 “구미시 전체로 보면 박정희 체육관·등굣길 등 관련 시설이 차고 넘친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 전 대통령) 관련 시설의 한 해 유지비로만 70억원이 넘는 세금이 낭비되고 있다”며 “또다시 1000억원대의 숭모관을 건립한다는 건 어처구니없는 계획”이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도 대통령 관련 시설 건립은 필요성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정희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교수는 “미국의 경우 대통령의 업적과 유산을 연구하기 위해 대통령 도서관 등 관련 시설을 짓는다”며 “박 전 대통령이나 그의 업적이 미래 지향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연구하고 토의하는 장이 필요한 것이지 추모관은 지금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1000억원이면 구미시의 민생 예산과 비교해봐도 큰 금액이어서 지역 사회의 반발이 있을 수 있다”며 “생가 옆 역사자료관 등 현 시설을 활용하는 방안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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