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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돈잔치 금융권, 힘든 국민의 고통분담 요구에 귀 기울여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고금리 고통 분담을 위한 대책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과 오세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 등 참석자들이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고금리 고통 분담을 위한 대책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과 오세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 등 참석자들이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중기대출 금리 5% 이상 작년 28.8%까지 상승

은행 ‘비 올 때 우산 뺏는’ 약탈적 행태 멈춰야

손쉬운 이자 장사로 엄청난 성과급 파티를 벌이는 은행에 대한 비판이 ‘은행은 공공재인가’ 하는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그러나 20일 기자회견을 한 중소기업 16개 단체의 절규는 국내 은행의 약탈적 행태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출은 86%가 담보나 보증서가 있는 안전 대출인데, 은행은 매출이 떨어지면 대출 한도를 줄이거나 금리를 올리는 등 ‘비 올 때 우산을 빼앗는’ 영업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이런 지적이 틀렸다고 자신 있게 반박할 수 있는가. 코로나19와 그에 이은 고금리 상황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겐 절망의 계절이었고, 은행엔 ‘나 홀로 호황’의 토양이 됐다. 그 일례가 은행 중소기업 대출 중 5% 이상의 금리 비중이 지난해 11월 83.8%까지 치솟으며 연간으론 28.8%까지 뛰어오른 것이다. 이는 전년보다 무려 9.6배로 커진 것으로, 9년 만에 최고치다. 은행들이 얼마나 발 빠르게 금리 인상 리스크를 중소기업에 전가했는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중기 대출은 작년 말 953조원으로 2019년 말(716조원)보다 33%나 증가했다. 늘어난 대출 원금에다 가파르게 증가한 이자비용이 얹어지면서 많은 중소기업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현실이다.

은행들은 금리 인상기의 정당한 영업행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난해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연 1%에서 3.25%로 2.25%포인트 오르는 동안 은행 예대금리차는 2.21%포인트에서 2.55%포인트로 확대됐다. 그 차이가 은행 주머니를 더 불렸음은 물론이다. 지난해 5대 은행 이자수익은 40조원으로 전년보다 20% 넘게 증가했다. 총영업익 중 이자수익 비중이 신한은행과 KB국민은행은 96%가 넘고 하나은행은 94.3%다. 이러니 국내 은행들이 금리 인상기에 외려 약탈적 금융을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런데도 우리 은행들은 공적 역할에 인색하기 짝이 없다. 은행 지점을 대폭 줄이면서 고령자와 서민의 금융 소외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은행들은 공공성 부족 비판과 관련해 당국의 지나친 개입 때문에 외국인 투자자가 이탈하고 있다고 문제 삼는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최근의 은행주 순매도는 은행 이익이 공공성 희생 위에 창출됐다는 점을 적나라하게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자 장사를 제외하면 국내 은행이 제대로 된 수익 기반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을 외국인들도 파악한 것이다.

이번 기회에 은행권은 사회의 고통 분담과 공공성 수행 요구를 진지하게 성찰하면서 선진 금융으로 거듭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정부 역시 전 근대적 관치 논란을 부를 수 있는 과도한 경영 개입은 자제하고, 규제 완화와 합리적 감독을 통해 시장경제의 토대 위에서 은행의 바람직한 역할 정립에 힘써 주길 바란다.